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신의 프리랜서 PD

섭외 중, 휴가여서 어렵다는 답변을 받고서야 여름휴가 시즌이란 걸 알았다. 그러고 보니 SNS에는 피서지에서의 풍경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즐비하다. 햇살이 반짝이는 휴양지 해변, 미소로 가득한 가족 만찬, 맑은 계곡과 캠핑장. 자그마한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이 있고, 차가워 보이는 캔맥주가 보여 있다. 노트북엔 영화 <위플래쉬>가 틀어져 있다. 무슨 피서지에서까지 이런 영화를 보냐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주인공 앤드류와 지금 내 모습이 겹쳐 보인다는 생각이 스친다.

위플래쉬 속 주인공인 앤드류는 드럼을 좋아한다. 문제는 플레쳐라는 스승을 만나고부터다. 연습 첫날 “재밌게 해봐”라던 플레쳐는 앤드루가 박자를 못 맞추자 의자를 던지고 뺨을 때린다. “저능아가 어떻게 입학했지?”라는 욕설도 퍼붓는다. “죽도록 연습해”라는 말과 함께. 이후 앤드류는 드러머의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다. 연애도, 가족도, 건강도. 재미가 재미없어진 순간이었다.

“근데 너는 재밌어서 하는 일이잖아?”

그 말 앞에서 나는 무언가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악의가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이 업계에서 오랜 시간 견고하게 굳어 버린 어떤 믿음을 담고 있다. 방송은 ‘재밌는 일’이기에 노동과 차별된다는 믿음 말이다.

PD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생각한 대로 영상을 만들고 의도한 대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창작 욕구를 충족하는 일은 재밌다. 문제는 그 감정 하나로 많은 것을 감내하는 데 있다.

‘재미'라는 말은 그럴듯하기에 종종 책임이 전가된다. 합당한 대우는 유예되고, 열악한 노동 환경은 묵인된다. 단가 후려치기, 인력 부족, 수당 없는 추가노동은 그렇게 태어난다. 어느 순간 재미있던 일은 ‘재미있어야만 하는 일’이 됐다.

연애와 가족관계가 어그러졌던 앤드류처럼, 관계에도 오해가 쌓인다. 일 때문에 약속을 여러 번 취소하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는 초대조차 드물어진다. 친구들의 연락은 줄고 가족들은 내 눈치를 본다. ‘바빠서 못 간다’라는 말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돌아온다.

방송은 변했다. 포맷도, 기술도, 소비 환경도 달라졌다. 플랫폼은 다양해졌고 시청자는 능동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여전히 방송 노동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PD를 비롯한 방송노동자들의 현실은 개선보다 적응에 가까운 방식으로 버텨야만 한다. 그리고 그 버팀의 근거는 언제나 ‘재미’다.

“재밌게 해봐”라던 플레쳐의 교육은 잔혹하다. 그 말 이후 재미는 사라졌고 앤드류의 삶은 망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밌게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재미있어야만 하는가. 재미는 착취의 근거가 돼선 안 된다. 재미는 면죄부가 아닌 동기여야 한다.

강요당한 재미의 종말이 오길 바란다. 재미없어지는 순간이 오기 전, 노동의 가치가 그런 재미에 잠식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휴가를 접어두고 밤샘을 반복하며 버티는 수많은 앤드류들이 끝내 살아남기를 바란다.

사진 영화사 제공
사진 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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