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남아공 위츠대학교 노동사회학과(SWOP) 초청으로 11월13일부터 18일까지 남아공의 수도 조하네스버그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남아공-호주-한국 3개국의 백색가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실태를 비교 조사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방문기간 동안 필자는 위츠대학교 노동사회학과, 남아공 최대 노총인 코사투(COSATU)의 노조간부 여름학교, 남아프리카노동교육원(DITSELA)을 돌아보고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매일노동뉴스>는 남아공 노사관계와 노동운동 관련 인터뷰와 기사를 3회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주>

연재순서
① 웹스터 교수 인터뷰(상)- “산별교섭, 사용자도 챙길 게 있어야 성사 된다”
②  웹스터 교수 인터뷰(하)- 남아공 노동운동의 현황과 쟁점
③  코사투 여름학교 참관기- <셉템버보고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



남아공 노동문제 연구자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에드워드 웹스터 교수와의 인터뷰는 11월 15일 저녁에 이뤄졌다. 그는 2001년 11월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한국노동교육원에서 열린 남반구노조연대회의(SIGTUR)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 남아공 최대 노총인 코사투는 1994년 민주화 이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공산당(SACP)과 함께 집권 3자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해왔다. 3자동맹의 요즘 상황은 어떤가?
"한마디로 재조정 중이다. 인종차별정권이 지배하던 시기인 80년대에는 코사투가 ANC를 주도했다. 하지만, 90년대 초 ANC가 백인정권과 권력이양 협상에 나서면서, 특히 1994년 ANC가 집권여당이 된 후부터 코사투는 ANC에 대한 주도권을 잃게 된다. 민주화 이후 ANC 정부는 경제자유화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것은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민영화나 구조조정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왔음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여당과 코사투의 관계가 멀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 조합원들의 ANC에 대한 지지는 여전하다. 1994년과 1998년 2004년 등 세 번에 걸쳐 코사투 조합원 여론조사를 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코사투 조합원의 절대다수는 ANC를 여전히 자신들의 정당으로 여기고 있으며, 3자동맹을 지지한다.
길게 볼 때 3자동맹은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 우선 노동계 내부의 변화가 동맹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코사투가 가장 크기는 하지만, 남아공에는 큰 규모의 노총이 3개 있다. 이들이 1개 노총으로 통합될 경우, ANC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할 수 있다. ANC 내부의 변화 역시 관심을 가질 부분이다. ANC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친자본의 보수파가 완전한 우위를 점할 경우에 코사투가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동맹이 붕괴될 수 있다.
물론 지금 코사투의 다수 의견은 ANC의 모든 단위에서 노동계급의 영향력을 강화함으로써 재계나 관료 등 보수파의 장악으로부터 ANC를 방어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계급연합’ 정당인 ANC 내부의 긴장관계를 노동계급과 노동운동에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코사투가 2009년에 있을 다음 선거에서 ANC를 지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다음 선거에서도 코사투가 ANC 지지를 계속할 지는 불분명하다.

