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KEB하나은행지부

법원이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의 채용비리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채용 담당자와 법인에는 유죄를 선고하고 함 부회장만 무죄로 선고했다. 사실상 하나금융지주 회장직 선임에 날개를 달아 줬다는 평가다.

함 부회장 자인한 ‘리스트 전달’에도
“리스트 전달 경위·동기 확인 어려워”

서울서부지법 형사단독4부(재판장 박보미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업무방해 및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함 부회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2018년 4월 기소 이후 4년 만이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기용 전 하나은행 부행장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나은행 법인에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을 인정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함 부회장은 지난 2015년부터 2016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개채용 당시 지인 청탁을 받고 채용전형에 개입해 지원자 점수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3~2016년 신입직원의 남녀비율을 미리 정해 놓은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함 부회장이 부정채용 명단을 인사부에 전달한 사실을 인정했는데도 무죄로 봤다. 리스트를 전달한 사실만으로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부정채용) 지시를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할 증거가 없다”며 “(부정채용자) 합격을 도모했다는 증거가 없고 지원자 몇 명을 인사부에 전달한 경위나 동기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은 ‘은행의 오랜 관행’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차별 채용방식은 은행장들의 의사결정과 무관하게 관행적으로 시행돼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올해 1월14일 두 혐의를 인정하면서 함 부회장에게 징역 3년,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황당한 판결에 노동계·시민사회 당혹
“채용비리 엄단 메시지 줘야 할 법원이…”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호걸 금융노조 KEB하나은행지부 위원장은 “리스트를 전달했다는 사실관계에도 명확한 지시를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줬다”며 “앞으로 금융지주나 금융기관 경영자들이 암묵적으로 불법적 지시를 내리면 모두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은 “채용비리를 엄단하고 그릇된 방식의 채용을 청탁·알선하는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건강한 메시지를 줘야 할 법원이 되레 잇따라 면죄부를 남발하는 부끄러운 판결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함 부회장이 행장으로서 부정채용 리스트를 전달할 사실을 인정했고, 조직 생리상 담당자가 은행장 지시를 무조건 거부하기 힘들고, 인사부 리스트에 담당자가 장(長)자를 기재한 사실이 있어 묵시적 지시를 했다고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데 어떻게 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요구하느냐”며 “법인에게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따른 유죄를 선고하고 함 부회장에게는 직접 증거 미비와 관행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봐주기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지배구조 중대한 실패, 회장 선임 반대하라”

현재 하나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으로 회장후보가 된 함 부회장은 25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종 선택을 받는다. 그간 채용비리에 연루돼 ‘법적 리스크’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번 판결 덕분에 날개를 달게 됐다. 다만 14일 행정소송 판결은 남아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판매 책임을 물어 함 부회장을 중징계한 것에 반발해 제기한 처분취소 소송이다. 유사한 소송에서 법원이 잇따라 은행 손을 들어준 상태다.

그러나 법원 판결과 별개로 주주들은 일부 등을 돌린 상태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는 최근 하나금융지주 주총 안건분석 보고서에서 투자자에게 함 부회장의 회장 선임 반대표 행사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ISS는 “이번 사안(범법 혐의자 회장후보 추천) 자체가 지배구조의 중대한 실패”라며 “제재 및 기소 결과와 별개로 반대의결권 행사를 권고”했다. 4년간 채용비리 재판을 치르고 있고, 사모펀드 불완전판매로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은 인사를 아무런 견제 없이 회장 후보까지 추대한 하나금융지주의 이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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