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등은 물 빠진 가을 논에서 내내 굽었다. 축 늘어져 찌글찌글하던 젖가슴을 다 드러낸 채 활처럼 굽어 바빴다. 남의 눈 살필 겨를이 없었다. 아직 축축하던 논바닥으로 벼는 무거운 고개를 푹푹 처박았다. 썩었다. 싹이 텄다. 올해 농사도 텄다. 내일 모레면 거둘 논이었다. 타작이라도 하려고, 사료용으로라도 팔려면 일으켜야 했다. 허리를 접어 자꾸만 땅에 절했다. 온몸으로 껴안아 벼를 묶어 세웠다. 바랄 땐 그리 무심하던 비가 기어코 큰바람을 몰고 찾아 이 모양.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 모양. 아버지와 '갑'이라고 했다. 농사 관두고 도시로 나간 걸 참 잘한 일이라고 세 번을 말했다. 맞장구쳤다. 그러나 도시 나간 아버지, 자식농사 겨를 없어 똑 할매처럼 쭈글쭈글 늙었다곤 말하지 않았다. 한 해 전 흙을 찾아 시골로 이사했다고도 말을 못했다. 한평생 공사판 미장 일, 시멘트 독이 올라 쩍쩍 갈라진 거친 손으로 이젠 작은 텃밭에 고추며 배추를 가꾼다고도 하지 않았다. 완장 달린 제복 입고 눈 치우며 택배 받는 일을 얼마 전 시작한 게 생활비 걱정 때문이라는 것도 비밀에 부쳤다. 그저 속으로 할매나 울 아비나 그 신세 똑 '갑'이라고만 웅얼거렸다. 벌초 나선 길에 만난 맨발의 할매 등은 또 굽어 가을 논에서 홀로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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