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쿠팡의 기업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코로나19 집단감염과 노동자들의 과로 논란 때부터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낮은 안전인식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쿠팡 노동자들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물류센터 노동환경 개선 방안을 6회에 걸쳐 제시한다.<편집자>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센터분회장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센터분회장

올해 1월이었다. 나와 함께 인천4센터에서 일하던 두 명의 동료가 해고됐다. 계약갱신 거부에 의한 계약종료라지만, 실상은 해고다. 3개월 계약직으로 일하던 분은 계약갱신 거부로 실업자가 됐지만, 근무일수가 180일 미만이라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었다. 다른 한 분은 2년을 꽉 채워 일한 노동자였다.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고 근태도 확실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해고였다. 해고사유도 알 수 없었다. 비정규직 관련 법에 따라 2년 이상 일한 비정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쿠팡은 법 위에 있다.

인천4센터에서는 올해 1월부터 재계약 시기가 도래한 대부분 노동자가 계약갱신 거부를 당했다. 제대로 된 사유 통보도 없었다. 자체 인사평가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소문에 따르면 당시 추진 중이던 2층·4층 메자닌(복층) 설치 공사로 인해 업무량이 줄어 인력 감축이 진행되는 것이라고 했다. 몇 개월 동안의 계약해지 후, 메자닌 공사 계획이 모두 취소됐다는 얘기가 들렸다. 재계약이 다가온 노동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인천4센터 계약직 채용공고도 채용사이트에 올라왔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겪는 이유는 쿠팡의 고용구조 때문이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90%이상이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 가운데 절반이 계약직, 나머지는 일용직으로 추산된다. 계약직 노동자는 심지어 3개월, 9개월, 12개월, 무기계약으로 쪼개져 있다. 무기계약직은 2년 이상 일해야만 될 수 있다. 무기계약직의 비율은 전체 계약직 중 20%를 넘지 않는다.

매 재계약 과정에서 쿠팡은 자기들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선별한다. 현장 노동자들은 재계약 기준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대략 다음과 같은 상황에 계약거부를 당한다고 알고 있다. 근태가 좋지 않거나 업무 성과가 낮은 사람(구UPH), 쿠팡 내 반성문으로 불리는 ‘사실관계확인서’를 자주 쓴 사람. 그뿐만 아니라 관리자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성희롱·괴롭힘 피해를 신고한 사람,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한 사람, 노동조합을 준비한 사람, 쿠팡 물류센터의 문제점을 사회에 공론화한 사람도 계약갱신 거부 대상이다. 작년 쿠팡 부천신선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 때 유일하게 재계약이 안 된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현장에서 일하다 다쳐 산재신청을 했다는 것, 그리고 쿠팡 코로나19 피해자 모임을 만들어 부천신선센터 코로나 집단감염 과정에서 회사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적극적으로 밝혀내고 공론화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계약직 노동자들은 재계약을 의식하며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속앓이로 참을 수밖에 없다. 매일 재계약을 해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소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출근 확정 문자를 받지 못해서 당장의 일자리와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쿠팡발코로나19피해자지원대책위에서 지난해 발표한 쿠팡 인권실태조사보서에서는 위와 같이 일용직과 계약직으로 분절된, 계약직 단계마다 재계약을 거쳐야 하는 쿠팡 물류센터의 고용 체계를 ‘단절된 사다리 효과’라고 명명했다.

‘단절된 사다리 효과, <쿠팡 인권실태조사보고서>’ <변혁정치> 128호에서 재인용
‘단절된 사다리 효과, <쿠팡 인권실태조사보고서>’ <변혁정치> 128호에서 재인용

쿠팡은 계약직·일용직 노동자 모두 고용을 미끼로 무권리 상태로 내몰았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휴게공간과 유급휴게시간도, 충분한 냉난방장치도 없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감시와 통제는 실시간이다. 저임금·고강도노동, 연속된 야간노동에 힘들게 일하지만 열심히 일한다고 고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쿠팡의 극단적인 불안정고용 시스템 속에서 노동자들은 쓰다 버려지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쿠팡이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다음으로 한국 사회 고용규모 3위(2020년 9월 국민연금 가입자 기준 4만3천여명)를 달성했다. 그만큼 많은 노동자들이 쿠팡의 고용 시스템에 고통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허술한 비정규직 보호 제도와 미국계 기업 쿠팡이 만나 비정규직 90%, 일용직 절반, 3·9·12개월 쪼개기 계약이라는 극악한 시스템을 낳았다. 쿠팡의 고용 시스템이 물류산업 전반과 한국 사회 전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쿠팡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할 때, 계약해지와 블랙리스트에서 자신의 고용을 지키고 쪼개기 계약을 철폐하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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