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라는 걸 느끼는 건 이런 게 없는 것이다. 매장 안 복도에 낮은 성벽처럼 쌓인 파란 물류 박스, 그 틈 사이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러 온 직장인, 하굣길에 들러 물류 박스를 비집고 복도를 오가는 초등학생들, 그들이 지저분한 테이블에 엉겨붙어 컵라면과 도시락을 먹는 풍경.
매대에 보충진열을 끝내 놓고, 전표를 보며 물건을 검수해 매대 또는 창고에 정리하고, 음식물 잔해로 엉망이 된 테이블을 닦고, 시간 맞춰 신선식품 폐기를 골라 내고, 틈나는 대로 행사 고지물 중 매장에 해당되는 것을 벽에 붙이고, 업데이트된 가격표를 교체하면서, 중간중간 카운터로 달려와 “이거 2+1 교차 돼요?” “3일간 서울에 머무르는데, 어떤 교통카드를 사서 얼마나 충전하는 걸 추천하나요?”(외국어) 등의 문의에 응하는 일.
늦은 저녁 들이닥치곤 하는 시끌벅적한 외국인 단체 관광객까지 상대하고 집에 돌아와, 몸과 마음이 그야말로 ‘털려’ 샤워를 하고 침대에 쓰러지는 일. 서울 번화가 편의점에서 보이는 흔한 풍경이지만, 휴가철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그나마 여유가 있다.
몸이 고단하지 않아서 좋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글쎄다. 몸이 고단하다는 사실은 내게 일정한 위안을 주는데,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잡생각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결국 이런 거다. ‘이대로 괜찮을까.’
나는 세 번 퇴사했다. 어쩌다 보니 편의점에서 일한 기간이 가장 길다. 이전 회사에서 보냈던 날들이 꿈처럼 느껴진다. 편의점은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가늠할 여유를 제공해 줬다. 편의점이 바닥을 받쳐주는 동안, 세 번째 취업을 하고 다시 나오는 경험을 하며 알게 된 점이 하나 있다. 내게 ‘대안이 없으니 하기 싫은 일이라도 참고 해야 한다’는 상황은 굴욕이고, 나는 그런 굴욕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세상을 견디는 맷집은 약한 주제에 고집만은 더럽게 세다는 것.
어렵고 오래 걸리더라도 나의 답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지금의 결론이다. 답을 찾으려면 우선 안개로 가득한 내 안을 살펴보고 갈피를 잡을 공백을 확보해야 했다. 누구도 아닌 나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확실한 것은, 글은 끝까지 함께 간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 퇴사 후 어떻게든 이를 글로 꺼내 정리하면서 꽤 답답함으로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삶에서 재료를 얻어 도자기 빚듯 글을 쓰고, 글이 다시 삶을 빚어낸다. 확신할 수 없더라도 계속 써야 한다고 느낀다. 내 글을 삶의 최전선으로 내보내서 싸우게 하고 싶다. 나 외에 아무도 읽어 주지 않아도, 적어도 그 글은 내 안에 어떤 형태로든 녹아들 것이다. 언젠가 내가 내놓을 언어의 재료가 되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의미로 가닿는 기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다만 다음 방향은 무엇일까. “너는 아마 평생 생각해도 모를 거야.”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본가로 내려간 내게 엄마가 한 말이다. 좀처럼 한 곳에 자리 잡지 못하는 자식이 속상하실 테니 무슨 말을 해도 묵묵히 듣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저 말은 아팠다.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진짜 계속 모르면 어쩌나.
퇴사한 뒤 한때는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갔다. 매일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혼자 앉아 원 없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 지치면 해변가를 산책했다. 쓰고 싶은 글도 쓰기로 했다. 회사에서 힘들 때마다 간절히 하고 싶은 일들이었다. 이제 바라던 대로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아득하게 막막하고 자유로웠다.
