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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센터에 떼이고, 고객에 치이고…” 마를 날 없는 통신대기업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눈물'밉보일까 봐 욕설 참고, 심부름까지 … 그물망 성과평가에 수수료 삭감 일쑤

"고객님, SK기사인데요, 지금 방문해도 될까요?" 지난 25일 오전 경기지역 SK브로드밴드 서비스센터 기사인 김민성(33·가명)씨는 차를 몰면서도 고객에게 연거푸 전화를 걸었다. 그의 주황색 유니폼에는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마크가 찍혀 있다. 차 뒷좌석은 두꺼운 케이블선 뭉치와 모뎀, IPTV 셋톱박스, 공구박스와 사다리, 안전모로 꽉 차 있다. 그러나 이 중 SK브로드밴드가 기사를 위해 지급한 것은 허름한 안전모 하나뿐이었다. SK텔레콤의 하청업체인 서비스센터에서 인터넷·IPTV·인터넷전화 개통(설치)과 수리 업무를 재하청 받은 그는 차량도, 공구도, 안전장비도, 사다리도 직접 사서 쓴다.

"본사에서 안전화를 지급한대 놓고 나중엔 급여에서 차감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옷도 남이 입었던 재고품을 주거나 해요. 겨울옷은 너무 추워서 다들 그냥 등산바지 사 입어요."

김민성씨는 단독주택의 인터넷이나 IPTV 이상 등 센터로 접수된 장애신고나 신규 개통업무를 스마트폰으로 할당받아 처리한다. 업무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1시간마다 등록하게끔 돼 있지만 센터는 긴급업무라는 명목으로 정해진 시간 외에도 업무를 내리꽂기 일쑤다. 심할 때는 15분에 한 건씩 들어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고객에게 사정해서 시간을 미루거나, 다른 지역에서 업무를 하다 뛰어가야 한다. 저녁 7시 이후에도 업무할당이나 고객의 요청이 들어오면 역시 달려가야 한다. 센터가 연중무휴로 영업을 하는지라 기사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연장근로도 당연해졌다. 김씨는 지난 추석에 당직을 섰다. 공식 휴가는 1년 중 딱 2박3일뿐이다. 그마저도 마음대로 날짜를 정하지 못한다.

TV 조립에, 쓰레기까지 버려야

올해로 7년차인 김씨의 이날 첫 업무는 IPTV 장애신고 처리였다. 신고한 집을 찾아가 구형 셋톱박스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일이었다. 고객이 거실에 있는 TV를 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에 김씨는 방에서 거실까지 랜선을 새로 연결한 뒤 '타카'로 박아 바닥에 고정시키느라 분주했다. TV 뒤에 복잡하게 얽힌 게임기·모뎀·전화기선 등을 헤집고 랜선을 연결하는 것으로 일을 끝냈다. 15분이 걸렸다.

김씨는 재빠르게 공구를 챙겼다. 옆 동네로 가서 BTV(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TV 상표)와 인터넷 전화를 개통해 줘야 한다. 개통에는 1시간 가량 걸린다. 도착한 곳은 빌라다. 공사할 곳은 4층이라고 했다. 작업이 복잡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이런 식이다. 차를 주차하자마자 김씨는 랜선과 셋톱박스, 인터넷 전화기와 공구가방을 들고 빌라 계단을 뛰어올라 갔다. 집안에서 공사할 곳을 살피고는 계단을 나는 듯이 내려온다. 그리고는 차에서 동축케이블(케이블TV선)을 꺼내 옥상으로 올라갔다. "TV 신호를 인터넷 신호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빌라 옥상에 설치된 서브탭(방송신호를 각 가구로 분배하는 기기)에 연결한 케이블선을 집쪽으로 내려보내고는 다시 고객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드릴로 창틀 아래에 구멍을 뚫고 방 안으로 선을 끌어들여 컴퓨터 모뎀에 연결하고, 공유기를 설치했다.

