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은회 기자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개정할 때 해당 법률에 ‘개방조항’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개방조항이란 기존에 노사가 단체교섭 등을 통해 동의·합의한 내용을 인정해 주는 일종의 예외조항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법원이 ‘일률적·정기적·고정적’ 요건을 충족하는 임금을 통상임금으로 보고, 노사가 교섭을 통해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합의한 임금까지 통상임금에 포함하도록 판단해 왔다. 기존의 노사합의는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기본급 대신 각종 비과세수당 등을 늘리는 방식으로 총액임금을 인상하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해 온 노조들은 노사합의를 뒷전에 둔 채 소송전에 뛰어들고 있다. 올해 5월 말 현재 전국 135개 사업장 노사가 통상임금 소송에 나선 상태다.

노사자치가 사라진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통상임금이 적게 평가됐다는 상실감과 ‘더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동시에 갖게 됐다. 사용자들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좁게 해석한 노동부의 행정해석을 따르자니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고, 법원의 판례를 따르자니 예측하지 못한 비용이 발생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

이와 관련해 이철수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노사가 단체교섭 등을 통해 합의를 도출한 부분은 그 취지와 내용을 살리는 방향에서 임금제도 개선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법·제도적으로 개방조항 설치를 조심스럽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법무법인 지평지성 주최로 열린 ‘현행 임금법제의 문제점과 해결책은 무엇인가’ 세미나에서 “일반적인 근로계약 영역에 개방조항을 둘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뒤 “통상임금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노사가 합의를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하고, 법원이 이를 존중하는 입법적 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임금 양극화 심화하는 통상임금 소송"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현재 진행 중인 통상임금 소송이 고용형태별 또는 기업규모별로 임금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통해 공공부문 임금인상을 제한하면서 각종 공무원수당을 복잡하게 늘린 상황에서 민간기업들이 임금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기본급을 줄이고 수당을 늘린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이 과정에서 노조들이 사용자들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결과 오늘날 복잡한 임금체계가 만들어졌다”고 진단했다. 임금체계가 복잡해진 원인에 대한 관심 없이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업종별·규모별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5월 말 현재 통상임금 소송에 나선 135개 사업장 중 68.1%가 운수업종이고, 제조업(25.2%)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 교수는 “현실에서 버스회사노조의 통상임금 소송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통상임금 소송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며 “현대차지부의 문제를 모든 노조의 문제로 일치시켜 이해하는 순간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집단이 생긴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통상임금 문제가 전형적인 임금의 이중구조, 즉 양극화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노사 간 대화 못지않게 노노 간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수십조원(한국노동연구원 추산 14조6천억~21조9천억원, 한국경총 추산 38조5천억원)에 달한다는데, 이 돈을 현대차지부 같은 대기업 정규직들이 가져가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이 과연 박수를 쳐 줄지, 이것이 과연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위한 미래지향적인 선택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과연동 임금체계 개편,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이면 효력 없어"

한편 고용노동부는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포함해 임금체계 개편 전반을 논의하는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해 논의에 들어간 상태다.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에 맞춰 고령자 고용안정을 위한 합리적인 임금체계를 모색하자는 취지도 담았다.

우리나라 임금은 올리기는 쉬워도 내리기는 어려운 ‘상향식 경직성’을 띠고, 근속연수가 늘어남에 따라 자동으로 호봉승급이 뒤따르는 연공급제의 비중이 높은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정부가 주도하는 임금제도 개선논의는 임금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유연성의 확보는 곧 경직성의 양보다. 노동계가 임금제도 개선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성과급제 도입을 위한 임금결정방식의 변경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고찰이 이뤄졌다. 김지형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전 대법관)는 성과급제 도입을 위한 임금결정방식 변경 절차로 △개별적 근로계약 변경 △취업규칙 변경 △단체협약에 의한 변경 등 3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김 변호사는 “개별 근로계약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하더라도 그것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위반되면 무효”라며 “임금피크제 도입도 노동자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부딪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금피크제 적용이 가까운 노동자일수록 임금삭감의 불이익이 상대적으로 크고, 임금피크제로부터 멀리 떨어진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임금인상의 기대가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판례는 “근로조건의 변경이 노동자들에게 전체적으로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고 노동자 상호 간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이러한 근로조건 변경은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연공급제에서 성과급제로 변경하는 것이 불이익한 변경이라면, 그 변경 절차는 취업규칙 변경이나 단협에 의한 변경이라는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취업규칙 변경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필요로 한다.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다면 그 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없다면 근로자의 과반수가 동의해야 한다. 기존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이 연공급제를 규정하고 있는 경우 단체협약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하더라도 성과급제보다 유리한 연공급제가 무효로 되지 않으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 임금의 경직성은 ‘임금은 보호의 대상’이라는 헌법 정신에 기초하고 있지만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임금 유연성에 대한 요구 역시 커지고 있다”며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요청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우리나라의 복잡한 임금체계가 소모적인 분쟁의 원인이라는 인식은 평균임금과 통상임금이라는 이원적 도구의 개념을 버리고 ‘표준임금’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법론을 낳기도 했다”며 “그러나 이는 임금구조가 복잡해진 원인이 순전히 임금법제의 복잡성에 있다는 식의 논리적 비약으로, 정부의 임금인상 억제와 각종 수당 확대에 대한 노사의 암묵적 동의가 오늘의 문제를 잉태한 원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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