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퇴직연금 의무화·기금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한다. 관계부처장은 퇴직연금 관리를 공적기관에 맡기는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적기관 수탁해야 안정성·수익성 높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퇴직연금은) 많은 노동자들의 마지막 노후소득이기 때문에 안정성과 수익성이 동시에 추구돼야 하는데,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개인적으로는 공적기관에 수탁하는 방법이 제일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는 퇴직연금 의무화 단계적 추진과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가 포함돼 있다. 체불방지와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퇴직연금 의무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가입자가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을 맺고 투자상품을 선택하는 계약형과 달리, 전문 운용기관이 적립금을 관리·운용하는 방식이다.
이날 김 장관의 발언은 퇴직연금 의무화 추진 과정에서 영세사업장 부담 완화 방안 등에 대해 노사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또 기금형 퇴직연금과 관련해 수탁법인 형태, 영리법인 허용 여부 등이 쟁점이 되고 있는 만큼 노사 포함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 의무화 시점은 특정 못해
김 장관은 “퇴직연금 의무화 단계적 추진을 위해서 어떤 로드맵을 가지고 있냐”는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일단은 작은 사업장을 지원하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서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것”이라며 “의무화 시점에 대해서는 아직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고용 노동자까지 대상을 확대하는 안에 큰 틀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봐도 되냐는 질의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힘을 실었다. 김 총리는 “퇴직연금을 위해 노사 당사자 간 적극적인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고, 총리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부탁한다”는 강 의원의 당부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또 “퇴직연금을 의무화하면 사실 취약한 사업장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며 “기금을 확대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 노조법 “원·하청 1년 내내 교섭은 기우”
내년 3월10일 시행을 앞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도 다시 화두가 됐다. 박홍배 민주당 의원은 김 장관에게 “(노조법 개정안 통과 이후) 벌써 산업현장이 대혼란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는데, 최근 노사분규 상황 중에서 특별히 우려할 만한 사항이 있었냐”고 질의했다.
김 장관은 “현대자동차도 타결이 됐고 현대중공업도 잠정합의됐다. 노란봉투법과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임금 합의 과정”이라며 “(현대제철 비정규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 나와라’라고 요구한 것은 노조법 개정안 때문이 아니라)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를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임금·단체협상 난항으로 부분파업을 벌였지만 지난 9일 사쪽과 잠정합의안을 마련한 뒤 15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해 가결했다. HD현대중공업 노사도 올해 임금교섭에서 17일 2차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김 장관은 “현장지원TF를 가동 중에 있고, 재계는 물론 노동계와 전문가들과 다양한 노선을 놓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총리도 “사용자 개념 확대가 국제적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냐”는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전반적인 국제적 기준을 감안해서 법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정신적 산재 특단 대책 마련해야”
“고 오요안나 재조사하라” … 정부 즉답 안 해
정부가 특정 노동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연말 KT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노동자 6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3명은 극단적 선택을 했고 3명은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었다”며 “노동자들의 자살 등 정신적 산업재해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총리는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정신적 트라우마, 자살과 관련한 그런 부분들을 현재 세우고 있는 대책에 더 포함시키고 강력하게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숨진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대책을 밝히지 못했다. 고 오요안나씨 1주기를 앞두고 고인의 어머니는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다. 김 총리는 “노동부가 지난번에 고 오요안나씨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해석을 했는데 재조사를 지시할 의사가 있냐”는 김형동 의원의 지적에 “재조사를 지시해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서 말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재조사를 지시할 수 있냐”고 김 의원이 다시 묻자 김 장관은 “유족들이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고 단식이 길어지는 것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검토하겠다. 검토하겠는데 따로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강한님·어고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