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나 농성장의 밥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농성장에서 먹는 최고의 밥은 김치 반찬 한가지일지언정 사랑하는 동지들과 함께 먹는 밥이다. 그리고, 최악의 밥은 그 이유가 감옥에 들어가서이든, 아파서 못 나왔든, 농성장을 떠났든, 단식 때문이든, 혹은 점거농성에 들어갔든 어떤 이유로든 사랑하는 동지들과 함께 먹지 못하는 밥이다.
얼마 전에 타결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의 한 조합원은 거의 굶다시피 했던 1차 크레인 점거 당시, “김치에 밥이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느날 농성장 근처에서 깍두기 5개가 들어 있는 통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를 동료들과 한개씩 나누어 먹고 국물까지 마셨는데, 눈물이 나더란다. 그 당시, 밖에 있었던 한 조합원의 가족은 “차라리 굶는다고 하면 낫겠는데 생쌀을 먹는다고 하니까 견딜 수가 없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먹어도 걱정, 안먹어도 걱정이다. 밥 때문에 울고 웃는 곳이 어디 농성장 뿐이랴. 사람 사는 곳 어디나 그러하리라.

전문직 뭐 그런 게 있더라구요
하청지회 조합원들의 보통 때 식사는 일품요리, 국밥이다. 반찬은 사시사철 똑같이 쉰 맛이 나는 배추김치 한가지. 지난 상경투쟁 때는 강남대로변에서 만들어 먹는 ‘국밥’으로 제법 매스컴을 타기도 했었다. 국밥을 담는 플라스틱 대접에는 김치 국물이 붉으스름하게 배어 있다. 처음에는 구역별로 도시락을 싸와서 먹었는데, 번거롭기도 하고 흩어져서 먹게 되는 단점이 있어 조합원 모두가 함께 저렴한 비용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국밥을 먹게 된 거다. 물론, 가끔은 짜장밥이나 카레밥 등 별식(?)을 해 먹기도 한다.
“아니, 지금도 저 주방장님이 하시는 거에요?”
“우리 주방장님은 전문직 뭐 그런 게 있더라구요.”
지난 5월17일, 고공농성이 시작된 청주 죽천교 송전탑 밑에서 하청지회 주방장님을 만났다. 집회 참석도 제대로 못하고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매일 밥과 씨름하고 있는 그가 문득 안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한마디 하자 옆에 있던 조합원이 대답을 한다.
비법이 어딨어요
이날 저녁 메뉴는 ‘아욱근대콩나물국’이다. 생각해보니 하청지회에서 먹었던 국 이름은 ‘감자시래기국’ 등 대체로 길었던 것 같다. 이것저것 넣어 끓인 소위 말하는 ‘잡탕’인 셈인데, 고된 투쟁을 하는 동지들에게 채소라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넣어서 먹이려는 주방장님의 배려인 것 같다. 회사 근처에 있는 주방장님의 시골집이 하청지회 조합원들이 먹을 밥을 하는 곳이다. 한끼에 80인분 정도의 국과 밥을 하는데, 한끼에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5~7만원 정도다.
“비법이 어딨어요? 조합원들이 맛있게 먹어주니까 고마운 거죠.” 배식 시간에 살짝 요리 비법을 묻는 나를 보며 멋쩍은 표정으로 주방장님이 얘기한다. 나는 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음식 타박 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짜다” “싱겁다” 한마디 정도는 할 법도 한데, 조합원들은 늘 말 없이 후루룩 국밥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고생스럽게 만든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일까? 한편으로는 오랜 투쟁이 이들의 입맛을 ‘아무거나’ 잘 먹도록 무디게 만든 것 같아 마음 짠하기도 하다.
밑에서 먹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잠시 후. 국밥 한 그릇을 담은 들통이 송전탑 위로 올라간다. 저 위에까지 올라가서도 국밥이다.

