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PDF파일에 정을 붙여보려 해도 쉽지 않았던 독자님, 잘 찾아오셨습니다. 책의 ‘물성’을 사랑하고, 책 냄새를 좋아하는 분도 좋습니다. 이력서 취미란에 한평생 ‘독서’를 적어오신 독서 외골수도 환영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쌓아둔 소비요정 독자라면 더욱 눈이 떠질 겁니다. 여러분을 ‘책템’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책템은 아직 업계에서 합의한 용어는 아닙니다만, ‘책템·책굿즈·독서템’ 등으로 불리는 일종의 독서 보조 도구들을 가리킵니다. 전통적인 책갈피·독서대부터 책꾸(책 꾸미기)에 용이한 북커버도 있습니다. 신간 홍보를 위해 출판사·유통사에서 만들어내는 판촉물도 ‘책템’입니다.
어떤 분은 ‘본말전도’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책보다 굿즈가 화제가 되는 세태를 꼬집는 기사나 굿즈 마케팅이 과열하며 독서의 본질과 좋은 책이 외면당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어보셨을테지요. 그런 의미에서 29일 <매일노는뉴스>는 독서라는 경험을 확장하는 ‘책템’만을 소개하려 합니다. 소비만을 위한 책템이 아니라 독서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책템의 세계를 보여드릴게요. 다만 책템이 누군가에겐 그저 책과 독서를 사랑하거나 트렌드를 향유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참, 우선 이 글을 읽으며 각자의 독서습관이나 책을 대하는 태도를 살펴주세요. 나는 책에 메모도 하고 줄을 긋거나 모서리를 접으며 읽는지, 책의 손상을 최소화하는지, 아무래도 괜찮다는 유형의 독자인지요. 독서습관과 태도에 따라 필요한 책템을 골라보셔도 좋으니까요.
책보다 비싼 ‘책갈피’도
완독 등반 함께하는 셰르파
첫 번째로 소개할 책템은 책갈피입니다. 읽던 곳이나 기억하고 싶은 곳을 찾기 쉽게 책 낱장 사이에 끼워두는 물건입니다. 책갈피를 구매하는 것이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동네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책 광고가 인쇄된 종이 책갈피를 책마다 끼워주곤 했으니까요. 딸려온 책갈피와 함께 책을 다 읽고 나면 책갈피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던 경험, 한번쯤은 있으실테지요.
그런데 요새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책갈피를 판매합니다. 소재도 다양하고, 어떤 것은 책값보다 비쌉니다. 한복 안감인 노방천에 자수를 놓은 책갈피, 얇은 금속판을 쓴 책갈피, 우리에게 익숙한 종이 책갈피, 가죽의 자투리를 이용한 책갈피도 있습니다. 책갈피 그림과 문구도 가지각색입니다. 지향하는 가치나 책의 한 문장, 낯선 나라의 풍경이 담겨있거나 귀여움으로 무장한 고양이도 단골 소재입니다. 과일의 단면을 투명한 플라스틱에 구현하거나 각종 일러스트와 패턴을 넣어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만한 책갈피도 많습니다.
책의 주제에 따라 책갈피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학·노동법과 관련된 책을 읽는다면 기억할 곳을 쉽게 표시하는 스티커형 책갈피는 어떨까요. 조금 더 진지한 느낌을 원한다면 ‘북다트’라는 클립형 금속 책갈피도 추천합니다. 여러번 재사용할 수 있고 쉽게 녹슬지 않는데다가 책도 상하지 않습니다.
문학책을 집어들 때면 개성 만점의 책갈피를 찾게 됩니다. 왠지 이 책의 주제나 분위기와 어울릴 법한 책갈피를 고릅니다. 그렇게 선택된 책갈피는 완독까지 등반을 함께하는 셰르파가 됩니다. 독서를 마친 뒤에는 그 책 고유의 책갈피로 남아 책장에 함께 보관됩니다. 여행을 기억하기 위해 자석이나 머그컵을 사오듯 책갈피도 책 여행을 환기하는 기념품으로 남습니다.
새 학기 교과서 표지 싸던 습관이 남아 북커버로
무슨 책 읽을까 궁금증 자아내고, 책도 보호하고
잠시 추억 여행을 해볼까요. 새 학기를 맞아 교과서를 받아들곤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교과서 표지를 정성스레 싸곤 했는데요. 처음엔 큰 달력 뒷면을 포장지로 쓰다 나중에는 문구점에서 비닐 포장지를 구매했습니다. 곰손으로 열 권 남짓한 교과서를 포장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썼지만, 매 학기마다 무탈을 바라며 작은 의식을 치렀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는 오래 지났지만 책을 아끼는 마음과 습관은 남았습니다. 배낭 속에서 노트북과 구르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책이 안타까운(?) 마음에 북커버를 구매했습니다. 천으로 만들어진 북커버에 책 양 날개를 끼우면 책등과 표지를 폭 감싸는데요.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읽는 책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사생활 보호 기능도 해냅니다. 책을 각종 오염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이점도 있지요.
그런데 구매하다 보면 책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책을 꾸미려고 사는 것인지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가내 경제 공동체를 이루는 배우자 잔소리도 잦아집니다. 북커버가 왜 여러 개 필요하냐는 핀잔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기자의 독서습관 탓입니다. 집중력이 약해 동시에 여러 권을 읽으니 색색의 북커버를 씌우면 독서 중인 책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혹시 구미가 당기는 독자님이 있다면 책 크기를 고려해 북커버를 구매해야 한다는 꿀팁을 알려드립니다.
거북목 진화 막을 독서대는 필수
집중 위한 각종 북템도 유용
독서대는 하나쯤 꼭 권하고 싶습니다. 가벼운 휴대용 독서대를 장만하면 노트북으로 작업할 때나 책을 읽을 때 유용합니다. 꼭 높이조절이 되는 것을 사되, 꼼꼼히 리뷰를 정독해 내구성이 좋은 제품으로 들이시길 바랍니다. 책을 잘 잡아주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읽은 책을 기록할 독서노트나 북라이트도 유용합니다. 자기 전 스마트폰을 만지는 습관을 버리고 머리맡에 작은 전등을 두면 침대 위 독서가 재밌어집니다. 책을 읽다 보면 말할 것도 없이 잠에도 빨리 들게 됩니다. 집중력 향상을 위한 북템도 있습니다. 소음을 막아주는 귀마개와 초시계(스톱워치), 책연필입니다. 초시계로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가며 독서하다 보면 스마트폰에 뺏긴 집중력이 늘어납니다. 책에 줄을 그어가며 읽되 책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는 흰색 ‘책연필’도 독서 몰입에 도움이 됩니다.
‘책템’의 세계는 책의 세계만큼이나 무궁무진합니다. 좋은 책템은 독서의 질을 높이고, 지속가능하게 합니다. 기후재앙이 닥친 여름을 맞아 독서에 권태기를 느낀 독자가 있다면 나만의 책템 조합을 찾아보시길 추천합니다.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덕후’들의 진지한 탐구와 모험에 발을 들여보세요. 당신의 책 세상은 좀 더 다채로워질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