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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노동자 가족 보살피는 게 그리 잘못된 건가요"'음서제' 낙인 찍힌 단협 채용조항에 유가족 탄식 … 금속노조 "노사 합의 국가개입 안돼" 공식 대응

'현대판 음서제도.' 고용노동부가 단체협약에 고용세습 규정이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언론에 언급되는 말이다. 업무상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직계가족을 특별채용한다는 조항이 문제가 됐다. 법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채용은 기업 경영과 인사에 관한 사항이니 단협에 특별채용 조건을 다는 것은 인사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다. 20년 넘게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 나온 판결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최근 소송을 낸 당사자 박미숙(52)씨를 만났다. 박씨는 "우리나라 법원은 피도 눈물도 없고, 감정도 없는 곳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보상금 없어도 되니 남편이 살아 돌아오길 수도 없이 꿈꿨다"며 한 말이다. 그는 남편의 병이 업무상질병이라는 사실을 확인받기까지 3년 동안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리고 더 긴 시간을 법원에서 회사와 다퉈야 할지도 모를 처지에 놓였다.

한 노동자의 죽음이 그의 가족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마치 짜고 치듯 고용세습에 동조했다는 회사의 태도는 어땠는지 가늠하는 것도 그렇다.

노동계가 단체협약 이행명령 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이유 중 하나다. 3일 금속노조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산재 사망 노동자의 직계가족을 특별채용한다는 내용이 담긴 단협을 체결한 사업장은 전국 505곳이다. 노동계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금속노조는 단협 백지화에 대한 대응 준비를 하고 있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협을 정부나 사법부가 개입하는 것이 타당한지 법리를 마련하고, 토론회나 공청회로 전문가그룹의 의견을 청취한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에 따라 발생한 산재에 대해 전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로 노사가 합의해 단협을 체결해 왔던 것"이라며 "노조를 약화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국가가 노사의 합의로 만든 고용조건에 개입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박미숙씨 사건과 관련해 "장기근속자 자녀 채용과 업무상사망 자녀 채용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도 노사 합의 정신을 위배하면서까지 이를 억지로 동일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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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중인 박미숙씨
산재 사망자 직계가족 특별채용 단협 시정 대상일까



고용세습이란 단어가 세간의 화재다. 올해 3월 고용노동부는 전국 2천769개 사업장 단체협약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우선·특별채용 단협 사업장이 698개라고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노동부는 기존에 문제 삼았던 유일교섭단체 조항과 노조 운영비 지원은 물론 퇴직자나 산재노동자 가족에 대한 우선·특별채용 단협에 대해 자율개선을 권고했다.

정부가 징을 울리자 여당이 북을 치고 나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신보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우선·특별채용 단협을 '현대판 음서제'에 비유하며 "고용세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른바 고용세습을 요구하는 가족을 만났다. 박미숙(52)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남편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사과와 특별채용 이행을 요구하며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씨의 남편 이아무개(사망당시 49)는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해 소하리공장과 시화연구소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합병한 뒤인 2008년 2월 현대차 남양연구소로 전직했다. 전직한 해 8월 그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0년 7월 숨졌다. 평소 금형세척작업 과정에서 벤젠이 다량 포함된 시너와 도료를 사용한 것이 발병 원인이 됐다. 근로복지공단은 2013년 이씨의 죽음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박씨는 2014년 남편 옛 회사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업무상재해에 대해 책임을 질 것과 박씨의 큰딸 이아무개양을 특별채용하라고 요구했다. 1심·2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했지만 특별채용 요구는 기각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와 기아자동차지부의 단체협약에는 "업무상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월 이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씨가 죽은 뒤 두 개 지부 중 어느 한 곳도 단협 이행을 회사측에 요구하지 않았다. 박씨는 "노조도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직접 회사에 얘기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았다"며 "그래서 손해배상 소송을 하면서 단협 이행을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정부와 신보라 의원의 시선으로 보면 박씨와 그의 딸은 남편·아버지 죽음을 기회(?)로 삼아 기업의 인사권에 개입하려는 부도덕한 사람들이다. 진짜 그럴까. 박씨의 말을 종합하면 남편·아버지의 죽음은 한 가정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줬다. 박씨는 생계전선으로 내몰렸고, 두 자녀는 미래에 변화가 왔다. 회사 직원이 일하다 죽었는데 기업은 나 몰라라 했다.

