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 노동자 고 김충현씨가 숨진 지 50일을 맞았다. 그렇지만 고인의 동료들은 고인을 기리기 위해 매주 서울로 올라와 추모제를 연다. 이들은 고인의 평온한 쉼을 위해 아직 해야 할 역할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에서 김영훈(32·사진)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을 만났다. 김 지회장은 사고 당시 유족에게 전화를 걸었고 장례 때는 고인의 영정을 들었다. 그에게도 힘든 시간이지만 “고인이 억울하게 눈을 감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떠올렸다고 한다.
지회와 114개 단체가 꾸린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정부에 약속한 협의체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유족은 대책위에 권한을 위임했다. 고인 사망의 진상과 발전노동자 안전 대책은 어떻게 논의해야 할까. 김 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고인, 임금삭감·업무 과부하로 찢어지게 힘들어했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관계부처 협의 끝에 대책위와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후 대책위 요구에 따라 협의체에 기획재정부도 참여하기로 했다. 국무조정실이 협의체를 주관하고 기재부·고용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가 함께한다.
고인 사망은 협의체 논의의 출발점이다. 경찰과 노동부는 사고를 조사 중이다. 김 지회장은 사고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당시를 복기하며 진상 규명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조합원들이 사고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져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러 갔더니 한전KPS 관계자가 조사 중이라면서 현장에 안 와도 된다고 했어요. (현장에 못 가게) 조합원을 막고 해서 실랑이가 있었고, 저는 버텼어요. 이후 (고인)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한전KPS는 유족을 대동하고도 사고현장 출입구를 못 보게 모두 잠가 놨어요. 그러다 한전KPS가 ‘오더에 없는 작업이었다’고 해 경황없는 중에도 모두가 분노했어요.”
진상 규명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구조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김 지회장은 “고인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구조적 폐해로 발생한 만큼 이 관행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은 10개 넘는 자격증을 보유할 만큼 노력했고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배웠다. 1997년부터 일을 시작해 30년 가까운 베테랑 기술자였다. 그런데 경력에 비해 임금은 낮았고 업무는 과부하였다. 하청업체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수개월마다 고용불안을 겪지 않아도 될 일자리를 찾기도 했지만, 일자리가 없는 지역에서는 이직도 쉽지 않았다.
“김충현 동지도 이직을 여러 차례 시도하셨던 걸로 알아요. 원청이 노무비를 많이 삭감했고 그 때문에 발전소를 한 번 퇴사하시기도 했어요. 그러다 다시 들어오셨는데 기존 연봉보다 더 적어지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죠. 찢어지게 힘들어했어요.”
발전소는 그를 필요로 했지만 대우는 형편없었다. 김 지회장은 “1호기부터 10호기까지 (부품)공작을 다 맡겼다”며 “공작실의 선반을 만질 수 있는 분도 그 분뿐이라 돌아오게 했는데도 원청이 업무를 과중시켰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발전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쟁체제에 놓인 발전 5사(한국동서발전·한국동부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남동발전·한국남부발전)를 통합하고 발전소 양대 공정인 연료환경 분야·정비 및 설비 분야 노동자도 한전KPS나 발전사로 직접고용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하면 올해 말부터 발전소가 폐쇄하더라도 고용 안정을 이룰 수 있다.
“업무복귀명령 따랐다면 2차 사고 발생했을 것”
김 지회장은 외주화가 발전소 현장에서 야기하는 위험을 여러 차례 느꼈다고 증언했다. 최근 논란이 된 업무복귀 명령도 한 예다. 한전KPS는 하청업체를 통해 고 김충현씨 사망사고로 트라우마 치료 중인 노동자에게 갑작스레 업무복귀를 지시했다. 지회장을 포함한 38명의 조합원은 모두 상담치료 등을 받고 있다. 통증을 호소하며 외과 치료를 병행하는 이도 있다. 대책위 항의와 언론보도가 이어지며 한전KPS는 다음달 말까지 치료를 보장하기로 뒤늦게 결정했지만, 이번 사례는 원청의 일방적 지시에 저항하기 어려운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김 지회장은 “아직 치료 중인 조합원이 많아 지금 투입된다면 2차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도 높은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경찰조사와 트라우마 치료를 병행하는 조합원들의 고통이 큰데 한전KPS는 또다시 위험한 현장으로 노동자를 내보내려고 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발전소 현장에서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업무를 지시받은 적도 많다고 했다. 업무 책임을 전가하거나 위험 개선을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현장 작업자와 지시자가 같은 원청 소속이라면 안전개선 조치도 훨씬 빠르고 책임이 작업자에게만 전가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강조했다. 김 지회장은 “공정이 분리된 상태에서는 하청노동자에게만 위험 작업을 지시한다”며 “고인도 (사망할 당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었다면 구조했을 수도 있다. 인력부족이나 관리책임 문제는 외주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고 이후 조합원들은 고통뿐 아니라 불안감도 호소하고 있다.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사고 현장을 목격한 데서 오는 트라우마, 그리고 고용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상당수 조합원이 태안군이나 인근 지역에 기반을 두고 살면서 발전소 입사 뒤 가정을 꾸렸다. 발전소는 그들에게 일터일 뿐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신생아를 키우는 조합원도 많아요. 태안에는 발전소가 하나뿐인데, 다른 호기로 가든, 다른 지역 발전소로 가든 언젠가 폐쇄된다는 점은 똑같잖아요. 하청업체는 숙소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니 일자리가 좀 더 있는 수도권 등으로 가려 해도 주거 비용을 부담하기도 어려운거죠. 태안 시내 상권이 다 죽어 가서 배달기사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까 봐 너무 걱정이 되는거죠.”
김 지회장이 설명했다.
“일자리가 정말 없어요. 인근 지역 공단에 가서 취업한다고 해도 또다시 협력업체이거나 일용직일 텐데 지금보다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닐 거잖아요. 발전소도 아닌 민간 기업이니까.”
“하청노동자가 정비보조원? 고인도 숙련기술자”
일하는 곳과 작업은 같은데 하청업체 이름만 갈아 낀지도 10여년. 김영훈 지회장은 2016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매년 계약하는 회사가 바뀌는 탓에 신분이 불안정해 금융권 대출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발전소 노동자들이 그렇듯 그 역시 ‘빛을 만드는 노동자’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2021년 9월 지회가 결성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불법파견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원청이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 월급이 평균 30만원 정도 깎이자 불공정계약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 노조를 만들었다. 이후 여러 사람을 만나 불법파견을 인지하면서 2022년 한전KPS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까지 제기하게 됐다.
소송 이후 원청은 불법파견 요소를 지워 나갔지만 이전까지 원·하청 노동자는 한전KPS 이름이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일했다. 봉사활동에 함께 갔고, 한전KPS 이름이 새겨진 현수막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휴가는 한전KPS에 보고했고, 교육도 같이 받았다.
다음달 28일 불법파견 소송 1심 선고가 내려진다. 김 지회장은 “한전KPS는 소송에서 하청노동자는 정비보조원일 뿐이라거나 소송 이후 분리된 현장만 이야기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덧붙였다.
“하청노동자가 위험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단지 정비보조원에 그치고 전문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김충현 동지는 왜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다룰 수도 없는 기계로 작업을 했을까요. 그리고 회사는 우리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릴 만큼 우리를 왜 필요로 했던 것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