“지금처럼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절박한 외침에 정부가 드디어 ‘조선업 격차해소 및 구조개선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대책에는 “내년 원·하청이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업계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라”는 정부의 바람과 주문만 담겼다.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동조합연대는 “갑 중의 갑인 원청과 원청이 생명줄인 하청업체 사장들이 모여 ‘자율’로 동등한 거래 관계를 맺고, 이익을 노동자와 공유하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할 것인데 격차 해소는 기대하지 마라는 것”이라며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낀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파악해도 심각한 격차
“90일 더 일하는 하청, 임금은 50~70% 수준”
정부는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조선업 격차해소 및 구조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51일간 파업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업을 비롯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지 석 달 만이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업 이중구조는 30년간 누적돼 고착화된 문제”라며 “조선업이 저임금·고위험·불안정 일자리로 알려지면서 인력난이 심각하고 동시에 현장 노사관계도 불안해지면서 산업 생산성과 미래 성장성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위험한 데다 장시간 일하는 조선업종 임금은 제조업 평균보다 30%가량 높았지만 2016년 조선업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기성금 감축으로 하청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크게 낮아졌다. 원청의 경우 2016년 이후 연평균 임금이 6천만~7천만원대로 유지됐지만 하청노동자들은 500%였던 상여금이 삭감된 채 시간당 1만1천600원(직접생산직 평균시급)으로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시간당 2만3천~2만5천원을 받는 건설노동자 임금의 절반 수준이다. 조선업 원청과 비교하면 하청노동자들은 연간 90일 더 일하면서 임금은 50~70%대에 머문다.
노동부는 조선업 이중구조 원인으로 ‘원·하청 간 불공정 거래 증가’를 꼽았다. 조선업의 하청노동자 비중은 62.3%로 전 업종에서 최고 수준이다. ‘원청-하청-물량팀’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구조가 고착화돼 있고 불황기간 중 하청에 지급하는 기성금과 물량이 축소되면서 불공정 거래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주·생산 회복세에도 저가수주 여파로 하청노동자의 임금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노동부는 분석했다.
“업계 힘으로 구조개선, 정부는 모니터링”
정부는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업계 자율 노력’을 제시했다. 다음달 원·하청 상생협력 실천협약 논의·체결을 위한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체’가 만들어진다. 협의체에서 원·하청이 자율적으로 적정 기성금 지급과 원·하청 노동자 간 이익공유, 직무·숙련 중심 임금체계 확산, 다단계 하도급구조 개선 등을 위한 실천방안을 협의해 마련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협약에 참여하지 않고 실태조사와 모니터링을 한다. 지역 노사민정협의회에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협약 이행 여부를 살피고, 이후 정부 합동평가단이 종합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참여 기업에 인센티브로 각종 장려금과 수당 등을 우대해 지급하고 ‘조선업 상생지원 패키지 사업’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 내년부터 3개월 근속시 취업정착금 100만원을 지급하고 45세 미만 연령제한을 없앤 조선업 희망공제 사업을 통해 연간 600만원을 적립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심지어 정부는 조선업과 제조업에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180일로 늘리고 조선업체에 E-9 비자(외국인 비전문직 취업 비자) 외국인력을 최우선 배정하며, 사업장별 고용 허용인원을 확대한다는 내용도 이번 ‘격차 해소’ 대책에 포함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금 조선업은 불황과 갈등을 딛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적기”라며 “이중구조 문제는 단기대책과 대증요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고, 원·하청 노사와 정부 등 모든 주체가 의지를 모아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권기섭 차관은 “정부가 최초로 업종별 이중구조 개선 대책을 내놓았다는 데 의미가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금속노조는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숙련 기술인데 정부의 이번 대책은 값싸고 손쉽게 쓰고 버릴 노동력으로 단기대응을 하겠다는 것뿐”이라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다시 만들지 않으면 조선노동자 분노가 쇠망치가 돼 무능한 정부 당국을 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총은 “과거와 달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업계 자율로 상생의 해법을 찾고 정부는 지원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 조선업 이중구조 개선 사회적 대화 열릴 듯
- 이정식 장관 “주 52시간제 후퇴 없다, 장담한다”
- 조선업 상생협의체 만든다 ‘노조는 빼고’
- ‘조선업 이중 노동시장구조 대책’ 곧 발표
- [구멍 ‘숭숭’ 조선소 E-7 비자] 현대중공업 두 달간 이주노동자 30여명 몰래 떠났다
- ‘주 52시간제’ 흔드는 정부, 특별연장근로 사실상 ‘상설화’
- 조선소 베트남 용접공 1천여명 입국지연 뒤엔 ‘뒤죽박죽 행정’
- [부실 기량검증 민낯?] 용접공 1천123명 중 142명만 베트남 정부 승인
- 조선업 ‘적정 기성금·하청 임금보호’ 추진한다
- ‘상생’ 강조하더니 원청 요구에 노조 패싱한 정부


유최안 동지가 좁디좁은 감옥에 갇힌게 무색해진다. 조선업 무너뜨리는 한화자본 쳐깨부수고 투쟁으로 노동3권 쟁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