박씨는 "산재로 죽은 이들을 나라가 보살피지 않으면 회사라도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러자고 노조와 회사가 고용 문제를 합의했을 텐데 왜 이행을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박씨와 인터뷰는 지난달 27일 오후 경기도 군포 한 커피숍에서 이뤄졌다.

“남편 산재 사망 뒤 가족인생 통째로 바뀌었다”

- 고인이 백혈병 진단을 받기 몇 개월 전 기아차에서 현대차로 자리를 옮겼다.

"옛 기아자동차 시화연구소에서 근무하다 회사가 합병되면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로 전출됐다. 현대차로 옮긴 뒤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일은 시키지 않고 시설 봉사활동 등 여기저기 끌려 다니기만 했다. 남편이 당시 스트레스를 많이 호소했다. 돌이켜 보니 현대차로 옮긴 뒤 자리 잡고 일만 제대로 하고 있었어도 발병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10년 남편이 죽고 2013년에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산재라고 하는데 왜 회사는 사과도 없고 보상도 없는지 의아하던 차에 남편의 옛 회사 동료들이 소송을 진행하자는 의견을 줬다. 변호사와 이야기도 이미 다 해놓았다며 동의만 하면 회사를 상대로 책임을 묻겠다는 말을 듣고 응낙했다."

- 2심 판결 후 고용승계 문제가 크게 회자됐다.

"고용승계를 소송 전에 우리가 먼저 얘기한 적은 없다. 남편이 투병 중일 때 산재로 죽으면 직계가족 채용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말을 얼핏 했다. 사람이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남편을 보고 알았다. 잠시 뒤면 병상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치료를 좀 더 받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말을 할 때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남편은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사별 후 가족생활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그 전에는 전업주부였다. 남편이 돈 벌이를 하지 못하게 했다. 남편 돌아가신 다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저녁을 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수입이 뚝 끊겼기 때문에 생활비가 필요했다. 매일 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주말 근무로 옮겼는데 그마저도 손에 마비가 오는 질병을 얻어 그만뒀다. 어린이집에서 얼마나 일하고 언제 그만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사람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배우자 사별이라고 하더라. 내가 그렇다. 기억이 왔다 갔다 한다. 최근 1~2년 전부터 경마장에서 발권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첫 딸도 대학 졸업 후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취업되는 곳에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막내딸은 취업이 잘 된다는 간호학과로 진학하도록 내가 억지로 권했다."

박씨는 남편 사별 전후 가장 달라진 가족 풍경을 명절로 꼽았다. 그동안 지내지 않던 차례를 여자 셋이 지내게 됐다. 그는 "2008년 8월25일 아프기 시작해서 2010년 7월19일까지, 꼬박 23개월 아프다 돌아가셨다"며 "아이들이 아빠 차례상·제사상을 준비하는 경우는 또래 친구들 중 자기뿐이라고 말하는 날에는 앞에서는 웃었지만 뒤돌아서서는 많이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 유골을 고향에 가져갈 때 자녀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골항아리를 품에 안은 큰딸이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 대신 들어 주려고 했어요. 화장 열기가 가시지 않아 항아리가 너무 뜨거운 데도 꼭 안은 채 있더라고요. 더운 여름이었는데 말이에요."

“산재 노동자 가족 보살피자는 게 '특별채용' 노사합의 아닌가”

- 산재로 인정됐고, 손해배상 소송을 이길 경우 회사로부터 보상금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돈 많이 받았는데 고용까지 요구하는 건 과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돈과 남편·아빠를 바꾸는 집이 있겠나. 보상금 없어도 되니 남편이 살아 돌아오길 수도 없이 꿈꿨다. 판결문에 남편이 앞으로 얼마를 더 일할 수 있고, 그래서 회사가 이 정도를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사람 목숨과 값어치를 숫자로만 표현했다. 우리나라 법원은 피도 눈물도 없고, 감정도 없는 곳 같았다. 돈 몇 푼만 쥐어주면 우리 남편 죽음이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고, 돈으로 남편 빈자리에 대한 보상을 말하는 것에 너무나 화가 난다. 큰딸이 아빠가 일한 곳이라면 생산직이라도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방법으로라도 회사로부터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있나 보다."

- 고용 승계 문제는 박씨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제는 합의금이나 보상금보다 채용이 먼저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노조와 회사가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것 아닌가. 약속한 사항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데도 회사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현대기아차 정도라면 직원 죽음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생계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 나라가 산재로 죽은 이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회사라도 나서 줘야 한다. 그러자고 노조와 회사가 약속을 하고 문서로 만든 것으로 안다. 이건 가정을 지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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