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은행권 점포 폐쇄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수익추구에 몰두해 금융 공공성을 훼손하는 점포 폐쇄를 중단하고, 금융당국도 책임 있는 관리·감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금융노조(위원장 박홍배)는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행이 연이어 점포를 폐쇄하면서 금융소비자 권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해 9월 말 기준 시중·지방은행 점포는 4천572곳이다. 지난해 9월 말 4천740곳과 비교해 168곳 줄었다. 노조는 은행들이 연말까지 80곳을 더 폐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은행은 앞다퉈 점포 문을 닫았다. 2015년 말 7천281곳이던 전체 점포는 2017년 6천700곳 수준으로 감소했고, 올해 상반기 말 6천592곳으로 쪼그라들었다.
은행은 디지털 전환을 강조한다. 비대면 거래가 늘었고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이 커졌다는 것이다. 디지털금융을 기반으로 급속히 변하는 금융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영업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홍배 위원장 “미·일도 점포 폐쇄 관리·감독하는데…”
노조는 은행이 공공성을 훼손하는 행보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박홍배 위원장은 “우리 경제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황이고, 은행권이 적자를 봤거나 큰 어려움에 처한 상황도 아니다”며 “코로나19를 빌미로 내방객이 줄었다며 점포를 폐쇄하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미국과 일본은 점포 폐쇄 3개월 이전 영향을 분석하고, 폐쇄 사실을 금융당국에 신고한다”며 “허가제는 아니지만 점포 폐쇄를 은행 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관리·감독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은행이 점포를 계속 줄이면 노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 금융소비자가 피해를 본다고 우려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영 효율화를 목적으로 점포를 폐쇄하면 점포가 더욱 절실한 도서산간지역의 점포부터 폐쇄돼 금융 접근성이 훼손된다”며 “도서산간지역뿐만 아니라 도시에 거주하는 고령층 디지털취약 금융소비자 역시 점포를 찾아 먼 거리를 헤매는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씨티은행이 점포를 폐쇄해 돈 많고 잘 사는 동네 점포만 남기고 다른 곳을 모두 없앴다”며 “이 같은 점포 폐쇄로 전세자금대출 등 은행의 금융서비스가 절실한 서민들은 더더욱 소외됐다”고 꼬집었다.
SC제일은행 점포 절반 사라진 10년 새
행원도 2천300명 줄고 신규채용 감소
일자리 감소 우려도 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4개 시중은행 점포 549곳이 폐쇄돼 일자리 7천490개가 사라졌다”며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금융이 소비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점포 폐쇄를 지속하도록 금감원이 방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동수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2010년 408곳이던 SC제일은행 점포가 올해는 210여곳으로 10년 새 절반가량이 사라졌다”며 “이로 인해 2010년 6천500명 규모였던 재직 인원도 올해 4천200명으로 줄어 10년간 2천300여명이 거리로 내몰렸고, 신입 행원도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우리나라는 1998년까지 은행의 점포 신설과 폐쇄를 법으로 규제했다. 그러다 1998년 이후 점차 규제를 완화했고 2000년부터 완전 자율화했다. 김명수 노조 금융정책본부 국장은 “당시에는 은행 점포를 늘리는 게 은행의 수익에 보탬이 돼 해당 조항은 신설 속도를 늦추는 규제로 인식됐다”며 “이로 인해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지 못하고 삭제돼 무분별한 점포 폐쇄로 이어졌다”고 풀이했다.
은행의 점포 폐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금융당국은 은행권 자율규제인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 절차’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당초 올해 안에 개정을 완료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 상황이다.
노조는 효율적으로 점포 폐쇄를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의 규제안 마련을 촉구하는 개선 요구서를 금감원에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