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인선을 마무리하면서 사회적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미 물꼬를 튼 국회 사회적 대화에 이어 최근 국무조정실에 숙의공론화기구를 설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역이자 산업의 위기, 이해당사자 다양

1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가장 시급한 사회적 대화 의제로 제조산업과 지역을 엮은 의제가 제기됐다. 지금 당장 위기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과 지역의 고용위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대화 의제화하는 것이다. 여수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심화한 석유화학산업의 경기침체는 이미 지역의 경제위기로 부상했다.

단적으로 세수가 반 토막 났다. 여수산단의 지방세 납부액은 지난해 기준 1천106억원으로, 2023년 2천54억원보다 무려 948억원이 줄었다. 위기는 현재시제다. 이광민 여수석유화학산업 위기대응 여수산단 산별노조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정부의 구조조정 발표 이후 정중동”이라며 “지방자치단체도, 산업계도, 정부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여수산단만이 아니다. 샤힌프로젝트가 투입돼 건강할 것으로 봤던 울산도, 울산과 여수에 비해 규모가 작은 충청권 대산도 위기는 마찬가지다. 석유화학산업의 위기가 산업의 위기이자 동시에 지역의 위기인 이유다.

이런 모양새라서 역설적으로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사회적 대화의 다원화·다층화 의제로 걸맞다.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이재명 정부의 사회적 대화 다원화와 다층화는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한 정부주도의 사회적 대화기구 운영에 국한하지 말고 업종과 지역, 그리고 양대 노총과 재계 외에 다양한 주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의 사회적 대화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산업 위기와 관련해서는 5개 석유화학산업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역 노조와 소상공인단체 등 석유화학산업과 여수시의 경제활동에 걸쳐 있는 다양한 참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다만 걸림돌은 있다. 이미 정부가 산업통상부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석유화학산업 5개 대기업에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한 상황에서 또다시 사회적 대화 거버넌스를 가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게다가 대기업이 5곳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협의, 나아가 합의 과정에서 대기업 간 주고받기식 구조조정이 이뤄질 여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관세·내수’ 이중고 신음하는 철강 ‘적합’?

이 때문에 다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철강산업이다. 철강산업은 석유화학산업과 마찬가지로 일부 지역에 집적산업단지가 조성도 있다. 광양과 포항이다. 석유화학산업과 다르게 이곳에 진출한 대기업은 수가 적다. 중대형 철강사까지 포함하면 머릿수가 늘지만, 단적으로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대표적이고, 사실상 업계의 맏형격이다. 사회적 대화의 결과로 도출될 합의까지 전망하면 상대적으로 난도가 낮다.

필요성은 높다. 철강은 비교적 성공적인 협상을 했다고 하는 한미 관세협상 와중에 관세영향을 속수무책으로 받는 산업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도 관세장벽을 높이기로 했다. 게다가 침체일로인 건설업의 여파로 내수마저 바닥이라 어려움이 크다.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미국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를 돌려세우고 국내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기업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들 필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박성국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역과 업종을 아우르는 대화을 시급히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강산업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대목은 건설산업이다. 건설업 고용보험 피보험자수는 2년 연속 하락해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업계는 건설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건설경기 저점 방어와 고용위기 조정을 위해서라도 시급한 개입이 필요하다. 고용위기 외에도 빈발하는 산재사고와 관련한 대책 등을 발주자 안전비용 부담과 불법하도급 규제 등으로 풀어낼 여지가 있다. 이처럼 종합적인 고려를 하려면 범부처 차원의 논의보다 이해당사자가 참여한 ‘다원적인’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양대 노총 혹은 재계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대화의 시간은 오고 있다.

중앙 사회적 대화는? 이 대통령 “노동유연성·사회안전망” 강조

이 같은 산업과 지역이 연루된 의제 외에 주목되는 의제는 노사관계 제도와 관련한 중앙노사단체가 다룰 법한 의제들이다. 이를테면 3년마다 재심의하도록 하고 있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도도 코로나19 등 여파로 재심의가 이뤄지지 못해 대화 분위기를 다시 조성하는 불쏘시개로 쓰일 여지가 있다. 시민 여론이 움직일 주제는 아니지만 노사 모두에 민감한 의제다. 재계는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허용 등에 대해 오랜 기간 대화를 원하고 있다. 여당 특별위원회가 결론을 내지 못할 때는 국회로 넘어갔던 법정 정년연장이 다시 경사노위로 넘어올 여지도 있다.

다만 이런 의제는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 철학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대통령의 입이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통령실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성장률 반등을 위한 구조개혁을 강조하고 노동개혁을 언급했다. “구조개혁에는 고통과 저항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이날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재계 총수를 만난 자리에서 “기업활동 하는데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총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용불안정성에 대한 노동자 공포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안전망도 함께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안전망) 재원 조달 문제를 터놓고 사회적 대대적인 논쟁으로 합의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라고 부연했다.

다만 이 대통령이 강조한 사회적 논쟁이 국회 사회적 대화나 경사노위에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미 강력한 집행력을 갖춘 여당에, 국무조정실 숙의공론화기구까지 설치한다면 사실상 사회개혁 의제는 사회적 대화보다는 정부·여당 주도로 추진될 여지가 있다. 실제 실노동시간 개편을 비롯한 국정과제 이행은 사회적 대화에 맡기기보다 고용노동부의 별도 전문가 TF 구성 방식으로 추진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존재감을 갖기 위해서라도 국회 사회적 대화나 경사노위가 어느 정도 효능감을 갖고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재·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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