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10.22 목 07:30
상단여백
HOME 노동이슈 노동법
[대법원 공개변론] 22년간 16명, 산재 유가족 특별채용이 고용세습?유족측 “사용자가 채용 자유 행사한 것” vs 사측 “사용자의 계약 불체결 자유 침해”
▲ 대한민국 대법원 유튜브 생중계 화면 갈무리
“단체협약은 당사자 간 평화적인 교섭과 투쟁에 따른 협약자치의 결과물이다. 산업재해 피해노동자의 유족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조항은 사용자가 채용의 자유를 행사한 결과다.”(원고측 법률대리인 김상은 변호사)

“고용세습 조항은 헌법상 기본권인 채용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나름의 채용구조를 적용할 수도 없고 결격사유가 없으면 유족을 무조건 채용해야 한다. 채용시기도 (채용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에 채용해야 한다.”(피고측 법률대리인 박상훈 변호사)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2층 대법정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을 경우 유가족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의 적법성을 두고 산재 피해노동자 유가족측과 사측이 날선 공방을 했다.

2010년 7월 49세 나이에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숨진 현대·기아자동차 노동자 이아무개씨 유족은 고인의 산재가 인정된 직후인 2014년 회사에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기아차 노사가 맺은 단협 중 업무상재해 유가족을 특별채용하기로 한 조항을 이행하고 손해배상하라는 것이다. 2013년 근로복지공단은 1985년부터 현대차·기아차에서 일했던 고인이 업무 중 벤젠이 다량 포함된 시너와 도료를 사용했고, 백혈병 발병 원인이 됐다고 봤다. 고인은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해 2008년 현대차로 전적했다.

1심과 2심은 특별채용 내용이 담긴 단협 조항은 무효라며 회사측 손을 들어줬다. 원심은 단협 규정이 사용자 채용의 자유를 제한하고,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반해 민법 103조에 위배된다는 판결했다. 민법 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한다.

“회사, 인사규정 따라 25년 동안 이행”

원고측 법률대리인은 사용자의 산재 유가족 특별채용 내용을 담은 단협 조항이 회사가 채용의 자유를 행사한 결과임을 강조했다. 그 근거로 단협에 담긴 해석 여지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취업규칙(인사규정)을 들었다. 기아자동차 단협 27조2항과 현대자동차 단협 97조에는 “업무상재해로 인한 사망과 6급 이상 장해 조합원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기아차 인사규정에도 담겼다. 기아차 인사규정 7조4항에는 산재 피해 유가족의 직계가족을 채용하는 경우 특별전형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또한 전형절차로 면접·인(적)성검상·신체검사 등을 심사할 수 있음을 규정했다.

피고측 법률대리인인 박상훈 변호사(법무법인 화우)는 “행복추구권에서 유래하는 계약체결의 자유 가운데 계약 불체결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법리적인 측면에서 기본권의 사전 포기는 그 자체로 무효”라고 반박했다.

김선수 대법관은 피고측 주장에 “채용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법률이나 행정명령을 통해 채용을 강제할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피고 스스로 의사에 따라 단협을 체결하고 인사규정을 제정한 것을 채용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하는 맞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구직자 평등권 침해” vs “극히 미미”

25년 동안 유지·이행됐던 단협 내용을 부정하게 된 이유로 피고측은 시대 상황이 달라진 점을 강조했다. 피고측 법률대리인 박상훈 변호사는 “고용세습 조항이 체결된 후 이 사건 조항이 유효인 줄 알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대기업 일자리 문제가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인 영역으로 인정돼 여론의 비판이 고조됐다”며 “노사 당사자 이외에도 3자인 청년 구직자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무효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고의 생각은 달랐다. 3차 채용기회를 전면적으로 박탈한다고 보기에는 특별채용 빈도가 극미하다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 원고측 법률대리인에 따르면 기아차동차는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0여년 동안 3천548명을 고용했지만, 1994년부터 2016년까지 산재유족을 16명(0.5% 미만) 채용했다. 사용자 채용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볼 정도의 숫자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원고측 참고인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계속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주고받는 계약으로 내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서로를 구속하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단체협약의 개별 조항은 다른 조항들과 유기적 관계에서 포괄적으로 합의된 것”이라며 “특정 조항을 무효화할 경우 당해 조항의 반대급부로 단협에 포함된 조항과의 대응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별채용 피해자는 회사 아닌 구직자”

정년퇴직자 자녀와 장기근속자 자녀에게도 적용되는 특별채용과 산재 유가족 특별채용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펼쳤다. 김상은 변호사는 “특별채용 대상자의 어려움 정도 내지는 보호 필요성을 고려하면 이 둘은 구분해야 한다”며 “이를 동일시한 원심의 판결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상훈 변호사는 “고용세습 조항은 정년퇴직자와 20년 이상 장기근속자 특별채용도 함께 규정한다”며 “현대판 음서제”라고 비판했다. 공방은 김선수 대법관이 정리했다. 김 대법관은 “정년퇴직자 자녀가 기아차를 상대로 우선채용해 달라고 하면 기아차는 들어주느냐”고 피고측에 질문했다. 이에 “그렇지 않다”고 피고측이 대답하자 김 대법관은 “정년퇴직자 자녀와 산재 유족 채용은 회사 스스로 달리 정하고 있는 것으로 같은 차원에서 규정할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기택 대법관은 “다른 구직자에게 돌아갈 이익(채용 기회)을 회사는 마치 자기 것을 내주는 것처럼, 회사가 피해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회사가 산재 피해자를 위해 마땅히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줘야 할 것을 다른 주머니에서 꺼내 주는 것이라 생각해 본질을 호도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지적했다. 이기택 대법관은 “만일 승소한다면 회사는 특별채용 외에 유가족에게 어떤 보상을 할 계획이 있냐”고 묻기도 했다. “부모가 노조 조합원이었다는 이유로 특별채용되면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얻은 사회적 신분”이라는 피고측 주장도 반박됐다. 김선수 대법관은 “우연한 계기로 부모가 사망했다면 원고측 입장에서는 사회적 재난을 당한 것이지 신분을 획득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대기업 오너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와 경영권을 세습한 것이 특혜”라고 일갈했다.

강예슬  yeah@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예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