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을 알린 올해 상반기에 노동이슈는 차고 넘쳤다. 정년연장·대체휴일·통상임금 등 굵직굵직한 노동 관련 이슈가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달궜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 협약을 체결하는 등 노사정 대화에 안간힘을 썼다. 반면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등 산적한 노동현안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민주노총 임원선거 파행 등 노사관계 토대가 약해지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이슈만 들끓는 형국이다.

노동자 '죽음의 행렬' 속 박근혜 정부 출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증을 받은 다음날부터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쏟아졌다. 지난해 12월21일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이, 이튿날에는 이운남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자가, 같은달 25일에는 이호일 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장이 목을 매거나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이호일 지부장의 빈소를 지키던 이기연 한국외대 수석부지부장도 26일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지부장의 뒤를 따랐다.

이들은 수년간 회사를 상대로 정리해고 철회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친 노조활동가였다. 절망의 5년을 보낸 이들에게 박근혜 후보 당선소식은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리는 계기가 됐다. 이들의 죽음으로 노조를 상대로 한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소송 문제가 다시 불거졌지만 역시 정치권은 무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국민대통합"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죽음에는 이상하리만치 침묵했다. 대선 패배의 충격이 컸던 민주당도 '멘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한진중 사태만 겨우 봉합한 채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노동자의 무덤 속에서 닻을 올린 박근혜 정부는 대선후보 시절 선거대책본부 차원에서 약속했던 쌍용차 국정조사를 모른 척했다.

노사갈등 꼬이는데 … "민주노총은 뭐하나"

민주노총은 이달 초 ‘박근혜 정부 100일 평가 보고서’를 내고 “박근혜 정부는 조직된 민주노조진영을 소외·고립·배제시키면서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부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를 매개로 포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사업장 노사갈등이 순조롭게 풀리기는커녕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양새다. 2천일을 넘긴 재능교육 사태를 비롯해 지난해 창조컨설팅 문건을 통해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사실로 드러난 유성기업 등 노조탄압 사업장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면서 지도부 공석사태가 장기화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장에서는 "도대체 민주노총은 뭘 하고 있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잇따르는 실정이다.

미국발 통상임금 민원, 임금체계 흔들다

집단적 노사관계 문제를 철저히 외면한 박근혜 정부는 개별적 근로기준에 대해서는 주도권을 쥐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초 국회를 뜨겁게 달군 정년 60세 의무화와 대체공휴일제 도입 논란이다. 정년연장은 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노동공약이었고, 대체공휴일제는 공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인수위가 국정과제로 선정한 과제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방미 기간 중 댄 애커슨 지엠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통상임금 논쟁을 촉발시켰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달 현재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9천580곳 중 135곳(1.41%)에서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 중이다. 통상임금 소송은 박 대통령의 통상임금 문제 해결 발언 이후 공공기관까지 확산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통상임금 해결 발언으로 노동자들에게 통상임금 학습 붐이 일었다"며 "대통령이 주도한 통상임금 논쟁이 임금체계 개편논의에 불을 댕겼다"고 지적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통상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면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노사정 협의를 제안했다. 방 장관은 지난달 20일 "통상임금 문제는 노사정 협의로 풀어야 한다”며 “통상임금 해석상의 논란이 없도록 판단기준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노사가 윈윈 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금협상의 당사자인 노사와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테이블에 마주앉자는 제안이다.

노동계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사용자단체도 시큰둥했다. 노사관계 전문가들도 고개를 저었다. 중앙단위 노사단체가 협상테이블에서 논의하기에는 통상임금이나 임금체계 개편 문제가 너무 첨예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부는 전문가들로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9월 국회에 정부 입장이 담긴 임금체계 개편 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노사정 일자리 협약 체결했지만…

지난달에는 노사정 일자리 협약이 체결됐다. 문진국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희범 한국경총 회장·방하남 노동부장관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 협약’을 발표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구성해 고용률 제고방안을 논의한 지 한 달 만이다.

이날 발표된 일자리 협약은 전문과 60개항의 본문으로 구성돼 있다. 노동부는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이를 통해 고용률 70% 달성과 중산층 70% 복원의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사정은 기업이 일자리의 원천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규제 합리화와 세제지원에 주력하기로 했다. 노사정은 특히 미래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현재의 노동시간과 임금체계를 대폭 개선하기로 뜻을 모았다. 남성·전일제 중심의 장시간 노동 관행으로는 고용률 70% 달성이 어렵다고 보고,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충과 노동시간단축을 병행해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일자리 협약은 그러나 노동계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노총이 빠진 채 한국노총과 경총·노동부만 합의한 반쪽짜리 노사정 협약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문진국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는 항의가 쏟아졌다.

정부는 일자리 협약을 바탕으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로드맵을 발표했다. 핵심은 시간제 고용 확산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시간제 일자리 93만개를 포함해 238만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부터 7급 이하 일반직 시간제 공무원 채용에 나선다.

하지만 일자리 로드맵은 "고용률 70%라는 산술적 목표를 위해 MB정부가 실패한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재탕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나쁜 일자리의 대명사인 시간제 일자리를 어떻게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만들 것인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을 관계로 번지는 노동의제

상반기 대한민국을 흔든 키워드는 갑을 관계였다. 남양유업 대리점주의 밀어내기 폭로로 시작된 갑의 횡포와 을의 눈물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역관계를 고스란히 보여 줬다. 우리 사회 고질적인 병폐였던 갑을 관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사회의 시선 밖에서 고통 받았던 '을'의 연대가 활발해졌다.

민주당이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만든 ‘을 지키기 경제민주화 추진위원회’는 최근 하도급계약을 통해 노동자를 위장 자영업자나 다른 회사 직원으로 둔갑시키는 위장도급·불법파견 문제까지 의제를 확장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불법파견 의혹과 티브로드 등 케이블 비정규직 문제가 대표적이다. 갑을 관계에 숨어 있던 노동이슈가 기존 노동자와 사용자의 범위를 허물어뜨리는 기폭제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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