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개요
원고는 약 9년간 택시기사로, 그 이후 약 18년간 버스기사로 각 근무했다. 원고는 운전기사 업무의 특성상 허리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불안정한 자세로 장시간 전신 진동과 충격에 노출됐고, 그로 인해 척추질환을 진단받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운전기사 업무를 그만둘 수 없었다. 결국 원고는 추간판탈출증 등 척추질환에 대해 수술적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질환이 악화했다.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장기간 열악한 환경에서 운전기사 업무를 하며 척추질환이 발생한 것이므로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나, 공단은 불승인 처분했다.
2. 쟁점의 정리
공단은 원고가 장기간 운전기사 업무를 수행한 사실은 인정하나, 단지 그와 같은 운전경력만으로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불승인 처분의 근거로 제시했다. 만약 원고가 운전업무 중 발생한 교통사고에 의해 상병이 발생했다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지만, 원고가 단지 장기간 운전기사로 근무한 것일 뿐이며 그 외에 특별한 사정을 찾을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공단의 불승인 사유는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다. 장기간 운전기사 업무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척추질환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운전기사 업무를 하지 않아도 척추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원고에게 발생한 척추질환이 실제로 운전업무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또는 원고의 선천적 요소에 의한 퇴행성 질환의 발병인지, 또는 다른 생활습관에 의한 발병인지 확인할 수 없으므로, 단지 운전업무 경력이 존재하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질병을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질병판정위의 심의 결과였고, 공단은 심의 결과에 따라 처분한 것이었다.
3. 판결의 요지
법원은 원고에게 발생한 상병이 장기간의 운전기사 업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써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공단의 불승인 처분은 위법하고, 원고에게 발생한 상병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즉 법원은 “원고가 장기간 운전업무에 종사해 왔고 수년 전부터 요추부의 증상으로 인해 진료받기도 했으나 계속해 운전업무에 종사했다. 이 기간 동안 원고에게 버스 운전업무 외 외상과 같은 다른 외부적 요인이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원고가 일 8시간 이상, 30년 정도의 기간 동안 버스·택시 운전만을 주요 직종으로 종사한 것은 노출된 전신진동이 노출(권고) 기준 이하라고 해도 허리 요추부의 근골격계 질환의 발병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감정의의 의견을 판단의 근거로 제시하며, “업무로 인해 원고의 상병이 유발됐거나 적어도 기존의 추간판 퇴행성 변화가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됨으로써 이 사건 상병이 발현됐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4. 판결의 의의
법원은 종래부터 산재 소송에서 “업무상의 재해라 함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재해를 말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 경우 근로자의 업무와 재해 간의 인과관계에 관해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었는데(대법원 1989. 7. 25. 선고 88누10947 판결), 2007년 관련 근거 규정이 개정되면서 상당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이 전환돼야 하는 것은 아닌지 논란이 발생했다. 대법원은 2021. 9. 9. 선고 2017두45933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산재 사건에서의 상당인과관계 입증책임에 대한 법리를 정리했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업무상 재해의 인정 요건 가운데 본문 각호 각목에서 정한 업무관련성이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이를 주장하는 자가 증명하고, 단서에서 정한 ‘상당인과관계의 부존재’에 대해서는 그 상대방이 증명해야 한다고 봐야 한다”는 반대의견도 존재했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보험급여의 지급요건, 이 사건 조항 전체의 내용과 구조, 입법 경위와 입법 취지, 다른 재해보상제도와의 관계 등을 고려하면, 2007년 개정으로 신설된 이 사건 조항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의 재해’를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을 공단에게 분배하거나 전환하는 규정으로 볼 수 없고, 2007년 개정 이후에도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은 업무상의 재해를 주장하는 근로자측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기존의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시하며 기존 판결의 입장을 유지했다.
업무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한 질환에 대해서는 상당인과관계의 입증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나,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에 의하면 직접적인 사고 발생 없이 장기간 열악한 업무환경에 노출에 의한 악영향이 누적돼 발생하는 업무상 질병의 경우 근로자측에서 그 자연과학적·의학적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 사건의 경우도 원고가 장기간 운전업무를 수행한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었으나, 장기간의 운전업무 사실만으로 산재를 인정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다른 운전기사들이 장기간 근무하다가 질환이 발생하면 마찬가지로 모두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논란이 생길 수 있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깊은 고민 끝에 “산재보험법 5조1호에 정한 ‘업무상의 재해’는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뜻하므로 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면 증명된 것으로 봐야 하고,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돼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인과관계가 증명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2017. 4. 28. 선고 2016두56134 판결의 법리를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이는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이 근로자에게 있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를 원칙적으로 따르면서도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의학적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이 불가능에 가까운 업무상 질병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 다양한 의학적 견해 및 근거법령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해 적절한 규범적 판단을 한 것으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장기간의 운전업무를 수행했다는 사실만으로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본 사건은 대중의 교통과 안전을 위해 장기간 대중교통 운전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들에 대해 업무로 인해 발생한 질병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판결이라는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