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51·사진)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이 31일로 고공농성 200일을 맞았다. 4년 넘게 막혀 있던 교섭은 마침내 열리게 됐다. 고 지부장은 북을 두드리며 매일 광장과 소통하고, 정리해고 철회와 복직은 물론 차별에 맞서 연대를 넓혀왔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사 교섭을 앞두고 31일 고 지부장과 서면·전화 인터뷰를 진행하고 지난 농성 과정과 심정을 들어봤다. 고 지부장은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과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이 농성을 마치면서 현재 유일한 고공농성자로 남게 됐다.
-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200일째다. 농성을 시작했을 때와 현재 마음가짐이나 목적은 어떻게 달라졌나.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이 내려진 뒤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고공농성을 결심했다. 2월13일 처음 농성에 돌입했을 때는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탄핵 국면이 한창이었다. 탄핵이 이뤄지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광장에서 함께 투쟁하며 세종호텔 사태를 알리겠다고 마음먹었고, 최소 몇 개월은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어 조급한 마음은 없다.”
- 10미터 높이 좁은 구조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하루 일과는 오전 6시30분 기상과 함께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시작한다. 뉴스를 청취한 뒤 9시 아침 식사 전에는 선전전을 진행한다.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고, SNS를 확인하며 시간을 보낸다. 저녁 식사 후 오후 5시30분부터는 저녁 선전전을 하고, 7시에는 집회와 기도회에 참석한다. 이후 9시 무렵 취침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일상은 대체로 이렇지만, 여름에는 상황이 달랐다. 한낮의 더위 속에 꼼짝없이 얼음 물병만 껴안고 멍하니 시간을 보낸 날들이 몇 달간 이어졌다. 땀을 흘릴 때마다 씻거나 닦아내는 데 한계가 있어 더욱 고역이었다. 한낮의 무더위는 여전히 힘들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져 버틸 만한 상태다.”
- 농성 중에 지속적으로 북을 치고 있는데, 북 치는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나.
“처음 북을 가지고 올라간 건 선전전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복직 없이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우리의 요구를 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북을 치는 행위 자체가 나 스스로에게 수동적이지 않다는 것을 되새기며 의지를 다지는 방식이 되고 있다.”
- 2017년에 이어 두 번째 고공농성이다. 당시와 어떻게 다른가.
“당시 고공농성은 여러 투쟁 사업장과 함께하는 공동 투쟁의 과정이었다. 요구 또한 노동악법 철폐를 내걸고 함께 싸우는 것이었다. 준비 과정만도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서로가 단단해지는 시간이 됐고, 고공 단식농성 속에서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해고자가 아니었지만 함께 싸운 동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정규직으로 승리해 사업장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내가 해고자가 돼 이렇게 싸우고 있다는 현실이,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열악하고 노동운동도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해 씁쓸하기도 하다.”
- 세종호텔 고공농성은 여성, 성소수자, 예술계 등 ‘말벌 동지’들이 적극적인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것 같다.
“말벌 동지들을 비롯해 자신의 일처럼 함께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계속 싸울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세종호텔 투쟁은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노동 영역을 넘어 다양한 연대로 확장돼왔다. 노조 역시 투쟁 과정에서 여러 차별에 맞선 싸움을 접하며 작지만 함께하려는 실천을 이어왔고, 그보다 더 많은 연대를 받아 왔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지부의 사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차별에 저항하는 현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싶다.”
- 농성 시작 후 사측의 입장 변화나 소통 가능성 같은 진전이 있었나.
“정리해고 이후 4년 넘게 사용자쪽의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후 정치권을 통한 압박이 이어지면서 지난 14일 세종대학교 대양학원 재단 이사회가 처음으로 세종호텔 해고자 복직 안건을 논의했고, 복직안을 마련하라는 결론을 오세인 세종호텔 대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고 28일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어 교섭을 요구했다.”
- 결의대회 이후 오 대표가 직접 교섭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는데.
“오 대표에게 교섭을 요구하며 호텔 로비에서 연좌한 끝에 9월 둘째주 교섭하기로 했다. 정리해고 1년 반 만에 호텔은 객실 영업만으로 흑자를 기록했고, 해마다 흑자 폭도 커지고 있다. 이제 해고자들이 복직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지부는 △6명 해고자 전원 복직 △해고 기간 임금 지급 △부당 해고에 대한 사과 △법적 소송 취하 △조합 활동 보장 등을 최소한의 요구로 내걸고 있다.”
- 마지막으로 고공농성을 마무리하고 복직한다면 첫날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복직이 결정되면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이고 선전물을 만들어 (호텔) 내부 노동자들에게 배포하며 알리고 싶다. 지금은 정규직이 몇 명 남지 않았고 이미 하청노동자가 더 많아졌지만, 그래도 이번 과정을 통해 노동자 투쟁의 힘을 알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