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가 특정 배달앱으로 1년에 240건 이상의 배달업무를 수행해야 종사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을 내놔 플랫폼노동자들이 비판에 나섰다. 이들은 배달플랫폼을 이용하는 종사근로자의 개념이 협소해질 것을 우려하면서 노동위 결정에 산정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때 아닌 ‘전속성’ 꺼내든 배민, 그대로 수용한 서울지노위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5월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가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청년들을 상대로 제기한 과반수노조 이의신청을 기각하며 이 같은 내용의 종사근로자 산정 기준을 밝혔다. 서울지노위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회사의 종사근로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노무제공자의 소득의존성과 전속성 여부를 고려하여야 하고, 이를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며 기준을 제시한 배경을 설명했다. 종사근로자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5조가 규정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다. 교섭단위를 결정할 때 종사근로자수를 기준으로 조합원수를 산정하는데, 과반수노조 결정 등에 쓴다.
서울지노위의 결정은 앞선 노동위 결정과 배치된다. 2021년 서울지노위와 지난해 경기지노위는 각각 배달라이더·대리운전기사의 종사근로자 기준을 ‘해당 앱을 이용해 1번 이상 일한 조합원’이라고 했다. 이와 견줄 때 서울지노위의 이번 결정은 플랫폼 노동 실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지노위가 제시한 ‘전속성’ 개념은 여러 앱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특수고용·플랫폼노동의 실태를 고려해 산재보험 요건에서도 폐지된 바 있다.
서울지노위가 밝힌 기준은 사용자쪽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기도 하다. 노조쪽은 노동위 선례를 고려해 1년에 1건 이상 배송한 조합원을 종사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사용자쪽은 서울지노위에 의견서를 보내 1년간 240건 이상의 배달수행 이력이 있는 라이더만 노조법상 종사근로자라고 주장했는데, 서울지노위는 이를 “일응 타당하다”며 수용했다. 사용자쪽은 전일(8시간) 혹은 반일(4시간) 이상 업무를 6개월 이상 수행해야 법률관계 지속성을 인정할 수 있다며, 배달 1건당 평균 30분이 소요되는 점과 매일 최소 8~10건을 배달해야 하는 점을 종합해 6개월간 240건의 배달수행 이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다소 완화해 1년간 240건이라는 기준을 설정했다고 부연했다.
“정보 독점한 사용자, 유불리 판단해 임의 기준 만들어”
플랫폼노동자들은 서울지노위 결정을 “플랫폼노동 실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 앞 기자회견에서 “노동자 입장에서는 황당한 기준으로, 사용자가 임의로 제시한 점도 문제”라며 “사용자는 알고리즘·배송 수행 시간 등 정보를 독점한 상황에서 유불리를 고려해 종사근로자 기준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김주환 전 대리운전노조 위원장도 “플랫폼 노동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한 결정”이라며 “서울지노위가 단순히 행정 편의만을 추구한 것을 넘어 자본의 편익과 결탁한 결정을 내렸다” 고 비판했다.
서울지노위의 이 같은 결정이 플랫폼 노동자를 배제함으로써 사각지대를 넓힌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서울지노위 결정으로 산정된 조합원수가 줄어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한도가 줄 수 있고, 종사근로자만이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참여할 수 있어 노조법상 조합원으로서의 권리도 일부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종사근로자 기준을 좁히면, 플랫폼노조 가입 문턱도 높아지는 셈이다. 이번 서울지노위 결정이 다른 플랫폼 업종으로도 확산할 수 있다.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이 논리가 확산한다면 산재사고를 당해 1년간 배달 건수를 채울 수 없던 노동자, 초단기근로자 같은 노조가 신경써서 보호해야 할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배제될 수 있다”며 “이번 결정은 종사근로자 규모를 추산한 것을 넘어 합법적 노조활동 테두리를 자의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을 대리한 김현규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새날)는 “경제적·조직적으로 종속된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해도 전속성과 소득의존성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비해 낮은 것이 플랫폼노동의 특징”이라며 “배달노동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실적 기준을 세워 종사근로자를 판단한 서울지노위 결정은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잘못 이해한 위법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