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업무상재해로 숨진 직원의 직계가족을 특별채용하는 내용의 단체협약 조항을 인정할지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노동계는 "재해사망 노동자 유가족을 채용하는 것은 한 가정의 생존권을 지키는 문제"라며 조속한 재판을 촉구했다.

금속노조는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한 단협 정신을 받아들이고 특별채용 조항을 인정하라"고 밝혔다.

고용승계 규정을 두고 있는 단체협약이 논란이 된 것은 2016년께다. 같은해 3월 고용노동부는 전국 2천769개 사업장 단체협약 실태를 전수조사한 뒤 "우선·특별채용 단협 사업장이 698곳"이라고 발표했다.

노동부는 산재노동자 가족 우선·특별채용 단협을 가진 사업장에 자율개선을 권고했다. 당시 여권은 "현대판 음서제" 혹은 "고용세습"이라고 주장하며 노동계 때리기에 몰두했다. 특별채용이 이뤄진 사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사그라졌다.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23년간 기아·현대자동차에서 일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숨진 이아무개(사망당시 49세) 사건은 특별채용과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유가족은 이씨 죽음이 업무상재해로 인정된 것을 근거로 특별채용을 현대차에 요구했다. 현대차 노사가 2013년 맺은 단협은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했거나 6급 이상 장애로 퇴직할 시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 중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특별채용하도록 한다"고 규정돼 있다.

유가족은 회사가 특별채용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했지만 특별채용 요구는 기각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은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하는 단협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나아가 귀족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우리 사회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일각의 귀족노조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법원은 2016년 9월7일 유가족이 상고를 한 뒤부터 이날까지 단 한 차례도 재판기일을 정하지 않았다. "관련 법리에 대해 심층 검토 중"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공식 입장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회사의 조치 소홀로 노동자가 산재로 숨졌고, 가족채용으로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것이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일이냐"며 "대법원은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합법적인 단협을 인정하라"로 주문했다. 노조는 이날부터 대법원 앞에서 이씨 사건의 조속한 재판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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