다만 여유 시간은 넘쳐나도 글은 써지지 않았다. ‘어디로 노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뱃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한 말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문장이었다.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뿐이니, 이걸로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세 번째 회사를 다니던 내 모습과 비슷했다. 어떻게든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무슨 일을 하며 성장하고 싶은지는 전혀 그려내지 못했던.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은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하고 싶은 다른 구체적인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기 싫은 일은 많으면서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니. 철없는 20대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순 없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일이라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도 더 빨리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을 구슬렀다. 애석하게도 그런 태도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싫은 일이란 가고 싶은 방향에 놓여 있다고 설득돼야 겨우 감내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마음에 중심이 잡혀 있지 않으니 상황에 따라 일의 리듬이 널을 뛸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불쑥불쑥 이런 마음이 든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 수 있을까. 가끔 세상에 사는 게 막막하고 두렵다. 어떻게 다들 저리 당연하다는 듯 치열하게 사는 건지. 내가 짜낼 수 있는 의욕과 감당할 수 있는 일상의 그릇은 작다. 완전히 망가지지 않도록 근근이 방어해 내고 있지만, 뭔가 돌파구가 되리라고 희망을 품어볼 만한 구석도 없다. 이런 생각,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느낌에 빠져들면 위험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달린다.
달리기에 전부를 걸진 않는다. 한때는 그런 희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대안 없이 도망치듯 첫 직장에서 나온 뒤였다. 20대 전부를 거쳐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어느새 일터에서 견디는 데만 급급해져 있었다. 백기를 들어 사직서를 썼다. 나를 움직이던 가장 큰 동력이 허무하게 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무렵, 자주 들르던 수제맥주 펍에서 달릴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봤다. 달리기로 마음을 채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러닝은 삶 전체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정직하게 실력이 늘고 있다는 체감, 고양감과 자유로움, 완주까지 자신을 통제한다는 감각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다음 목표가 세워지지는 않았다. 당연하지만 러닝은 러닝이고 삶은 삶이었다. “마라톤이 폼 나죠? 인간승리 하는 거 같아서. 근데 그거 다 현실도피에요. 그냥 사는 게 갑갑하니까 그런 걸로 대리만족하는 거라고요.” 영화 <말아톤> 초반부터 나오는 대사다.
그럼에도 나는 두 번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 낸 러너다. 움직이고 있으면 파도처럼 주기적으로 밀려오는, 늪 같은 우울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주는 활발한 에너지가 있다. 선두가 외치는 장애물 주의 알람을 뒷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따라 소리치는 모습, 달리기를 멈추고 걸어서 도로를 건널 때 모두의 달궈진 몸이 내뿜는 열기, 골인 지점에 양 옆으로 도열한 선두 그룹이 한 손을 내밀고 하이파이브로 후미 그룹을 맞는 광경이 주는 것들. 이런 순간 속에 있으면 그때만큼은 온몸이 생생히 깨어 있는 기분이다.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 듯한 우울감은 달리고 있으면 어느새 날아간다.
일단은 살아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뾰족한 수 없이 그저 현상을 지루하게 유지시킬 뿐인 방어전에 불과하더라도, 계속 살아남아 할 수 있는 만큼을 하고 있어야 돌파구가 보일 가능성이라도 주어진다.
나는 손석구가 될 수 있을까. 배우 손석구가 매체에 소개될 정도의 영화에 처음 출연했던 나이는 서른다섯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다. 데뷔가 빠른 편은 아니었고, 곧바로 큰 인기를 얻었던 것도 아니다. 조급해할 법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몇 년이 걸리든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다른 것들도 따라온다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고. 그래서 끊임없이 바쁘게 일을 벌이며 불안을 잠재우는 대신, 철학책을 뒤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지내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반짝 떠올라서 짧은 인기를 누리고 잊히기보다, 늦더라도 오래가는 길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지금 손석구는 그런 선택을 한 과거의 자신이 기특하다고 한다.
간절히 원했던 대로, 지금 나는 당장의 효율적인 성취와 무관한, 자유롭고 막막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언제까지 이런 삶의 방식을 고수할 수 있을지 가끔 불안하다. 하지만 나는 급하게 적당한 걸 줍거나, 누가 쥐어 준 걸 받아든 채 살고 싶지 않다. 내게 어울리는 ‘사는 이유’를 손에 넣고 싶다. 그걸 알게 됐을 때 비로소 소속 없이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