- 남아공의 노사정위원회인 네들락(NEDLAC, 전국경제발전노동위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아직까지 노사정 모두가 챙길 게(stakes) 많기 때문에 그럭저럭 돌아가는 편이다. 네들락에서는 노동 문제는 물론 에이즈 문제까지 폭 넓은 사안을 다루고 있다. 남아공 사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현안들을 노사정위원회가 다룬다는 이야기다.
네들락과 관련하여 조합주의(corporatism)에 노조가 포섭되는 게 아니냐는 문제는 큰 논쟁거리가 아니다. 정부·자본과 교섭에 나선 이상 ‘교환’은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전국 수준에서 임금 동결을 약속하는 대신 사회보장 확대에 합의할 수 있는 것이다. 무(無)파업과 고용보장을 교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사회적 협약(social pacts)은 아직 없다.
특정 시기에 계급간의 힘 관계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고용임금 관계에서 타협을 배제하고 최대치를 요구하는 ‘최대강령주의’(maximalism)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혁명을 하더라도 주고받기 식의 타협은 불가피하며, 개혁 국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타협은 야합이나 배신과 다르다. 네들락의 정신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향한 사회계급간의 ‘타협’이다. 노동조합의 파업은 감정적이지 말고 전략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 남아공 노동운동에서 집권 3자동맹의 일원이자 최대 노총인 코사투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이 크다. 최근 코사투의 상황은 어떠한가?
"가맹조직(산별노조)들이 주도하는 형국이며, 이 점에서 중앙집권적이지 못하고 분권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노동조합 전국조직(national center)으로서 코사투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말이다. 코사투 지도부가 강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응집력이 떨어진다.
현장 차원에서는 ‘출세주의’가 세를 넓히고 있다. 현장위원(한국으로 치자면 단위노조 간부나 대의원)이 되면 임금이 크게 오르고, 이후 중간관리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지방정부의 관료가 될 수도 있다. 현장의 노조간부 자리가 중간계급으로의 신분상승 기회로 활용되는 것이다.
1994년 민주화 이후 코사투의 역사를 돌아보면 각급 단위에서 노조 간부라는 자리가 정치경제적 신분상승의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사투 중앙 지도부도 마찬가지였다. 1994년과 1999년 선거에서 코사투 임원들 가운데 노조를 떠나 ANC 소속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2004년 선거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코사투 지도부의 결단 때문인지 ANC가 불러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 코사투 내부의 노조 민주주의 수준은 어느 정도 되는가? 노조 부패 문제는 없는가?
"올해 초 한국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폭력사태로 무산되는 것을 외신을 통해 접한 적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게 없다. 주장은 다르지만, 민주적 절차에 따른다. 코사투 대의원대회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가는 운동 내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물론 우려되는 문제도 있다. 얼마 전 금속노조(NUMSA)의 교육국장이 정치적 견해를 달리했다는 이유로 노조에서 해고되었다.
노조 부패와 관련해서는 우리도 여러 가지 사례가 많다. 몇 년 전에는 코사투 부위원장이 부패 문제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노동운동가는 아니지만, 코사투와 남아공공산당(SACP)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주마(Zuma) 부통령이 무기거래와 관련된 부패 혐의로 부통령직에서 해임되어 재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지도부는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주마가 무죄라는 주장이고, 일선 활동가들은 재판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노조 부패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전통적 부패와 사회적 부패가 그것이다. 전통적 부패는 노조 돈을 개인을 위해 사용하는 행태를 말하는 데, 사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노조 부패에서 결정적인 게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부패는 다르다. 사회적 부패란 노조 간부로서의 직위와 노조운동의 권위를 이용하여 사회적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코사투는 꽤 큰 규모의 노조투자회사를 갖고 있다. 이 회사의 CEO나 임원이 되기 위해 노조간부 자리를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다. 노조간부라는 사회적 지위를 통해 얻은 정보나 지식, 혹은 인간관계로 거액의 주식투자를 한다거나, 부동산 투자를 한다거나 하는 행태가 버젓이 자행되는 경우도 있다.
꼭 부패라고는 할 수 없으나, 개인적으로 문제 삼고 싶은 남아공 노조 내부의 관행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조 간부가 출장을 갈 때 노조 공금으로 일급호텔에 투숙하는 게 그것이다. 해외출장이 아니라 국내출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노조 간부라는 자리는 ‘봉사의 자리’이지, ‘행세의 자리’가 아니다."


- 코사투 이외의 다른 노총들의 동향은 어떠한가?
"코사투 말고 주요 노총이 2개 있다. 전통적으로 백인 노조를 기반으로 해온 남아공노조연맹(FEDUSA)과 흑인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해온 전국노조협의회(NACTU)가 그것이다. 민주화 이후 FEDUSA에 화이트칼라 흑인들의 참여가 늘고, NACTU의 ‘흑인민족주의’도 변질되면서 지금 두 노총 간에 통합이 이야기되고 있다."

