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안을 논의하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7일부터 열린다. 노동시간·임금체계 개편 실태조사와 해외사례 조사, 국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10월까지 최종 권고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을 위해 전문가로 구성한 TF도 가동 중이다. 올해 안에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다는 계획이다. 사회적 대화보다는, 재계 요구에 맞춰 정부가 주문하면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방안을 설계하는 노동정책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높다.
재계 “연장근로 한도 주 52시간 또는 월 624시간으로”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더하면 ‘장시간 공짜노동’ 패키지
지난 15일 열린 고용노동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앞서 14일 사전브리핑에서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다음주 킥 오프(첫 공식회의) 회의를 하고 입법 등 후속조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핵심 추진과제’로 보고하고, 우선 추진과제로 노동시간·임금체계 개편을 꼽았다. 노동시간·임금체계 유연화가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최우선 과제라는 뜻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구체적인 설계를 맡았다. 이미 10여명의 경제·경영학 교수와 노동법 교수들로 구성을 마쳤다. 매주 한 차례 이상 회의를 연다. 연구회에서 다룰 노동시간·임금체계 개편 의제들은 이미 지난달 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서 구체적으로 담긴 바 있다. 현재 주 단위 12시간 한도에서 실시할 수 있는 연장근로를 노사합의로 월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단위 확대’ 방안과 근로시간저축계좌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스타트업·전문직 근로시간 별도적용 방안 등이다.
이보다 한 달 앞선 5월11일 한국경총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 국민의힘 중소기업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근로시간 유연성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다뤘던 내용과 흡사하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인사말에서 “연장근로를 ‘주’ 단위로 제한하는데 월이나 연 단위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해야 주문이 밀리거나 업무가 폭증할 경우 기업들이 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연구개발이나 고소득·전문직은 근로시간 규제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선택적 근로제 활용기간을 1년으로 늘리면 효율적인 인력운용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방안을 시행하면 노동시간 상한규제는 없어지고 연장근로에 따른 금전보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1일, 1주 노동시간 상한이 없다. 여기에 포괄임금제도를 적용하면 시간외근로수당도 받을 수 없어 장시간 공짜노동의 만능열쇠로 불린다. 연장근로시간 한도 관리단위를 주에서 월 또는 연간으로 변경하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병행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기업이 바쁠 때 1일 또는 1주 노동시간 상한 없이 ‘바짝’ 일을 시키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통해 비수기에 대체휴일을 쓰도록 하면 수당 없는 장시간 공짜노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5월 경총 토론회에서도 월 52시간 또 연 624시간 한도로 연장근로 제한을 바꾸는 방안과 근로시간계좌제를 패키지로 묶어 논의했다. 미래시장연구회는 이런 방안을 기술적으로 다듬어 세부적인 입법 방안과 정책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첨예한 근로시간·임금체계 문제를 노사정 간 대화보다는 전문가 권고안을 통해 개편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노동계 반발에도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속도’ 때문이다. 권기섭 차관은 “노사 협의에 두면 사실은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아무래도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는 것이 노사 갈등이나 불만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도 ‘전문가’ 손에
“경영책임자 범위 명확화는 법률 개정 사안”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도 전문가 손에 맡겼다. 권 차관은 “지난달부터 TF 만들어 명확성의 원칙과 처벌의 합리성 등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라며 “TF에서 법리적 문제를 우선 검토한 후 노사가 제기하는 문제들도 함께 살핀다면 10~11월까지 운영하면서 결론을 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시행령 개정은 명확성을 높이기 위해 ‘충실하게 수행’ 같은 조항 문구를 손보고 안전·보건 관계 법령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윤 대통령에 보고했다. 권기섭 차관은 “시행령 개정은 처벌의 수준을 낮추려는 것이 아니라 법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미세조정”이라며 “경영책임자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은 법률을 개정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