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둔 반도체특별법 제정안이 쟁의행위를 포함해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옥죌 수 있다는 국회입법조사처 의견이 나왔다. 논란이 됐던 연구개발 노동자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적용제외 조항이 빠졌는데도 독소조항이 남아있는 셈이다.
“구체적 노력의무조항, 개별 사안에서 고려될 가능성”
“강제성 없지만, 그에 부합하는 취지로 ‘규율 필요성’ 명시”
23일 <매일노동뉴스>가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에게 받은 입법조사회답서에 따르면 국회입법조사처는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조치법안(반도체특별법)’이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소송과 형사소송 양형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취지로 분석했다. 한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조사를 요청한 자료다.
문제가 된 조항은 반도체특별법안 3조4항이다. “반도체 특구 입주기업체의 사용주와 근로자는 노동쟁의에 관한 관계 법률상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산업평화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한 노력의무 규정이다.
이 조항에 대해 입법조사처는 “반도체 특구에서의 쟁의행위와 같이 특정 사안에만 적용되는 구체적 노력의무 조항은 일반적·추상적인 규정에 비해서는 개별 사안에서 고려될 가능성이 보다 높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반도체특별법 제정 이후 반도체 특구 입주기업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관계법령 준수 여부를 ‘엄격히’ 들여다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손해배상 소송시 손배규모와 형사소송시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력의무 조항이 있더라도 사법부는 재량을 발휘해 양형 등을 가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조항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법관은 노력의무 조항을 고려하지 않고도 그 취지에 부합하는 판단, 배상이나 양형 등을 선고하는 것이 가능하다”면서도 “입법자가 노력의무 규정을 둔 것은 사문화될 규정을 두겠다는 것이 아니라,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그에 부합하는 취지로 사회가 규율될 필요가 있음을 명시한 것”이라고 봤다.
유사 입법례에서 양형가중 근거로 활용된 사례도
한창민 “노란봉투법 통과해놓고 노조활동 제약 안 돼”
노력의무 규정이 실제 배상책임과 양형에 반영된 사례도 확인된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2021년 유치원 집단식중독 사건에서 국민영양관리법에 명시된 영양사의 노력의무 규정을 근거로 죄질의 무거움을 강조하면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영양사는 지속적으로 영양지식과 기술의 습득으로 전문능력을 향상시켜 국민영양개선 및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또 서울고법은 의뢰인의 돈을 횡령한 변호사 사건에서 변호사법에 규정된 노력의무 규정을 근거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특별법의 노력의무 규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4월 반도체특별법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될 때 사회민주당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쪽에 “노조활동을 억압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런데도 민주당 내부, 또는 특별법을 심의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관련 상임위원회인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 간 공식적인 법안 수정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 내부에서도 관련 조항을 재검토하려는 일부 의원들의 움직임이 있다.
반도체특별법 소관부처인 산업통상부와 노동 관련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동부 관계자는 본지에 “내용을 잘 모른다”며 “법안 통과 전에 입장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조항인데도 사전에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했고, 관련 부처 간 협의도 없었다는 의미로 비춰진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27일 예정된 본회의까지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합의를 이루도록 최대한 노력할 방침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반도체특별법은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 회부됐다. 지금이라도 문제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한창민 의원은 “노조법을 개정해 노조활동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을 제한한 22대 국회가 노조활동을 제약할 가능성이 높은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관련 조항을 즉각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