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뉴스를 시청한 동규씨가 집을 나선다. 딸 혜영(8)이와 아들 병준(5)이가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아빠를 배웅한다. 동규씨가 아이들과 아내의 볼에 모두 입을 맞추고 집을 나서면 자동차 세일즈맨 최동규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동규씨의 지인들은 그를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오전 8시10분 출근시간보다 항상 20여분 일찍 출근해 그날 하루 스케줄을 챙기고 오후 10시까지 고객들을 만나야하는 고된 생활에도 흐트러짐이 없이,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동료들과 지내는 시간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던 동규씨는 지점 회식 때도 가능하면 1차에서 끝내고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조금 늦게 퇴근하더라도 집에는 일을 가지고 오지 않았던 동규씨. 주말이면 인근 공원에서 가족들과 산책을 즐기던 동규씨에 대해 아내 우정씨는 혜영이와 병준이에게 친구와도 같은 소중한 아빠였다고 회상한다.
지난달 6일 아침도 그랬다. 동규씨는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향했고 평상시처럼 출근 준비를 마쳤다. 머리에 무스도 발랐고 양복도 챙겨 입었다. 수염만 깍지 않은 상태. 우정씨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남편의 모습은 자동차 세일즈맨 모습 그대로였다.

자동차 세일즈맨 고 최동규씨
대우자동차판매노조 조합원 고 최동규씨는 6일 오전 7시30분께 자신의 집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아내에게 발견돼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쓰러진 지 13시간만인 이날 오후 8시께 뇌출혈로 사망했다.
동규씨가 사망한 지 20일째인 지난달 26일 유족들은 고인의 빈소를 대구칠곡가톨릭병원에서 대우자동차판매(주) 본사가 위치한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2동으로 옮겼다. 유족들은 한 달여째 고인의 장례를 미루고 있었다. 민족 최대의 명절로 불리는 한가위, 차례조차 지내지 않은 채 말이다.
한가위 다음날인 지난 7일 기자가 고 최동규씨의 빈소를 찾았을 때 노모 임금조(73)씨는 단호히 말했다. “우리 막내 한을 풀 때까지 여기서 떠나지 않겠다.”
2남1녀 중 막내인 동규씨는 바로 위 큰 형 동호씨와 7살 터울이다. 그의 죽음을 예감한 듯 죽기 하루 직전인 지난달 5일 어머니를 찾아 짬뽕 한 그릇을 대접했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막내 동규씨의 마지막 모습은 연신 담배만 물고 있던 근심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막내가 워낙 잔정이 많아서 이전부터 점심한번 하자고 연락이 왔었는데, 녀석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아니까 내가 차일피일 미루다 만났거든. 이날도 안 나가려다 녀석이 하도 졸라서 나간 건데….” 짓무른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고인의 형인 최동호(47)씨가 대신 말을 잇는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이놈의 회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죽은 지 일주일쯤 서면으로 ‘회사쪽에 협조하지 않으면 산재처리에 협조할 수 없다’는 편지 한 장 달랑 보내더라. 최소한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하는 것이 먼저 아니냐.”
10년을 대우자동차판매 영업사원으로 최선을 다해 살던 동생의 삶에 대해 회사가 보인 반응은 차갑다 못해 냉소적이었다. 동호씨는 “대우차판매 사장이 무릎 꿇고 사과하고 다시는 이렇게 젊은 동생들이 죽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약속할 때까지는 절대 이곳에서 떠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동규씨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지인들에게 성실하고 선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고인은 매년 실시한 건강검진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술도 잘 마시지 않고, 담배도 하루 한 갑 이상을 피지 않았던, 건강했던 그가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한 원인은 무엇일까. 왜 가족들은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그가 근무하던 대우자동차판매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대우자동차판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김진필 대우자동차판매노조 위원장이 그의 죽음에 대해 풀어 놓는다. 대우자동차판매(주)는 GM대우 생산차량과 수입차, 상용(트럭, 버스)등을 판매하는 회사로 차량 판매는 직영부문과 대리점부분으로 나뉘어져 운영되고 있다. 직영부문 노동자들은 대우자동차판매에 직접 고용돼 기본급 70%, 판매성과에 따른 변동급 30%를 받는 노동자들이다. 이러한 임금체계를 CM이라고 부른다. 지난 2001년 10월 회사는 CM 임금체계를 성과급 중심체계인 SR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노조의 강한 반발을 샀다. 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SR은 기본급 30%, 판매성과에 따른 변동급 70%를 말한다.