우리 동지들 굶어 죽이는 거 절대 못 본다
서울사무소 점거농성 4일차, 송전탑 고공농성 10일차인 5월26일 저녁. 농성장에 도착하니 시큼한 냄새가 풍긴다. 용역들 앞에 도시락이 패대기쳐져 있다. 밖으로 쏟아져 나온 음식물들이 널려 있고, 문화제 분위기는 썰렁하다. 도시락 반입하는 문제로 실갱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신선한 음식을 사갖고 와서 언젠가는 먹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그런 음식을 저 앞에 집어 던졌다. 낮에 안에 있는 동지와 통화하면서 저녁에는 들어갈 거라고 얘기했었다. 와이프나 아이 보다 더 많이 본 게 동지들이다. ‘넌 들어가지마. 내가 들어갈께’라고 위에 있는 동지가 말했었다. 친형제끼리는 감방에 대신 갈 수 없지만, 동지라는 울타리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우리 동지들 굶어 죽이는 거 절대 못 본다.”
총무가 위에 올라가 버려 얼떨결에 임시총무 역할을 맡아 조합원들의 밥이며 소소한 일상들을 챙기고 있는 송대균 회계감사가 발언을 한다. 벌써 이틀째 밥이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어제도 하이닉스반도체측에서 음식물 종류며 이를 갖고 올라가는 조합원의 소속 회사 등을 문제 삼아 음식물 반입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조합원들은 항의하는 의미로 회사 앞에 반입을 저지 당한 김밥과 도시락을 “비정규직 노동자는 먹는 것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써서 촛불과 함께 놔두기도 했었다. 경찰서에 식사 전달을 요구하는 항의방문도 했지만, 사측의 태도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나라인가?
상경투쟁 이후 농성장에는 줄곧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언제 공권력이 투입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회사 안과 밖 용역들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청주와 서울 두곳에서 점거 농성을 진행하느라 조합원들의 몸과 마음은 지쳐 있다. 사는 일이 늘 뜻대로 되지는 않듯이 이번 점거 농성도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긴 하지만, 애초에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밥 올라가는 문제로 매일 실갱이를 벌이고 있으니 간부와 조합원 모두 누군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바로 폭발할 것처럼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다. 사측은 직접 대화에 나서기는커녕 밥은 물론이거니와 식수까지 차단하여 위에 있는 조합원들은 화장실 물을 먹고 있다. 하지만, 단식을 진행하고 있는 다른 사업장 동지들을 생각하면 쉽게 불만을 토로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어제는 중재위가 “하청지회가 점거 농성을 풀 경우 중재위를 활발하게 가동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에 대해 하청지회는 “또 속을 수는 없다. 정리된 내용이 있어야만 농성을 풀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여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도시락을 조합원들이 길바닥에 패대기치게 된 거다. 그 과정에서 용역들은 옷에 음식물이 묻었다고 짜증을 냈다 한다. 문화제가 진행되는 중에 사측 관계자들이 삽과 비닐봉지를 들고 나와 음식물을 퍼 담으며 청소를 시작한다. 동지들이 먹어야할 음식이 길바닥에 패대기쳐지고 삽으로 떠져 버려지고 있다. 어디선가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월드컵 경기 응원을 하는가 보다.
“시청 앞에서는 노동자, 비정규직, 실업자, 학생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이 놈의 대한민국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나라인가? 정신 바짝 차리자!”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정근원 지부장이 투쟁사를 한다.

오늘 신문 덮어 보냈어야 했는데…
5·31 지방선거를 나흘 앞둔 5월27일, 하청지회 서울사무소 농성장 앞에서 민주노동당 선거유세가 있었다. 유세를 마친 후, 12층 농성자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과 김종철 서울시장 후보가 도시락을 갖고 올라가기 위해 건물 입구에 섰지만 용역들이 막았다. 잠시 후 하이닉스반도체 관계자가 나와 출입 불가를 이야기한다. 그는 “보안구역이기 때문에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들어가서 농성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냐. 짧은 시간동안 건강을 확인하고 고충을 듣고 오겠다는 것 뿐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 단병호 의원이 계속해서 출입을 요구했지만, 하이닉스 관계자는 “의원님, 죄송합니다”를 반복한다.
도시락 옆에 서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송대균 회계감사가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다. 내용을 얘기해주자 그는 몹시 허탈해한다. 결국 용역들이 뒷문으로 도시락을 갖고 들어가 농성자들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아픈 조합원이 있어 진료를 위해 의사를 들여보내는 것까지 막는 회사인데, 오죽하랴.
“잘못했다. 오늘 신문 덮어 보냈어야 했는데…. 이 신문 하나 올려 보내면 한 자 한 자 다 볼 거 아냐.” 도시락이 올라가고 나서 농성장에 있던 신문을 뒤적이던 조합원들이 얘기한다. 다음날 또다시 밥이 올라가지 못했다.

내가 뻔뻔해진 이유 - 살아있는 노동의 밥에 대한 예의
농성장에서 밀착 취재를 하는 나에게도 밥은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조합원들 밥 먹는 모습도 보고, 함께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싶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살림살이가 뻔한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노조에서 밥을 얻어먹는 것이 영 편치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식당에 가서 먹는 경우 함께 먹고 내 밥값만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내가 전체 계산을 다 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난처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밥 먹을 때를 피해서 가기도 하고, 슬쩍 혼자 나가서 사먹고 오기도 한다. 아니면, 안 먹고도 먹었다고 하거나 밥 생각이 없다고 거짓말도 해보지만 어느 방법도 편하고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하청지회도 직접 밥을 해먹을 때는 살짝 같이 먹으면 되는데, 이번 상경투쟁 때는 사먹게 되는 바람에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내가 농성장에서 밥을 얻어먹는 뻔뻔하고 대범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들의 마음 때문이다. 하청지회 조합원들은 말이 별로 없고, 숫기가 없다. 그래서 보통은 나에게도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지만, 말로 표현 하지 않는다 해서 마음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매일 오지만, 딱히 도움 되는 것도 없는 나에게 조합원들이 고마워하고, 와야 할 시간에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정말 넉넉지 않은 지회 살림이지만, 나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한끼 멕이고 싶어 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며 조합원들이 뿌듯해 한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농성장에서 뻔뻔해지기로 한다. 조합원들이 “밥 먹어요!”, 혹은 “밥 먹으러 가요!”할 때 거절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 이것은 살아있는 노동의 밥에 대한 예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