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충효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 대외협력본부장
▲ 하충효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 대외협력본부장

* 이 글은 하충효 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 대외협력본부장 인터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평소에는 물량이 많지 않은 지역이지만, 휴가철만 되면 유독 물량이 몰리는 곳들이 있습니다. 바로 피서지입니다. 피서지로 떠나시는 날이나 그 전날, 숙소로 택배를 시켜 두시는 모습은 이제 일반적인 풍경이 됐습니다. 삼겹살·조개 등 생물 음식들을 아이스박스에 바리바리 챙겨 가시던 시절은 이제 점점 옛날 이야기가 돼 가고 있습니다.

해수욕장이나 계곡, 섬 인근 숙소로 택배를 배달하다 보면 확실히 휴가철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잠시나마 즐길 수 있는 점도 있습니다. 휴가를 즐기시는 분들이 보다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도와드린다는 점에서는 뿌듯함도 느낍니다. 다만, 이러한 즐거움 뒤에는 무거운 마음도 함께 따라옵니다. 또다시 전화를 많이 받게 되겠구나 하는 걱정이 늘 한켠에 자리합니다.

대부도나 안면도 같은 지역에서 일하시는 택배 기사님들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고객님들의 전화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왜 아직 안 오느냐, 빨리 갖다 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유를 여쭤보면 대체로 이렇습니다. “곧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아직 안 오면 어떡하느냐” “내일 오전 체크아웃인데 그때 배달해 주시면 의미가 없지 않느냐” 등. 여기에 “사정이 급하다” “제발 부탁드린다”는 짜증 섞인 말이 더해지면 그때부터 기사님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요즘 숙소 체크인은 오후 3시고, 체크아웃은 오전 11시 정도라죠. 도심이 아닌, 안면도나 대부도 같은 지역은 도심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 수시로 드나들 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배달을 해서 물량을 쳐내야 하는 일정을 고려하면, 일정상 고객님들이 원하는 시간대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맞추는 일은, 아쉽지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더 난감한 경우도 있습니다. 택배기사가 물품을 접수하지 못했는데도 전화가 오는 경우입니다. 물건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화를 받게 되면 매우 난처합니다. 분명 기사님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기분 좋게 휴가를 떠나셨다가 짜증나신 고객님들의 처지와 입장을 전화기 너머로 듣고 있자면 마음 한켠이 무거워집니다. 그 상황에서 감정노동을 하다 보면, 기사님들의 피는 마릅니다. 그래서 피서지는 택배 기사님들께는 ‘피해야 하는 피해지’ ‘피를 말리는 피말지’가 되곤 합니다.

도심과 거리가 있는 피서지, 예를 들면 대부도나 안면도처럼 접근성이 좋지 않은 지역의 경우에는 택배를 전날이 아니라 전전날에 미리 주문해 주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그런 지역은 접근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하루에도 한 번 정도만 방문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오전 중에만 배송이 이뤄지기 때문에, 오후 체크인을 하시고 직접 물건을 받으셔야만 하는 경우에는 시스템상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생물 음식 등 신선식품을 보내시는 경우에도, 보냉 처리가 잘 돼 있기 때문에 몇 시간 늦게 도착한다고 해서 음식이 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여유 있게 주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좀 뻔한 것 같지만, 그래도 요청드릴 게 있는데 바로 한 분 한 분의 배려입니다. 혹시 배송이 늦더라도, 기사님 탓이 아님을 기억해 주세요. 체크인 시간과 배송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면, 하루 이틀 먼저 주문한 뒤 숙소 쪽과 상의해 주세요. 반드시 직접 수령을 해야 하는 물품일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간대인지 먼저 확인해 주세요.

몸만 가져가는 피서지에서의 풍성한 한 끼, 시원한 맥주 한 잔에 택배노동자들의 노동과 수고가 묻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신다면, 저희에게 피서지는 피가 마르는 지역이 아니라 정말로 더위를 피하는 지역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