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바꿔야 한다. 2011년 7월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복수노조가 허용된 지 만 5년이 지났다. 긍정적인 평가보단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복수노조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대됐던 노동기본권 보장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유성기업·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보쉬전장 등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과 발전 자회사 기존 노조들은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한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에 와해 직전까지 내몰렸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르는데도 제도개선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권 역시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매일노동뉴스>가 두 차례에 걸쳐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들여다본다. 이젠 바꿔야 할 때다.<편집자>


[게재 순서]
1. 말뿐인 소수노조 노동기본권

2.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변한 복수노조

▲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복수노조제도 악용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 정기훈 기자

2014년 말 설립된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30명으로 출발한 지회 조합원은 올해 700여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과반수노조인 한국타이어노조와 회사가 이달 18일 잠정합의한 임금·단체협약 탓에 위기를 맞고 있다.

노사합의에 따르면 노조가 공장 내에서 선전전을 하려면 회사와 선전내용과 장소 등을 협의해야 한다. 노조간부들의 현장순회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도 단협에 포함됐다. 소수노조인 만큼 선전전과 현장순회로 조합원 규모를 늘려 왔는데, 그 길이 원천봉쇄된 것이다.

임단협 합의안이 나오기까지 지회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회사가 일반해고 도입을 제시했는데도 소수노조인 지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전활동뿐이었다. 금속노조는 “교섭과 관련해 협의를 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과반수노조에 14차례나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지회는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노조 대전충청지부 관계자는 “한국타이어 노사합의는 소수노조일수록 불리하게 적용된다”며 “처음부터 금속노조 활동을 제약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교섭은커녕 현장순회조차 봉쇄당한 소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해 잇따라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제도가 허용된 지 만 5년이 지났다. 우리나라 복수노조 제도의 핵심은 교섭창구 단일화다. 여러 노조 중에서 교섭대표노조를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복수의 노조들이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노조를 정하지 못하면 전체 조합원 중 절반 넘게 차지하는 노조만 회사와 교섭을 할 수 있다. 과반수노조가 없으면 자율적으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려야 한다.

개별노조들이 따로 사용자와 교섭을 할 수도 있지만 사용자가 동의할 때나 가능한 얘기다. 노조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하나의 기업에 하나의 교섭창구만 허용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시행 전부터 뭇매를 맞았다. 가장 많이 지적된 것이 소수노조나 산별노조의 노동기본권 보장 여부였다. 사용자들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악용해 특정노조를 차별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할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국타이어 사례는 소수노조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약당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노조를 만드는 것에만 성공했을 뿐 교섭 참여는커녕 목소리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유성기업·갑을오토텍 노사갈등은 사용자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악용해 부당노동행위를 하면서 비롯됐다. 복수노조 설립에 개입하는 것은 노조 와해를 노리는 사용자들의 단골 메뉴가 돼 버렸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허용된 지 만 5년이 흐른 지금, 노동계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를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2009년 12월 노사정 합의서에 서명한 한국노총도 본격 시행을 앞두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전면개정으로 입장을 바꾼 지 오래다. 1사 1교섭창구를 원칙으로 하는 현행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노조에 교섭을 허용하는 자율교섭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실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소수노조 권리보장 측면에서 특히 그렇다.
 

 


“노조 간 차별 말라” 노동위 명령은 '휴지 조각'
정부 용역보고서도 “공정대표의무제 개선해야”


2009년 12월 노사정 합의 직후 노조법 개정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교섭창구 단일화에 따른 소수노조 노동기본권 보장 여부가 쟁점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면 소수노조들의 노동 3권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은 “공정대표의무 제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최대 한도로 소수노조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대표의무 제도는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들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해당 제도를 통해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소수노조의 권리를 상당 부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공정대표의무 제도는 부당노동행위처럼 노동위원회에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하지만 부당노동행위와 달리 공정대표의무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노조법에 부당노동행위 사례가 예시돼 있는 반면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하는 차별행위는 언급돼 있지 않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시행 전부터 공정대표의무 제도의 실효성을 의심한 이유다.

현실에서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인천에 있는 자동차·선박·항공기 부품 제조업체인 핸즈코퍼레이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회사는 금속노조 핸즈코퍼레이션지회보다 나중에 생긴 기업노조에만 노조 사무실·노조 게시판·근로시간 면제한도(타임오프)를 제공했다. 2014년 임단협에서는 징계경력자에게는 성과상여금을 주지 않기로 기업노조와 합의했다. 그런 다음 지회 조합원들을 집중적으로 징계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6월 회사와 교섭대표노조의 행위를 "공정대표의무 위반이자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노조 간 차별을 공정대표의무 위반뿐 아니라 부당노동행위로까지 간주한 첫 사례다.

