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3월11일 20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날은 헌법재판소가 같은달 10일 박근혜 씨에 대한 탄핵을 인용한 직후다. 시민들은 ‘박근혜 탄핵 촛불 승리’ ‘이게 나라다. 이게 정의다’라고 적은 푯말을 흔들며 기뻐했다. 두 달 뒤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용두사미.’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에 대한 종합 평가다. 촛불광장에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강조하면서 처음으로 진보적 노동의제를 공약과 국정과제에 수렴하려 애쓴 정부로 평가된다.

집권 당시 사회적 문제가 무엇인지 대부분 잘 짚어 냈다. 대표적인 게 사회 양극화다. 지금은 불평등을 막지 못한 정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초기 문제인식까지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평가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에 성공한 2017년 시점에서는 소득 양극화가 문제였다”며 “이를 풀기 위해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책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야가 넓지는 못했다. 정 교수는 “소득주도 성장은 확대재정과 복지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하는 거대한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라며 “그런 내용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비중이 낮아지는 임금소득을 강화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는 수준에 머물러 구체성이 모자라고 추상적이었다는 평가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공공 ‘모범 사용자’, 민간 ‘사용사유 제한’ 물거품

공정성 논란에 불을 붙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모범 사용자 책임을 다하기 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취임 이틀 만인 2017년 5월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공표했고 이후 실질적인 대책도 내놓았지만 끝내 대상자 전부를 포용하지도, 전환한 공무직의 처우를 개선하지도 못한 채 임기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더욱 아쉬움이 크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차별시정 제도 개편, 고용형태 차별금지 같은 획기적인 정책은 빛을 보지 못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비정규직이 다시 증가했는데 기업이 탄력적으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활용하기 시작한 영향”이라며 기간제법을 정권 초기에 손질했으면 계약직이 줄었을 텐데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보호’ 말하더니 사용자 면책한 법·제도 개편

정권 초기 지지율과 21대 총선에서 거둔 압도적인 승리 같은 정치적 성과에 비해 노동공약 추진 성과가 낮다 보니 문재인 정부를 기만적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과정에서 재계 숙원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비롯한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를 대거 도입하고 박근혜 정부보다 낮은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7.2%), 여기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정까지 겹치면서 이런 비판에 힘을 싣는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정권의 모든 기간에 걸쳐 대단히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노동정책으로 일관했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선별적 무기계약직화해 이른바 취업준비생과 경쟁으로 내몰았고, 고용노동부가 잘못된 행정해석을 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정상화하면서 오히려 연착륙을 빌미로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는 등 국민과 노동자를 기만한 정책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서도 사실상 플랫폼기업의 사용자 책임을 면제하는 수준의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을 발의하는 등 표리부동했다고 덧붙였다.
 

차기 정부 산적한 노동문제 풀려면 “문재인 공약을 보라”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감축 및 처우개선, 노동존중 사회 실현 세 가지 방향으로 노동공약을 제시했다. 경제민주화 공약 중에는 기업임금분포 공시제도 같은 실효성 있는 제도도 담겼다. 다만 상당수가 미이행 과제로 남고 말았다. <매일노동뉴스>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에게 차기 정부가 어떤 과제에 주목해야 할지 물었다.

“일하는 사람 보호 제도 도입이 핵심”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전통적인 고용과 임금관계를 벗어난 노동과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지 논의해야 한다. 고용관계를 넘어 소득을 토대로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도 발전적으로 제시되고 있으므로 이를 체계화해 새로운 노동시장의 제도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게 과제다.”

“노조의 사회적 역할 강화”
윤애림 서울대 고용법복지센터 책임연구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는 가장 현실적인 저항세력으로 건강한 노조가 필요하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업규제와 중소상인 보호 같은 대책도 재계 불만에 막히는 상황이다. 이를 견인하려면 양극화를 넘어선 조직적이고 건강한 노동자의 사회적 힘을 강화하는 게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사각지대 해소로 고용보험 확대”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고용보험기금 소진이 가팔라 확충이 시급하다.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줄여 보험 가입자를 늘리고, 정부가 일반회계로 고용보험기금을 충당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공무원과 교사 같은 별도의 직역연금을 가진 직군을 장기적으로 고용보험으로 끌어들일 고민도 해야 한다.”

“여성 고용형태 안정으로서의 최저임금”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외관상 젠더와 무관하지만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여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잘 실행해야 한다. 최저임금 정책도 특히 중요하다. 공공보육 비중을 최소 절반 이상 늘려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고용형태를 개선해야 한다.”

“산재예방, 정보공개가 시작점”
강태선 세명대 교수

“산재를 예방하려면 정보공개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일정한 기준 이상의 사건은 피의사실 공표처럼 밝히고 모니터링하고 보도도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안전 관련 법원 판례도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기업도 정보를 갖고 전담조직을 만들 수 있다.”

“이전소득 본격 고민이 양극화 억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이전소득을 높일 방법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산업전환과 돌봄, 노동교육 같은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야 저소득 노동자의 사회적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어학·직업훈련·디지털 교육 같은 정책을 펴면서 소득을 지원하는 모델을 빠르게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공약 이행하라”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해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것을 이행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상시·지속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해야 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이행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와 프리랜서 보호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2조를 개정하면 된다.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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