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공공운수노조가 정부에 노정교섭을 촉구하며 17일 파업을 예고했다. 노조가 노정교섭을 요구하는 배경은 그간 공공부문에 적용한 각종 지침과 제도 때문이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기획재정부가 가진 막강한 권한에 의해 교섭권을 제한받았다. 이 때문에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등 노동계는 기재부 해체 등 공공기관 정책 개선을 요구해 왔다.

새 정부는 기재부 분리 등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을 추진하며 공공기관 정책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국민에게 필요한 필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 본래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국민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 개혁은 어떻게 가능할까. <매일노동뉴스>가 연속 기사를 통해 공공기관 정책 개선 방향을 탐색한다. <편집자>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은 이달 22일 민생회복 소비쿠폰 2차 시행을 앞두고 폭증할 민원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7월 1차 시행을 경험한 탓이다. 쿠폰 지급대상은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선별하기 때문에 공단 지사에는 관련 문의와 항의가 쏟아진다. 접수된 민원에 따라 보험료 조정, 이의신청 심사 등의 업무로 이어져 일은 상담에 그치지 않는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조에 따르면 2021년 코로나19 지원금 지급 때도 282만건의 상담과 35만건의 보험료 조정, 19만건의 이의신청 심사 업무가 처리됐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민원 쏟아진 건보공단
“정부정책 이행하느라 초과근로해도 수당 못 받아”

그런데 공단노동자들은 초과근로를 하고도 수당을 일부 받지 못할 위험에 놓여있다. 총인건비제 때문이다. 기재부는 매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발표하는데, 이에 근거한 총인건비는 인건비 모두를 규제한다. 각 기관은 기재부가 정한 인건비 인상률 내에서 기본급과 각종 복리후생비나 법정수당 등을 지출해야 한다. 공단처럼 갑작스러운 정부 정책으로 예상보다 수당을 더 많이 지출해야 하는 경우는 특히 문제다. 인건비 상한이 정해져 있으니 추가 발생한 수당을 지급하지 못하거나 대체휴무를 노동자에게 강요한다. 국민건강보험노조는 올해 초과근무에 따른 예상 비용을 33억원으로 추산하는데, 기재부에 이번 수당을 총인건비 산정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7월 소비쿠폰 담당 공무원의 시간외수당 상한을 기존 월 57시간에서 100시간으로 확대했듯, 공단노동자에게도 총인건비제를 예외 적용해달라는 요구다.

해결 실마리는 보인다. 지난달 28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총인건비 적용 예외를 주문했다. 구 장관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기재부가 지난해 대법원 통상임금 범위 확대 판결에 따라 법정수당이 증가하면 총인건비 한도를 초과하더라도 편성·집행할 수 있도록 7월에 결정한 바 있어 공단 사례도 가능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창호 국민건강보험노조 정책위원은 “기재부 지침에도 정부정책이나 자연재해로 발생한 수당은 총인건비에 조정될 수 있다는 근거가 있다”며 “직원들이 업무 부담으로 상당히 버거워했기에 정부가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위원은 “지금까지는 기재부가 일률적으로 수당 지급을 막아왔지만 앞으로는 기관 소관부처가 (총인건비 적용 제외를) 의결하는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며 “총인건비제도가 존재하는 한에서 부처에게 이 정도의 권한은 주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총인건비, 기관 간 임금격차 고착시켜

총인건비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사 간 교섭 효력도 무용하게 만든다. 철도공사 노사는 2019년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 임금 산정 기준을 시중노임단가로 반영하도록 합의했지만, 총인건비 한도를 이유로 현재까지도 자회사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문제에 노동계는 국제노동기구(ILO)에 진정을 제기했고,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2023년 6월 “정부 지침이 공공기관 단체교섭에 개입하지 않도록 공공기관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참여할 협의 체계를 구축하라”는 취지의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제도 영향은 개별 사업장 문제를 넘어서기도 한다. 특히 문제로 꼽히는 것은 기관 간, 고용형태 간 임금격차 확대다. 총인건비제는 기관 특성을 무시하고 모든 기관에 일률적으로 매년 정률 인상하기 때문에 한 번 생겨난 임금격차는 고착화하거나 심화하기 마련이다. 임금격차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통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올해 기준 정부 산하 공공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은 부설기관을 제외하고 331개다. 올해 기준 이들 기관 정규직의 1인당 평균 보수액을 높은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장 높은 기관은 가장 낮은 기관 평균 보수액의 1.3배다. 2018년 공공운수노조 연구에 따르면 당시 338개 공공기관 정규직 상위 10% 임금의 하위 10% 대비 비율은 약 4배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는 “시장형공기업과 지방공기업은 같은 공기업으로 공무를 수행하는데도 임금격차가 2배까지 발생한다”며 “기관에 따라 인건비 인상률을 일률적용하는 게 아니라 산업별·부문별·기관별 차등 인상이 가능해야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격차도 상당하다. 2023년 공공기관 무기계약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58% 수준에 그쳤다. 임금격차는 주무부처나 기관장의 정치력, 설립연도나 기관유형 등 정책·제도적 요인으로도 발생한다. 공공기관 설립 목적은 공적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기에 과도한 수준의 기관 간 임금격차는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장호진 지방공기업평가원 연구위원은 3월 노동법학에 게재한 글에서 “공공기관의 주된 사업은 차이가 있어도 기획·예산·인사노무·경영평가 등의 업무수행 그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럼에도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이유로 소속된 공공기관이 달라 수천만 원의 임금 차이가 있는 것이 정당화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총인건비제 개편, ‘노조 참여 보장’ 견지해야”

정부는 최근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며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개편도 추진 중이다. 기재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운영위는 매년 총인건비제를 포함한 예산지침을 의결한다. 지침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에 명시된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에 적용된다. 지방공공기관의 경우, 행정안전부가 예산기준을 마련해 지방공기업·공사나 공단,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에 총인건비제 등을 적용한다. 총인건비제 개편 요구가 공공기관운영위 개편을 넘어 기재부에 대한 개혁으로 향하는 이유다.

노동계와 전문가는 공공기관 임금결정 방식의 방향은 ‘노조 참여 보장’이 원칙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해당사자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노정 간 대화를 통해 격차를 완화할 임금제도를 합의하고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꼽히는 방안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안에 보수위원회를 설치해 노동계가 추천하는 위원이 참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공기관운영위는 노동계 참여가 보장되지 않았다.

채 교수는 “낮은 수준의 노사정 협의와 사회적 대화로 시작해 상설위원회를 거쳐 노정교섭 순으로 노조의 임금결정 방식을 조정할 수 있다”며 “임금격차 문제는 총인건비제 문제 중 가장 중요한 지점인 만큼 양대 노총 등이 조율하면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채 교수는 이어 “공공부문 임금은 대중적 수용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사회적 대화와 교섭을 시행한 보건·금융 분야 등 선도적 모델을 참고해 교섭 수준을 상향조정하는 단계를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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