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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사람
강태재 중재위원장, 그는 참 좋은 사람이다. 그는 집에서는 좋은 남편 또는 아버지요, 동네에서는 좋은 이웃일 것이다. 지역의 많은 일들에 관여하고 있기에 매일 적지 않은 양의 전화를 받을 텐데도, 취재차 전화를 하면 늘 성실하게 응대한다. 실제로 대하니 다소 고집스럽고 깐깐해 보이기도 하지만,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서는 ‘연륜’과 ‘경우 바름’이 느껴진다.
간부들과 얘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강태재 위원장을 만났다. 역시나 그는 걸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인터뷰 요청에 응한다.
하청지회가 범대위와 중재위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냈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그에게서 다소 불편한 심기가 느껴진다. 그는 앞으로 범대위와 중재위를 적극 가동할 것이니 하청지회와 충북지부는 감정을 풀고 범대위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중재안 없이 양쪽의 의견 전달만을 했는데, 앞으로는 양쪽을 압박하여 의견 접근을 이뤄낼 것이며 필요하면 양쪽 누구든 문제를 지적하고 나무랄 것이라 했다. 그래도 정 안 된다면 중재안을 내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도 했다. ‘범대위’는 뭐고 ‘중재위’는 또 뭔가?
범대위

범대위는 직접 자율교섭을 촉구하며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에 문제 해결과 관련된 공개질의서를 보내기도 했고, 12월22일에는 충북노사정협의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권고안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5년 12월30일에는 이 해의 마지막날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 대화를 통한 평화적 문제 해결을 염원하는 시민기도회’를 열어 참가자 전원이 30배를 하고, 평화적 해결을 의미하는 비둘기를 그린 종이를 정문에 부착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런가 하면 개신교 지도자가 청주 공장 앞에서 천막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중재위
그럼에도 원청의 움직임이 없자 하청지회 조합원 백여명은 2006년 1월12일 서울 대치동 서울사무소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1월18일, 이원종 충북도지사는 범대위와 면담에서 “설 연휴 전까지 해결될 수 있도록 시민단체와 공조·협력하고, 지사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적극 나서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피력했다.
그리고 1월26일, 충청북도 이원종 도지사와 범대위 대표단이 하이닉스 반도체 우의제 사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본사를 방문했다. 그들은 하이닉스 반도체 우의제 사장을 만나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지회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단을 구성하는 것에 합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우의제 사장은 중재단을 통한 간접대화로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고 했고, 다음달 8일까지 노사 양측이 신뢰할 수 있는 중재단을 구성하는 데 동의했다. 범대위 공동대표로 활동을 하다가 중재위 위원장을 맡게 된 강태재 위원장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 계속 있어 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넉달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하청지회는 정규직화 요구에서 그저 자신들이 일했던 공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요구 수위를 낮추었지만, 사측은 일자리가 아닌 ‘생계비’를 이야기했으며 매그나칩은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사측은 일터 밖에서 싸워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장 취약하면서도 절실한 부분이 어디인가를 알고, 이를 정확하게 공격했는지도 모른다. 일부 조합원들에게는 그것이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겠지만, 일부 조합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범대위도 중재위도 하청지회 노동자들의 ‘생존권’ 차원에서 이 문제의 해결을 이야기 했지만, 그것의 다양한 해석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게 될 줄 시작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찬바람에 더욱 아려오는 서로의 상처를 느끼며 2006년 2월, 3월, 4월을 보냈다.

강태재 위원장이 모르는 것
“하이스코 때문에 조합원들이 상당히 고무되어 있는데, 자극을 받은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하이닉스 문제는 하이스코와는 다르다.”
강태재 위원장은 원청의 성격이며 하청업체 상황 등에 있어 하이스코와 하이닉스 문제가 얼마나 다른가를 이야기한다. 나는 그의 얘기 중 사실이 아닌 내용에 대해서는 반박을 했지만, 그의 태도는 완강하다. 그는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문제 타결로 하청지회측의 전원복직 요구가 거세져 선별복직과 금전보상 문제가 안건으로 자리잡을 여지조차 없게 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그는 참 친절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적지 않은 시간 얘기를 했는데도 “이 정도면 됐느냐”고 내 의사까지 묻고 내가 거기에 동의하자 발길을 옮긴다. 그는 양심적인 사람이기에 오늘 한 얘기들에 변동이 생긴다 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5월23일부터 시작된 상경투쟁 중에 “물리적 진압에 대해서는 언급할 입장이 아니"라면서 "서울에는 갈 시간도 없고, 최고경영자가 결단을 내릴 때가 아니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그는 공권력 투입 사흘 전에 서울에 왔고, 친절하게도 하청지회에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음을 전달해 주고 갔다.
하지만 인정 많고 선량하고 친절하며 양심적인 그는 하청지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설움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들이 왜 자신의 생을 걸고 길바닥에서 이 싸움을 하는지, 왜 15만4천볼트가 흐르는 탑 위에 올라가서 농성을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생존권이고 생존권이 곧 일자리라는 것을 말이다.
“서로 양보를 해야지. 자기 입장만 내세우면 쓰나….”
강태재 위원장과 함께 왔던 이가 혀를 끌끌 차며 송전탑 아래를 지나간다.
<편집자 주>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써 500일을 넘어섰다. 불법파견 판정, 사내하청노조의 끈질긴 투쟁 그리고 도지사의 중재에도 노동자들의 복직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하익닉스-매그나칩. 지난 5월17일, 사내하청지회는 높이 37미터, 15만4천볼트의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 올랐다. 르뽀작가 연정씨가 이들의 외롭지만 그치지 않을 싸움을 <매일노동뉴스>에 전해 왔다. 이 르뽀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연재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