여기까지가 김씨의 공식업무다. 그런데 해야 할 일만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개 가욋일이 있다는 거다. 빌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황당하게도 셋톱박스를 연결할 TV가 없었다. 고객은 손을 다쳤다며 상자째 놓인 새 TV를 가리켰다. TV를 조립하고, 전원선과 케이블을 연결하는 김씨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이 와중에도 그는 "인터넷 TV·전화·휴대폰 결합상품에 가입하시라"며 영업을 했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해당 고객이 가입권유 대상으로 표시돼 있었다. 빌라 앞 전신주에 올라가 새로 연결된 케이블 라벨을 바꿔 달고, TV 포장박스를 쓰레기장에 내다 버리고 나서야 그는 한숨을 돌렸다. 그렇게 일을 마칠 때까지 계단을 예닐곱 차례 오르락내리락했다. 고객이 내준 음료수에는 손도 못 댔다. 게으름 피울 시간은 없다. 다음 주문을 처리하려면 50분 만에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에 까이고 센터에 치이고

오전 주문을 처리하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단골 식당 앞에서 먼저 온 팀원들이 김씨를 맞았다. 김씨보다 늦게, 정승룡(38·가명)씨는 테이프로 온몸에 붙은 먼지를 떼면서 왔다.“랜선 안 보이게 깔아 달래서 장롱·침대 들어 엎고 왔거든요.” 정씨의 말에 동료들이 웃는다.

김민성씨가 한마디 거든다. “별별 요구가 많아요. 이삿짐 날라 달라고 하고, 물건 사 오라고 심부름시키고. 다른 컴퓨터나 오디오까지 손봐 달라고 하고.”

뭐라 항의하지도 못한다. 고객들한테 밉보이면 요샛말로 '까이기' 때문이다. 까이면 받는 돈이 즐어든다. 고객이 본사 고객팀이나 품질관리팀에 항의하면 수수료가 차감되고, 경위서까지 써야 한다. '해피콜'이라는 이름의 서비스 만족도 평가에서 만점을 받지 못하면 20만원이 차감된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대에 가지 못해도, 장애처리 이후 일정 기간 안에 신고가 다시 들어와도 수수료 차감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무조건 잘 보여야 하는 감정노동이 추가된다. 김씨는 "TV를 설치하려고 TV를 켰는데 ‘이게 얼마짜린데 마음대로 켜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욕을 먹기도 한다. 이영희(36·가명)씨가 휴대폰 통화녹음을 재생했다. "야 이 XX야"라는 욕설이 쉬지 않고 쏟아졌다. 상품 약정기간을 잘못 안내했다고 화가 난 고객이란다. 욕을 먹으면서도 이씨는 전화를 끊을 수도 없었다. 페널티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동료 기사가 욕설을 하는 고객과 말다툼을 했다는 이유로 며칠간 일을 받지 못했던 일이 생각났다. 영희씨는 그렇게 5분간 묵묵히 욕을 들었다. "어떤 고객은 기사가 다녀간 이후 TV가 고장났다고 물어내라며 난리를 치더래요. 알고 보니 고객 과실로 물이 들어가 고장이 났던 건데. 그래도 본사에 항의하면 안 되니까 백화점 상품권을 사 들고 사과하고 왔죠." 영희씨가 한숨을 쉬었다.

영업을 못하면 회사가 수수료를 깎는다. 서비스센터는 한 달에 인터넷 2건, TV 2건 이상을 판매 목표치로 정하고, 성과에 따라 5등급으로 구분한다. 이 등급에는 페널티가 따라붙는다. "평균월급의 10%는 이걸로 까여요. 그러니까 다들 자기 명의로 가입하죠. 우리 집에도 나와 아내, 애들 명의로 4개의 인터넷·TV가 있어요." 정씨의 말이다. 기사들이 '자뻑'이라고 부르는 자기명의 상품 가입이다.