그러자 회사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시정·구제명령은 1년이 되도록 이행되지 않고 있다. 기업노조와 지회 간 타임오프 협상이 길어지면서 박광일 지회장은 하루 두 시간 타임오프를 임시로 사용한다. 회사는 겨우 2.5평의 노조사무실 제공을 제안했다. 지회는 이를 거부하고 본사 앞에 설치한 천막을 노조사무실 대신 사용 중이다. 지회 조합원은 400여명에서 140여명으로 급감했다.

중앙노동위 주문 사항도 모호했다. 중노위는 “이 사건 노조(지회)가 노조 사무실·노조 게시판·근로시간 면제한도를 제공 및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인 해결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합리적인 해결’이라는 주문은 노사가 협상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없는 지회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한 차별에 대한 시정기준과 소수노조가 잃어버린 권리 원상회복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판정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노조법에 공정대표의무 위반 유형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사용자가 칼자루 쥔 개별교섭
노조 간 차별도구로 전락


공정대표의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은 노동계나 일부 전문가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노동부가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2014년 12월 발표한 ‘복수노조 운영실태 및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공정대표의무 제도에 대해서는 “교섭대표노조가 소수노조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도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흠결돼 있고, 그 판단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다”며 “향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노위에 따르면 2011년 5건에 불과했던 공정대표의무 위반 접수건수는 지난해 204건으로 급증했다. 복수노조 관련 노동위원회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3.8%에서 28.6%로 늘었다.

소수노조 권리보장을 위해 현행 복수노조 제도가 채택하고 있는 방안 중 하나는 자율교섭 제도다. 과반수노조든, 공동교섭대표단이든 하나의 교섭창구만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사용자가 동의하면 자율교섭을 할 수 있다.

결정권이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에 노동계는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율교섭마저 악용하는 사용자들이 있다. 예컨대 친사용자측 노조가 조직적으로 열세일 때에는 개별교섭을 허용해 기존 노조와의 교섭을 지연하거나 각종 차별을 둔다. 반대로 기존 노조가 소수노조가 되면 창구단일화를 요구하면서 태도를 바꾼다. 개별교섭의 경우 공정대표의무 제도를 적용받지 않는 만큼 노조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콘티넨탈지회·보쉬전장지회가 이런 방식으로 차별을 경험했다. 보쉬전장과 콘티넨탈 사측은 부당노동행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창구단일화 찬성론자도 “산별교섭 보장해야”

교섭창구 단일화를 기본으로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직전인 2009년 12월 임시국회. 마지막까지 남은 쟁점은 산별노조나 초기업노조에 대한 교섭 허용 여부였다.

노동계와 야당은 산별노조를 교섭창구 단일화에서 제외시키라고 요구했다. 산별교섭이 형해화하는 것은 물론 산별교섭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서 소수노조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산별노조에게만 특혜를 줄 수 없다”고 반대했다. 결국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2010년 1월1일 새벽 노조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면서 노동계와 야당의 주장은 반영되지 못했다.

사업장 단위를 기준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현재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하다. 사업장 이동이 잦은 건설업과 행정당국의 정책이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하역산업·운수산업의 경우 현행 방식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로 사업장별 교섭권을 확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혹여 교섭권을 확보하더라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들 산업부터 공동교섭단위 제도를 만들어 시행한 뒤 장기적으로 전 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면서도 “산별교섭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산별노조 지회의 탈퇴와 기업별노조 전환을 인정하면서 산별교섭이 와해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산별교섭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눈귀 닫은 정부, 7년 전 약속도 외면

복수노조 제도 도입취지에 역행하는 데다,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까지 옥죄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하거나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산별노조의 교섭권 보장이나 공정대표의무·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감독강화 계획이 없다면 창구단일화 제도를 폐지하고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별다른 계획이 없다. 임서정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은 “현재 제도가 어느 정도 안착되고 있다고 본다”며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할 시점이지 파급력이 큰 집단적 노사관계법을 손댈 상황은 아니다”고 밝혔다.

복수노조 관련 조항을 담은 현행 노조법은 2009년 12월4일 노사정 합의가 나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인 2010년 1월1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만큼 세밀한 검토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은 2009년 12월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문제점을 보완해서 여러 가지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그 후에 나타난 문제에 대해서도 또다시 보완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제도 시행 3년 반이 지난 2014년 12월에 나온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 역시 공정대표의무 제도개선, 일부 산업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외 같은 제도보완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복수노조 제도개선에 나설 명분과 이유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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