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선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사진 왼쪽)이 5일 한국노총회관을 방문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정부 여당이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대표님, 약속을 이행해 주십시오.”

김형선 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앞에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섰다. “잘 알고 있습니다.” 송영길 대표가 이렇게 답했지만 김 위원장은 더 강하게 요구를 전달했다. “지금 금융당국은 개인 한 사람을 노조추천이사로 삼는 것으로 면피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제도화입니다.” 송 대표는 역시 잘 알겠다고 답하고 자리를 옮겼다. 송 대표가 한국노총을 방문한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회관 7층의 모습이다. 금융노조(위원장 박홍배) 소속 조합원 20여명이 손팻말을 들고 줄지어 섰다.

이날 송 대표는 지난 5월2일 당대표 당선 이후 처음 한국노총을 찾았다. 정책연대협약을 맺고 있는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이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노동이사제 입법 지연이 서먹한 관계의 배경 중 하나다.

‘뒤통수’ 맞은 기업은행지부, 낙하산 위기 수출입은행지부

기업은행지부를 비롯한 금융노조는 꾸준히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김형선 위원장과 함께 신현호 한국수출입은행지부 위원장과 김승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지부 위원장이 송 대표 방문에 맞춰 한국노총을 찾은 이유다.

지부가 처한 사정은 각각 다르다. 지난해 1월 윤종원 기업은행장 출근을 저지하다가 당시 당·정·청과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합의했던 기업은행지부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말한다. 4월 금융위원회가 노조추천 이사후보가 아닌 회사추천 이사후보를 비상임이사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 김형선 위원장은 송 대표 공식일정을 따라다니며 50일 넘게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지부는 낙하산 문제가 걸렸다. 지난해에도 한 차례 노조추천이사제 시도를 했다 실패한 지부는 올해도 재도전에 나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낙하산 정황을 알게 돼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캠코지부는 사회적 합의 이행이 뼈대다. 지난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가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합의했으니 9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캠코지부가 추천한 이사후보를 비상임이사로 선임해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들은 송 대표를 향해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힘쓰라고 촉구했다. 송 대표는 이들에게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전화해 보겠다” “애써 보겠다”고 답했지만 웃음기는 없었다. 노동자들의 표정도 굳었다.

수년째 다툼 이어지는데 “처음 접한다” 말에 씁쓸한 노동자

이날 씁쓸한 표정의 노동자도 있었다. 노조 한국금융안전지부(위원장 이동훈)다. 수년째 노사분규로 다툼을 겪고 있지만 작은 사업장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다. 송 대표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특별근로감독 중에도 단체협약을 무시하는 한국금융안전 김석”이라고 쓴 팻말을 든 이동훈 위원장은 행렬의 가장 앞에 서 있었다. 송 대표는 이동훈 위원장에게 다가가면서 “무슨 문제인가, 처음 접하는 사업장이다”고 말했다. 옆에 섰던 박홍배 위원장이 “정치권을 뒷배로 둔 사업가가 회사를 인수해 갑질과 전횡을 하고 있는 곳”이라고 부연했다. 송 대표와 몇 마디를 나눈 이동훈 위원장은 “이렇게라도 상황을 알려 해결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도 노동이사제 문제를 강조했다. 그는 “경사노위에서 노동이사제와 근로자대표제 도입 관련 합의를 이뤘는데 정부와 노사가 동의한 내용”이라며 “국회 각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돼 있으니 하루속히 법을 통과해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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