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가 고용노동부·지방자치단체의 단체협약 시정명령 의결요청을 90% 이상 인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협에 대한 행정관청의 시정명령 남발을 제어할 장치가 망가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가 올해 1천500여개 사업장에 단협 자율개선을 권고한 만큼 단협 시정명령 건수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일노동뉴스>는 25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속노련이 함께 분석한 ‘고용노동부의 과도한 행정지도 행위에 대한 산업현장의 비판’ 자료와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위에서 받은 '최근 5년간 노동위원회 시정명령 의결현황'을 입수했다.

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 12개 지방노동위원회는 286건의 단협 시정명령 사건을 처리했다. 노동위는 이 중 83.2%인 238건에서 행정관청이 요청한 대로 시정명령을 의결했다. 기각(18건)하거나 각하(3건)한 사건은 21건에 불과했다. 행정관청이 스스로 취하(27건)한 사건을 제외하면 인정률이 93%까지 올라간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31조3항에 따르면 행정관청은 단협 중 위법한 내용이 있는 경우 노동위 의결을 얻어 시정을 명령할 수 있다. 노동위 의결을 받아 시정명령을 하도록 한 것은 남용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행정관청이 요청한 10건 중 9건을 노동위가 인정해 주면서 제도 취지가 무색한 실정이다. 한정애 의원은 “행정관청이 시정명령을 하기 전에 노동위가 준사법기관으로서 거름종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정부의 시정명령 의결요청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노동부는 올해 4~6월 1천503개 사업장에 "위법하거나 불합리한 단협을 자율적으로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주로 △유일교섭단체 △퇴직자나 산업재해 노동자 가족에 대한 우선채용 △노조 운영비를 원조하거나 시설편의 제공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 관련 법령 미달 조항이 개선 대상이다. 심지어 "징계해고나 구조조정시 노조와 합의" 조항은 위법하지 않은데도 "인사·경영권을 침해해 불합리하다"는 이유를 들어 자율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용득 의원은 “단협에 따라 우선·특별 채용된 인원이 실제 있는지, 불합리하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판단인지 노동부에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한편 노동부는 자율개선을 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노동위에 시정명령 의결을 요청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사법처리에 나설 방침이다. 금속노련 관계자는 “정부가 지금까지 문제 삼지 않았던 단협 조항에 대해 강압적으로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기존 단협을 무시하고 정부 마음대로 표준단협안을 제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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