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라 낼 머리칼도 얼마 없는 사람이 많았다. '바리깡'질 두어 번, 처삼촌 묘 벌초하듯 대충 밀고 당기면 깨끗했다. 늙은 노동자 머리숱이 워낙에 적었던 데다 원형 탈모 빈자리가 너른 탓이었다. 어느 한순간 순탄치 않았던 오랜 노조 활동의 흔적이다. 긴 머리칼에 미련 없던 사람도 여럿이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예의 그 비장한 표정 한번 없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잠시 눈을 떠 바라본 건 그 앞에 날리던 노란 깃발이며 그 아래서 꿈쩍 않던 조합원들이었을 테다. 사람 여럿이 불에 타 죽어도 꿈쩍 않는 비정한 시대가 부끄러웠던지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삭발 소식을 기자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채 자라지 못한 머리칼이 다시 여의도 칼바람에 흩날렸다. ‘시너를 끼얹고 싶은 심정’만을 마이크 잡아 널리 알렸다. 삭발 한번 한다고 달라질 게 뭐냐며 되물었던 신 사무총장이 앞서 구호를 외치는데 그 표정이 남다르다. 결기 서린 선창에 메아리가 우렁차니 삭발의 의미가 비로소 선명했다. 깎은 머리 머쓱해지지 않도록 잘 벼를 일이 남았는데, 그날 밤 여의도 문화마당을 뒤덮은 천막이 체온으로 더웠으니 깎은 머리 으쓱해 힘을 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