- 남아공 노동운동이 고민해야 할 주요 도전으로는 어떤 게 있는가?
"노동조합은 자본의 인적자원관리(HRM) 전략에 대해 많이 고민해야 한다. 사측이 노조를 건너뛰고 바로 노동자 개인에게 접근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팀제니 품질관리니 하면서 사측이 직접 노동자를 조직하고, 작업장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자동차 공장인 폭스바겐의 경우 노동자(worker)나 종업원(employee)이 아니라 동료(associate)라는 용어를 쓴다. 노조의 집단화 전략에 맞서 자본의 개별화·개인주의화 전략이 진행 중인 것이다.
민주화 이전에는 흑인 노동자들이 경영진을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영진은 모두 백인이었고, 인종적인 경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15년이 지났고, 이제 흑인 경영자나 중간관리자도 많이 생겼다. 정부가 흑인 중간계급을 창출하기 위한 추진해온 ‘흑인경제력향상’(Black Economic Empowerment) 정책도 이런 흐름에 한몫 했다. 계급적 간극과 인종적 간극이 같았을 때에는 적과 동지의 구분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그 빈틈을 자본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다음으로는 민주노조운동 주도세력으로서의 코사투의 지나친 자기만족·자기과신 풍조를 지적하고 싶다. 코사투는 독재정권과 어용노조에 저항해온 역사를 과신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이전에는 특권층에 속하던 백인 노동자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이들은 사실 반(反)노조 입장을 갖고 있었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이들의 노조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코사투 안으로 이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이미 코사투 조합원의 1/3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이고, 숙련노동자들의 수가 늘고 있다. 조합원들의 대다수가 제조업 미숙련 흑인 노동자들이었던 ‘전통적인’ 코사투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조합운동에 정교한 정책 마련과 세련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끝으로 노조가 조직 노동자들의 협소한 이해를 뛰어넘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경제적 쟁점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남아공에는 노점상, 실업자, 노동빈민, 농장노동에 포진한 비공식부문의 규모가 거대하다. 이들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제당해 있다. 이들을 어떻게 사회로 통합할 것인가의 문제에 노동조합이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미조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참여하고, 사회가 노동조합을 믿는다. 그럼으로써 노동조합이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unionism)다."

남아공 노동시장의 특성과 사회적 조합주의
남아공의 경제활동 인구는 2,030만 명이다. 그 가운데 정규직노동자(full-time)는 660만 명으로 남아공 노동시장의 핵심을 이룬다. 하청·임시직·파트타임 같은 비정규직노동자는 310만 명으로 이들은 노동시장의 비(非)핵심을 이룬다. 이들 핵심 노동자와 비핵심 노동자는 노동시장의 공식부문을 이루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은 각각 68%와 32%이다. 그리고 공식부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남아공의 노조 조직률은 50%에 육박한다.


그런데 문제는 공식부문 밖에 존재하는 1,060만 명이다. 이들은 노점상같은 비공식노동에 종사하는 220만 명과 실업자 840만 명으로 이뤄지며 남아공 노동시장의 밑바닥에 자리한다. 비공식부문에 자리한 이들은 1994년 남아공의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 경제적 지위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코사투를 비롯한 남아공 노동조합운동이 공식부문, 그것도 핵심의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이익집단’운동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웹스터 교수를 비롯한 남아공의 노동연구자들은 이러한 노동시장 구조가 노동조합의 대표성 위기와 더불어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낳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남아공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들의 지위가 핵심에서 비핵심으로, 다시 비핵심에서 비공식노동과 실업상태로 밀려날 가능성은 커지는 데 반해, 그 반대 방향으로의 이동은 별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이어져야 하는데, 남아공의 경우 민주화가 노동시장의 주변부에 위치한 다수 노동대중에게는 생활상의 이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이 점에서 남아공의 노동문제 연구자들은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가져오지 못함으로써 민주화 이행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아닌 사회경제적 ‘자유화’를 초래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정치적 민주화 역시 정치적 자유화로 전락하게 되고,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운동이 자기 계급만의 이익이 아닌 노동대중 전체와 사회 문제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서 계급적 대표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사회적 조합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게 웹스터 교수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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