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휴게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은 탓에 계단 밑이나 창고 등에서 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휴게실이 있어도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데다 환풍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A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지상 20층 지하 5층의 큰 건물을 하루 종일 쓸고 닦습니다. 그런데 600여명의 청소노동자들은 휴게실이 없습니다. 5평 남짓 탈의실에 몇 명이 들어가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직원용 엘리베이터 앞이나 폐기물 보관장소 같은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아야 합니다. 새벽같이 출근해 일하다가 폐기물 박스를 깔고 계단 밑에서 쉴 때가 많습니다.”
응답자 44.1% “환기장치 없어”
공기질 측정했더니, 이산화탄소 농도 기준치 3배
16일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지난 7월2일부터 7월15일까지 노조 9개 지부·분회 소속 청소노동자 397명을 대상으로 휴게실·휴게공간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8.1%가 “휴게실이 없다”고 답했다. 휴게실 대신 쉬는 장소로 작업장·청소도구실·탈의실·진료대기실·직원식당 같은 ‘기타’라고 꼽은 노동자(35.8%)가 가장 많았고 창고(23.2%), 계단 밑(22.2%)이 뒤를 이었다.
휴게공간은 사용인원에 비해 비좁고 환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휴게실·휴게공간 면적이 적당한지 묻는 질문에 대부분의 응답자(82.7%)는 “좁다”고 했다. 환기상태에 대해서는 “환기가 잘 되지 않고 냄새가 난다”는 응답자가 64%였다. 환기장치가 없다고 답한 노동자도 44.1%나 됐다. 작업 후 세수나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해서도 68.4%가 “없다”고 답했다.
노조가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선별한 5개 병원 휴게실·휴게공간을 대상으로 9월28일부터 10월29일까지 공기질을 측정해 보니 4개 병원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정부 지침보다 높게 나왔다. 고용노동부 고시인 ‘사무실 공기질 관리지침’에 따르면 미세먼지(PM10)는 세제곱미터당 100마이크로그램(㎍), 이산화탄소는 1천피피엠(ppm) 이하로 관리돼야 한다. 그런데 한 병원의 지하주차장에 위치한 여자휴게실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2천839피피엠으로 측정돼 기준치의 3배에 육박했다. 경기도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B씨는 “지하주차장에 있는 10평짜리 휴게실을 90명의 노동자가 사용하고 있다”며 “휴게실에 있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들이 많아 공기질을 측정했더니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말했다.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 전체 사업장에 적용해야”
노조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2021 병원 청소노동자 휴게실 실태 증언대회’를 열었다. 정춘숙·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산업안전보건법 128조의2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춰야 한다. 대상 사업장과 구체적인 설치·관리기준은 시행령에 위임했다. 이 조항은 내년 8월부터 적용된다.
노동계에서는 전체 사업장을 대상으로 사각지대 없이 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진영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은 “휴게시설 설치는 건강권의 문제이자 기본 인권의 문제”라며 “고용규모나 업종과 무관하게 전면 적용하고, 이동노동이나 장소임대 사업장 등에 대해 제한적으로 관리기준 일부에 예외조항을 두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진영 부장은 “휴게시설의 최소면적 기준뿐 아니라 1명당 면적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며 “휴게실에 구비돼 있는 사물함·비품 등의 면적은 제외하는 기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