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빛나리 작가노조 준비위원장
▲ 오빛나리 작가노조 준비위원장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의 비상계엄 선포 후, 약 6개월간 사회 정상화를 위해 모든 시민들이 각기 다른 계층과 위치에서 고군분투했다.

그 시기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종의 월세 사기에 휘말려 있었다. 곰팡이와 누수로 뒤범벅된 천장, 구멍 뚫린 천장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정체 모를 쇳물, 계약서상 월세와 상이한 실제 통보받은 월세, 실소유주가 아닌 대리인과의 지난한 소통 등, 내 곤궁한 상황을 들은 아빠(소위 ‘경상도 정신’의 자랑스러운 계승자)는 우스갯소리 하듯이 말했다. “느그 운동하는 친구들 있다 아이가. 도와달라 해라.” 그리고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빠, 그 친구들 다 광장 나가 있어요! 아빠가 뽑은 대통령 때문에!” 그런 나날이었다.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건, 생각보다(사실은 당연하게도) 할 일도 많고 고민도 많아지는 자리다. 그중 하나는, 온전히 내 작품을 위한 집필 시간과 독서 시간에 투자할 시간 분배에 대한 고민이다.

작가노동의 절반은 독서에서 시작한다. 깊은 독서가 깊은 글쓰기를 만든다. 모든 독서가 인간 영혼에 필연적인 감응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어떠한 깊은 감응은 독서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세상에 회의는 끊이지가 않고, 투쟁할 이슈는 이다지도 많은지. 작가노동 자체는 물론, 불안정노동·비정규노동에 대한 사회의 이해는 이렇게도 척박한지.

일도 일인데, 나도 책 좀 읽자. 글 쓰는 노동자로서, 독자에게 사기 치지 않으려면 깊은 독서를 해야 한단 말이다. 특히, 타인의 삶을 엿보고 관찰하며 기록이든 창작이 됐든 글로 엮어내는 노동자들은, 사기꾼이 되지 않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정부가 비판받을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내 개인의 안위와 진실한 작가노동을 위해서도 윤석열 전 정부와 이재명 현 정부는 비판 대상이다. 어느 직업이 안 그렇겠냐마는 특히 두 사람은 절대로 사기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직업을 가졌(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과 이재명에게 몇 가지 책을 권하고 싶다. 윤석열은 수감 상태라 시간이 널널할 것 같으니 장편이나 무거운 주제를 권하고 싶다. 인생사 복잡하고 심란하게 느껴지겠지만, 그 시간을 잘 활용하면 깊은 감응을 마주할 수도 있겠다. 주변 지인들 중에도 수감 경험이 있는 사람이 꽤 있는데(죄목은 묻지 마라, 험악한 건 아니었다), 자기계발하기 좋은 곳이라고 추천(?)했다.

먼저 윤석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다. 제목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 파리와 런던의 최하위계층 노동자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전적 르포이자, 에세이다. 조지 오웰이 직접 런던과 파리에서 겪은 온갖 불안정하고 비정규한 일자리들의 삶에서 마주한 사람들, 가난, 계급, 궁핍, 자본 등에 대한 이야기가 특유의 재치 있고 냉소적인 입담으로 이뤄져 있다. 가난을 ‘불결’하고, ‘무식’하고, ‘취한 것’으로 다루는 사회에 대한 고발을 온몸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가난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인물들의 처지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추천한다.

다음은 이시도 작가가 추천한 책 목록이다. <독재자>. 말은 ‘경고였다’고 하지만, 경고든 아니든(아니겠지만) 계엄은 자연스레 독재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 독재의 풍경을 그려낸 한국 SF작가들의 작품집을 보자. 감옥에 갇혀 있다는 걸 잠시 잊게 해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독재 체제라는 게 독재자 본인에게조차 끔찍한 체제라는 걸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지도.

<이것이 인간인가>도 있다. 절절한 아우슈비츠 생존기. 감옥에서 읽으면 몰입이 몇 배는 잘 될 것이다. 공감하고 응원하며 생생한 증언을 끝까지 따라가고 나면, 애초에 그들이 왜 그런 처참한 경험을 해야 했는지 생각해 보자. 물론 그건 비상대권으로 독재 체제를 수립하고 전쟁과 학살을 일으킨 독재자가 있었기 때문. ‘에이. 나는 그래도 히틀러랑은 다르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히틀러의 법률가들>도 보자. 독재와 억압을 열심히 정당화한 법률가들의 이야기에서 동질감을 느끼거나, ‘아, 이렇게 해야 했네’ 하는 아쉬움을 느끼진 않는지?
 

이재명은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 속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에게는 할 일이 아주 많다. 그 배경을 고려하여 이런 책을 권한다. 성상민 작가의 추천은 <가난의 문법>, 이번 대선 공약에서 언급한 ‘기본사회’ 이야기. 말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분명한 실태 파악과 명확한 정책 실행으로 나아가기를.

이시도 작가의 추천이다. <킨>. 어떤 사회에선 노예 ‘제도’만큼이나 인종이나 젠더 같은 타고난 요소가 개인을 얽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노예 제도가 살아있는 미국과 70년대 미국을 오가는 시간여행 이야기를 통해 흑인이자 여성인 작가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문제들을 생생하게 제시한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에도 맞닿아 있을 이야기를. 만약 우리 주변에 노예 제도가 있다면, 그냥 외면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개인의 가능성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있다면, 그것을 함께 풀어버리는 게 시급한 사회적 과제이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족쇄를 푸는 열쇠는 더 나은 ‘제도’의 시행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름휴가엔 지금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고 고민하게 할 시간여행은 어떨까? 굳이 더 말을 보태지 않아도 ‘차별금지법’이라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그동안 본인이 이야기해 온 ‘대동사회’, ‘진짜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껏 보이지 않던 노동이 보이고, 당연시해 온 희생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진 않을까? 본인의 어릴 적 경험을 떠올리며 상당히 공감할 수도 있을 생생한 삶의 증언과 이름들이 이 책엔 가득하다. 명함도, 휴가도 없지만, 우리 사회를 탄탄하게 지탱하는 삶과 노동의 이야기들. 어쩌면 이 삶과 노동에 필요한 건 명함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세심한 제도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이 책에는 휴가 기간에 더 나은 정책을 고민하며 참고하기 좋은 다양한 통계 자료들도 함께 있다.

마지막으로는 당연히, <작가노동 선언>이다. 내게는 우리 준비위가 우리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펴낸 책을 홍보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이 책은 그 당위만으로 홍보하기에는 아까울 만큼,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작가노동의 현실과 실태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문화예술노동, 불안정노동, 비정규노동의 한 현장증언으로서 훌륭한 자료가 될 것이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어쨌거나 나는 무사히 이사도 했고, 보증금 반환도 받았다. 영혼이 다칠 뻔했지만, 가까스로 멘탈도 붙잡을 수 있었다. 광장에서 목이 쉬어라 투쟁했던 친구들이 틈틈이 마음 써준 덕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름대로 모두의 ‘일상’이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투쟁 현장에서는 ‘일상’이 보이지 않는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보니, 정말 위원장 자리가 사람을 다 만드는구나 싶다. 책 추천을 빙자해 윤석열과 이재명에게 하고 싶은 얘길 썼다.

아니, 사실은 당신들을 위해 쓴다. 우리가 12월과 6월을 기억하고 있노라고. 우리만의 방식일지 몰라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노라고. 글 쓰는 노동은 이런 일인가 싶다. 앞으로 부단히, 사기 치지 않도록 나 또한 기억하고, 말하고,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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