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각각 25만4천톤, 18만7천톤, 그리고 넷 제로(net zero)로 만드는 세 가지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지난 5일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했음에도 시나리오에는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하는 안이 하나밖에 없다는 점과 불확실한 기술개발에 의존한 온실가스 순배출량 감축을 전망하고 있다는 점, 비전문가로 구성한 시민회의 방식의 정책 결정 거버넌스 등 적지 않은 허점이 있다는 비판이다.
기후단체 “온실가스 배출안을 중립안이라고 내놔”
탄소중립위가 내놓은 안은 전환·산업·수송·건물·농축수산·폐기물·흡수원·탄소포집저장(CCUS) 기술·수소·탈루 같은 10개 분야로 구분하고 각각의 감축 전망치를 제시했다.
1안은 기존의 체계와 구조를 활용하면서 기술발전과 원·연료 전환을 고려한 안이다. 특히 에너지 전환 부문에서 석탄발전소 7기를 유지하는 게 전제다. 2안은 기술 발전과 원·연료 전환에 더해 화석연료를 줄이고 생활양식 변화를 통해 추가 감축하는 계획이다. 3안은 석탄발전소를 완전히 폐기해 화석원료를 과감히 감축하고 수소 공급을 전량 그린수소로 전환하는 안이다. 탄소중립위는 유일하게 넷 제로 전망치를 내놓은 3안을 “획기적으로 감축”한 안이라고 표현했다.
당장 기후·환경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에너지정의연대는 5일 탄소중립위 시나리오 발표 직후 성명서를 내고 “탄소중립이 되는 안은 세 가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2050년 얼마의 탄소를 남길 것인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순배출 제로(0)를 목표로 어떤 과정을 그리고 도달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안이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도 같은날 “탄소중립 달성에 실패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전망하는 안을 탄소중립 시나리오로 발표한 것 자체가 탄소중립위의 빈약한 실력을 증명한다”고 비판했다.
에너지 집약산업구조 진단 없어
기후·환경 전문가들이 첫 손가락에 꼽는 문제는 에너지 수요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2050년 에너지 수요를 현행과 유사한 수준으로 전망해 재생에너지 충당 계획을 냈고, 그래도 탄소중립이 어려우니까 불확실성이 큰 CCUS를 삽입해 수치를 맞췄다”며 “인구가 줄고 GDP도 정체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에너지 집약적 산업으로 수출을 하지 못할 상황인데 에너지 수요를 줄이지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뿐 아니라 조선·철강·반도체같이 막대한 에너지 소모를 수반한 산업구조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탄소중립위는 지금처럼 에너지를 쓰는 것을 전제로 해 비현실적인 온실가스 순배출량 전망치가 나왔다는 것이다. 김현우 연구기획위원은 “정직하게 하려면 과거의 한국 사회는 어떠했고 앞으로 30년 뒤의 한국 사회 삶은 어떤지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 총수요가 줄어들거나 줄이는 안도 내놓으면서 시나리오를 짜야 하는데 에너지 수요를 줄이지 못한다는 재계·산업계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 시나리오를 짜니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뒤엔 어떨지 ‘플롯’도 없는 시나리오
시나리오로서의 기본적인 완성도도 문제다. 이헌석 정의당 녹색정의위원장은 “시나리오라면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어야 하는데 달랑 2050년 전망치만 내놓았다”며 “2030년과 2040년을 어떻게 경과할 것인지 기본적으로 담아야 하는데 순배출량 저감 경로도 방식도 없는 주먹구구다”고 비판했다. 시나리오의 기본인 ‘플롯’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2030년은 온실가스 감축에 중요한 기로다. 현재 국회에서는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논의를 하면서 2030년 감축 전망치 명시를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홍정기 환경부 차관은 지난달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법안심사소위원회에 출석해 “2050년까지 시나리오가 우선 나오면 그와 연계해 2030년·2040년 중간 목표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탄소중립위가 내놓은 시나리오에도 2030년과 2040년에 대한 내용은 쏙 빠진 셈이 됐다.
국민 의견 수렴이라며 ‘숙의제’로 ‘이벤트’
세 가지 초안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는 거버넌스 방식도 비판을 받고 있다. 탄소중립위는 시나리오를 발표하면서 7일 무작위로 구성한 시민 500여명으로 탄소중립시민회의를 구성하고 이 곳에서 일반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시도해 온 시민숙의 방식의 일환이다.
그러나 전문적이고 시급한 기후위기 대응에 이런 방식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헌석 위원장은 “토론회를 하기에도 부실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두고 50명이든 500명이든 국민 전체 의견을 묻는 이벤트 수준의 거버넌스가 적절한가”라며 “보다 전문적이고 책임 있는 방식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시민사회와 기후·환경단체, 노동계에서는 실망스러운 세 가지 시나리오를 비판하는 성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이해당사자인 노동계는 시나리오 재수립을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5일 “시나리오에 담긴 노동전환 방안은 신규 일자리 창출과 노동전환 교육 같은 해묵은 정책”이라며 “탄소중립위는 결성부터 친정부 단체와 인사, 재벌과 대기업 위주로 구성돼 정의로운 전환을 논의할 공간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는데 이번 시나리오 발표를 통해 기우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