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취업규칙 변경절차 완화 가이드라인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기업의 배타적 주도권을 허용할 경우 산업현장에 노사갈등과 법적분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주최로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의 노동시장 평가와 유연안정성 확보방안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포함한 임금체계 개혁과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이슈는 매우 긴요한 사항이지만 입법을 통해 노사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에는 업종·기업 간 차이가 크고 이해 조정과정에 변수가 많다”며 “노사 자율협약으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궁극적으로는 임금체계 개편논의로 수렴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임금피크제, 중소기업 고용조정 프로그램으로 변질될 수도"

권 교수는 이날 “정부가 노동시장의 주요 이슈를 독자적으로 정책화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면 해당 정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실제 효과가 있을지 여부도 회의적”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정부가 발표할 예정인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절차 완화방안의 경우 과거 통상임금 분쟁처럼 법 해석과 행정지침의 불일치로 인사관리상 혼란이 발생하고 노사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권 교수의 진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히 아쉬울 것이 없는 노동계가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대화의 장에 복귀할 유인이 없고, 오히려 기업 내 이해관계 교섭 또는 총파업 등 정치적 여론동원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은 노조조직력과 교섭력이 상대적으로 큰 대기업에 적용하기 어렵고, 정책효과의 대부분은 정년보장 자체가 의문시되는 중견·중소기업 부문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며 “임금피크제가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고용조정 프로그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임금피크제와 취업규칙 변경 관련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정 간 지속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권 교수는 “노사정은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 연착륙을 위한 한시적 제도라는 것을 공유해야 한다”며 “현재의 연공형 임금체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임금피크제로 임금부담을 조정하는 방법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고, 결국 근본적 해법은 임금체계 개편에서 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에는 인식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임금체계 개편을 임금수준과 근로조건의 불이익변경으로 간주해 의제 목록에서 배제하려 하지 말고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고려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근로자 임금과 기업 고용보장 교환하자"

이날 토론회에서는 “근로자의 임금과 기업의 고용보장을 교환하는 빅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지난해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3개 회원국의 임금근로자 평균 근속기간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속기간이 5.6년으로 가장 짧았다”며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고용불안 문제를 우선적으로 언급했다. 금 교수에 따르면 △대기업 사무직 근로자의 50세 전후 명예퇴직 △중소기업 근로자의 빈번한 이직 △전체 근로자의 60%를 차지하는 영세 사업장(30인 미만)의 잦은 파산·폐업이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특히 "고용 불안정이 심각한 만큼 사회적 부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양적 유연화를 지양하고 기능적 유연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다.

금 교수는 “2013년 한국노동패널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10명 중 7명이 좋은 일자리 요건으로 안정적 일자리를 꼽았다”며 “기능적 유연화의 일환으로 근로자는 임금피크제 등을 받아들여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는 대신 기업은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임금과 고용의 빅딜’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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