노조는 이렇게 바뀐 임금체계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영업실적이 저조할 경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생존 자체에 위협을 줄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발, 2001년 12월부터 2004년 1월까지 2년2개월간 투쟁을 벌렸다. 이 과정에서 고 최동규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희망퇴직’과 ‘임금체계 전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김진필 노조 위원장은 “고인은 끝까지 회사쪽의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해 왔으며 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대우차판매 대구지역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서명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장기간의 투쟁이 끝나고 20여명의 노조 간부 중 SR 임금체계에 서명을 하지 않은 인원은 전병덕 당시 노조위원장과 나밖에 없었다”면서 “집요한 회사쪽의 설득과 협박과정으로 인해 2,500명에 달했던 조합원 수가 150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대우자동차판매 대표이사는 비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전문영업직발전협의회(전발협)을 결성해 체계적인 노조파괴에 나섰다는 이유로 지난 2004년 1천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부당노동행위와 관련 최고 3년 이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것을 감안할 때 중형에 해당한다.
이에 앞서 1997년 부당노동행위 사업장으로 지목돼 노동부로부터 특별감사를 받는 등 대우자동차판매(주)에서는 끊임없이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김 위원장의 말이다.

3,000여명 직원이 400여명이 되기까지
지난 8월11일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 대표이사 명의로 직영사업부분을 분할해 직원들을 신설법인으로 이동하고 이에 불응하는 직원들은 대기발령, 정리해고를 실시하겠다는 담화문이 발표됐다. 노조는 회사쪽의 일방적인 사업부분 분할은 ‘단체협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노사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회사는 노조의 합의요구를 외면하고 신설법인으로의 이동을 강요하며 불응할 경우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진필 위원장은 “적자 한 번 나지 않는 회사에서 직영 직원을 없애고, 별도법인을 만들어 직원들을 내쫓는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회사는 분할이라는 명목으로 구조조정을 실시, 대우자동차판매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회사는 지난달 29일 주주총회를 열어 신설법인 설립에 대한 안건을 통과시켰다. 회사는 남아있는 직영노동자 전원을 지난 2일자로 신설법인으로 이전했으며 오는 10일까지 이에 대한 이의제기를 받는다고 발표했다.
130여명의 노동자들이 신설법인으로의 이전 대신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결국 대우자동차판매 직영 노동자수는 이제 400여명을 간신히 웃돌고 있다. 한때 3,000여명에 달했던 노동자수는 7분의 1도 채 남지 않았다.
김진필 위원장은 “97년부터 회사는 일상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해 왔고 대우자동차판매 노동자들은 그 때마다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다”면서 “회사는 현재 노조파괴 뿐 아니라 직영체계의 판매체계를 대리점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대리점체계는 직영체계의 판매체계와 달리, 영업사원이 각각의 개인사업자처럼 등록돼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교사, 보험모집인처럼 4대보험은 물론 퇴직금조차 없는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것이다.