페널티는 업무압박에도 활용된다. 기사들은 하루에도 두세 번씩 기사별·팀별 업무실적과 남은 업무량을 문자로 받는다. 개인 업무실적이 떨어지면 팀원 전체가 불이익을 받는다. 개인별·팀별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도 노동법을 적용받았으면 좋겠어요"

심지어 다쳐도 수수료가 깎인다. 최민영(31·가명)씨는 어느 날 저녁 어두운 곳에서 작업을 하던 중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급여 걱정에 억지로 열흘 만에 출근했지만 이미 월급은 반토막 났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다리는 이따금 그날의 고통을 되새김질한다. 어디 산업재해뿐이겠는가. 근로계약서는 아예 없다. 김민성씨는 "그래도 4대 보험료는 떼어 가더라"며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는 개별 도급계약 관계지만 수수료 책정기준을 물어보면 '일 그만두고 싶으냐'고 협박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급여명세서는 나오는데, 총액만 나와요. 소득세 떼고 4대 보험 떼고 퇴직금 적립 명목으로 또 10%를 공제해요. 한 번은 본사가 수수료 책정을 잘못해서 다른 센터에서는 그걸 돌려받았는데 우리 센터만 모른 척 세 달을 보낸 뒤 노조에 딱 걸려서 문제가 됐죠. 제대로 책정을 했는지도 의심스럽고. 속이는지도 모르죠."

7년차인 김민성의 경우 페널티로 깎이는 수수료에, 기름값과 유지비·통신비·밥값을 떼고 나면 200만~22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아이 셋의 아버지인 김씨는 씨앤앰이나 엘지유플러스 서비스센터로 옮겨 봤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나마 동료들과 사이가 좋아 SK로 돌아왔을 뿐이다.

경력 15년차인 정승룡씨는 "본사의 외주화정책으로 기사들의 처우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본사가 서비스센터를 외주화하던 2007년 무렵에 해고됐다가 그해 재고용됐다.

“센터를 외주로 돌리고 값싼 외주 기사들을 쓰더니 일이 안 됐는지 결국 해고했던 기사들을 다시 불렀어요. 그 다음부터는 별별 항목을 덧씌워 기사들을 점점 쥐어짜는 거예요. 평가지표도 늘리고, 월급도 예전보다 30% 이상 줄었어요.”

그래도 노동자들은 “지난 3월 노조가 생긴 뒤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밤중에 울리는 업무 전화는 함께 거부하고, 부당한 지시에는 같은 목소리로 대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노조가 잘돼서 우리도 노동법을 적용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바뀌죠. 20대가 들어오면 사흘 만에 못하겠다고 나가거든요. 계속 이러면 기사들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 시스템도 무너지지 않겠어요? 이대로는 안 된다고 봐요." 서비스센터에서 막내라는 최민영씨의 바람이다.

<팁> IPTV(인터넷프로토콜TV)는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텔레비전 서비스다. 인터넷을 이용해 방송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를 텔레비전 수상기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상자] SK·LG 통신대기업 간접고용, 새 국면 맞나
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오늘 발표 … 노사교섭 일부 의견접근

고용노동부가 이르면 29일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를 대상으로 벌인 수시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대기업들의 간접고용 문제가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노동부와 희망연대노조에 따르면 노동부는 올해 5월19일부터 진행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협력업체 27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관계법 위반 수시감독 결과를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국회와 노조의 말을 종합하면 노동부는 근로감독 결과를 6월에 발표하려다 미뤘다.

근로감독의 쟁점은 서비스기사에 대한 근로자성 판단이다. 기사들은 서비스센터와 개별도급계약을 맺고도 사업소득세와 4대 보험료를 내거나, 협력업체의 정규직이면서도 사업소득세를 내는 등 복잡한 고용관계를 맺고 있다.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정책실장은 "이들은 원청 정책에 의해 센터 정규직에서 도급계약으로 강제 전환됐거나, 도급계약을 맺고도 사실상 센터에 고용된 형태로 직접 업무지시를 받아 왔다"며 "그럼에도 단순 임금체계만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한다면 노동부가 대기업 눈치 보기, 기업 봐주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행되는 노동위원회의 쟁의조정이 결렬되면 파업에 이를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며 "노동부의 명확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와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는 사측과 집중교섭을 시작한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다음달 2일(SK브로드밴드)과 7일(LG유플러스)로 쟁의조정 기간을 연장한 상태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경총은 도급계약을 맺은 개통기사의 정규직 전환 방안을 논의하는 노사TF팀을 구성하고, 임금과 단체협약 문제는 별도 TF팀을 꾸려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노조 관계자는 "적어도 내용적인 면에서 의견접근이 이뤄진 것 같다"면서도 "교섭이 진전될지는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성희  miyu@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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