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경영이 위기에 빠졌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마 전면 중단과 무관중 경마 실시를 오가면서 수익을 내지 못한 가운데 말 산업 상생을 위해 상금 명목의 지출은 지속하다 보니 쌓아 둔 유보금이 바닥날 상황이다. 노동자들은 유급휴업을 실시하고 휴업수당을 자진삭감하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지만 경영이 호전될 여지는 사실상 없다.
10일 마사회 노사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2천904억원이던 마사회 유보금은 월 무관중 경마 상금 지급 같은 건으로 월 400억원을 지출하고 있어 7~8월께 전액 소진이 불가피한 흐름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경마장과 장외발매소 일부에서 관중 입장 아래 경마를 시행하기도 했지만 관중입장 수익과 비교해 지출액이 너무 커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형편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시기를 특정하긴 어렵지만 올해 중순께 유보금 고갈이 확실시되며, 차입경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마사회 노동자들은 유급휴직수당을 법에서 정한 70%를 하회하는 50%로 합의해 받고 있지만 독자적인 경영위기 타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사회 관계자 “회장 문제 때문에 말도 못 꺼냈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마사회 차입금 논의는 오리무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관련 내용을 전혀 마사회에서 전달받지 못했다”며 “지금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주무부처로 경영 어려움을 논의하는 게 관례다. 그런데 유보금 고갈을 불과 두세 달 앞두고도 마사회가 농림부를 찾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김우남 회장의 막말 사건 때문이다. 지난달 3선 국회의원 출신 김우남 회장이 의원 시절 자신을 보좌하던 보좌관을 비서실장으로 특채하려다 무산되자 해당 업무를 추진한 담당자에게 “XX새끼”라며 욕설한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는 김우남 회장에 대한 특별감찰을 실시해 의혹을 모두 사실로 확인하고 농림부에 사건을 이첩했다.
이 때문에 마사회가 농림부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유보금 고갈을 앞두고 있어 차입경영이 불가피하고, 이를 주무부처인 농림부와 논의해야 하는데 김우남 회장 사건으로 진행이 어렵다”며 “(정부에) 아직 말조차 못 꺼냈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사회노조(위원장 홍기복)는 김우남 회장에게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우남 회장 취임을 승인한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는 직무정지를 의결하라고 요구했다. 홍기복 위원장은 “김우남 회장의 해임 절차가 지연할수록 마사회 경영 어려움은 커진다”며 “즉각적인 업무정지라도 내려 경영 정상화에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차입·상생안 시행에 김 회장 역량 필요” 여론도
송경용 이사장 “회장 퇴진이 혁신안 시행에 유리”
이런 마사회노조의 행보에 이견도 있다. 마필관리사와 말 생산농가를 중심으로 김우남 회장을 재신임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유는 마사회노조와 같다. 마필관리사노조 서울지부(지부장 김보현)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우남 회장 재신임을 요구했다. 김보현 지부장은 “3선 의원 출신 김우남 회장이 낙마하면 차입금 확보가 더욱 어려울 수 있고, 애써 마련한 마필관리사와 기수 같은 약자를 위한 마사회 상생 혁신방안이 좌초할 수 있다”며 재신임을 촉구했다. 마사회는 올해 1월 토론회를 열어 마필관리사와 기수의 보수를 늘리고 안전 제도를 강화하는 상생 혁신방안을 공개했다.
그러나 상생 혁신방안 마련에 참여한 이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은 “상생 혁신방안은 마사회와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각계각층이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마련한 것으로 김우남 회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그의 거취가 상생 혁신방안 시행에 영향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신속히 퇴진하는 게 상생 혁신방안 시행에 더욱 유익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