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9일 한진중공업 노사는 정리해고자 94명에 대해 1년 내 재취업, 손해배상 청구 최소화에 합의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309일 고공농성과 다섯 차례에 걸친 희망버스 투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와 권고안 제출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끝에 나온 합의였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복직 3일 만에 정리해고자들에게 휴업명령을 내렸고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를 상대로 158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거액의 손배청구는 1년여 뒤 고 최강서 지회 조직차장의 자살을 불렀다.

기륭전자 노사는 2010년 11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해고된 지 1천895일 만에 복직에 합의했다. 해고자들의 고공단식농성과 야당 정치인들의 개입 끝에 어렵사리 합의문이 도출됐다. 그런데 회사는 경영사정을 이유로 2년6개월 뒤에야 합의가 이행됐다. 복직한 노동자들은 일감도 월급도 받지 못한 채 회사 사무실에 출근만 했다. 회사는 8개월 뒤 이들만 남겨 놓은 채 야반도주했다.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은 이사 간 사무실을 수소문하는 노동자들을 “우리와 상관 없는 사람”이라며 모른 체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필요”

극심한 갈등과 사회·정치적 중재 끝에 도출된 사회적 합의를 어기는 것에 대해 강력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속노조 한진중지회와 기륭전자분회, 기륭전자공동대책위원회가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사회적 합의 불이행, 사회적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노동계와 전문가·정치인들은 한목소리로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 기업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제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흥희 기륭전자분회장은 “합의 불이행을 처벌할 수 있도록 법률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분회장은 특히 “사회적 합의로 약속된 고용문제를 기업이 책임지지 못하면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 구체적인 법률적 제재방안이 검토됐다.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현행법에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제도가 있지만 노동자가 입은 피해에 한정해 보상을 하면 되기 때문에 합의를 지키지 않아도 사용자가 손해 볼 것이 별로 없다”며 “기업을 경제적으로 제재하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변 노동위원회의 이용우 변호사는 비정규직이나 정리해고 사안을 다루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제안했다. 해당 기구에서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가 구제명령을 하고, 구제명령마저 이행하지 않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거나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권 연대책임 져야”

법적인 제재 외에 사회적 합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사회적 합의에 참가한 이들의 책임을 강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진중 희망버스 투쟁을 주도했던 송경동 시인은 “사회적 합의의 책임자들, 그중 정치인들이 끝까지 책임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개입해 사회적 합의를 한 뒤 합의이행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권영숙 민교협 노동위원장은 “사회적 합의를 중재하고 조인식에 참여하는 정치세력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며 “합의서에 관련 조항을 넣고 사후적 조치를 하도록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한진중 투쟁 당시 희망버스에 올랐던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도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정 고문은 “합의 불이행을 법·제도적으로 제재하기 위해서는 야권, 특히 노동계 출신 의원들이 이를 우선순위에 놓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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