특히 대우자동차판매는 현대차나 기아차보다 대리점 영업사원 비율이 높다. 현대자동차의 직영 판매노동자는 6,300명이고 대리점 소속 판매노동자도 6,000명이다. 기아차는 직영이 3,200명에 대리점 소속 노동자가 4,600명으로 대리점 영업사원이 더 많다. 그러나 대우자동차판매는 1991년 별도법인인 대우조선해양에서 티코를 생산하면서 대리점이 생기기 시작해 현재 직영 400명에 대리점 영업사원은 2,500여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대우자동차판매가 남은 직영 400명조차도 신설법인으로 이전을 강요, 대리점 영업사원으로 전락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제2, 제3의 최동규는 ‘그만’
지난달 4일 아내 이우정씨는 결혼한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의 술 취한 모습을 봤다. 이날 오후 동규씨는 직장에서 회식에 참여했다. 평소 같으면 자정 전에 들어오던 남편이 5일 오전 1시가 되도록 소식이 없어 걱정하던 중 다음날인 5일 오전 2시께 벨을 눌렀다.
“남편은 아이들이 깰까봐 늦게 들어오는 날은 열쇠로 문을 열고 조심스렇게 들어오는데 이날은 잔뜩 취해서 여러번 벨을 누르고, 문 앞에서 곤드레 취해 쓰러졌다”는 아내 우정씨는 당시를 기억했다.
동규씨는 현관에서 침대까지 걸어서 가지도 못할 만큼 잔뜩 취했다. 우정씨가 결혼하고 처음, 남편의 옷을 벗기고 침대에 뉘였다. 5일 오전 6시40분 동규씨는 술에서 덜 깬 상태로 일어나 출근했다. 그리고 아침 조회를 마치고 오전 10시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우정씨의 말이다. “전날 경황이 없어서 이날 아침에야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어요. 회식자리에서 지점장이 그러더래요. ‘자기 좀 살려달라고.’ 그래서 혜영이 아빠도 ‘내 코가 석자라, 나 먼저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데요.”
워낙 바깥일을 집에 풀어놓지 않는 남편이기에 우정씨는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고 했다. 올해 초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가진 동규씨는 아내에게 앞으로 2~3년만 고생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9년의 결혼 생활동안 월세, 전세를 전전긍긍하다 마련한 내 집이었다.
동규씨가 대우자동차판매에 입사한지는 올해로 만10년째였다. 회사는 그런 동규씨의 근속 10년을 축하하는 올해 초에 기념패를 전달했다. 동규씨와 우정씨는 근속 20년이 되면 기념패 말고 회사가 또 무엇을 줄까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그가 지난달 6일 갑자기 뇌출혈로 돌연사 한 것이다.
우정씨는 남편이 죽은 후에 알았다. 매달 60~70만원씩 생활비를 챙겨주던 남편은 최근 넉 달 동안 차를 한대도 팔지 못했다는 것을. 동규씨는 다달이 드는 생활비를 카드로 메꿨고 그렇게 돌려 막은 카드대금은 2천만원에 달했다.
김진필 위원장은 “고인뿐 아니라 SR 임금체계에 동의한 직원들 대부분이 그달의 차량판매에 따라 급여책정이 다르기 때문에 매달 부족한 생활비를 카드로 막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동규씨는 카드빚과 회사쪽의 신설법인으로의 이전 강요로 인한 스트레스로 죽음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2, 제3의 동규씨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한달 새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 100여명
대우차판매노조는 회사의 일방적 직영부문판매 분할 저지를 위해 지난달 26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다시 지난 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노조 설립 이후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회사의 탄압에 맞서 대우자동차판매 노동자들은 거의 매년 회사를 상대로 싸워왔다. 또 회사 역시 이제 웬만한 노조의 투쟁엔 눈도 꿈쩍 하지 않는다. 노조 역시 긴 호흡으로 이러한 회사의 일방적 구조조정과 부당노동행위에 맞서기 위해 법적대응과 파업을 지속할 것이다.” 추석 연휴기간 동안 상경투쟁에 나섰던 조합원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고 최동규씨의 빈소를 지켰던 김진필 위원장의 말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조합에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신규로 가입, 조합원 수가 250명 가량 늘어났다"면서 "회사쪽의 강요로 SR임금체계에 동의했던 이들이 회사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더이상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노조에 가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조합원들의 의지를 반영, 이번 투쟁 역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