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여야 합의로 통과한 국민연금 개혁안이 세대 간 형평성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청년들의 불안감이 있다. 청년들은 보험료를 낸 만큼도 못 받을 것이라거나, 돈을 내기만 하고 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불안감은 인구 구조와 기금 고갈 위험에서 온다. 이번 개혁으로 기금 고갈 시점은 2055년에서 2064년으로 늦춰졌지만, 청년들은 기금 고갈 이후 연금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 시점이 되면 지금의 청년 세대들은 후세대들이 낸 돈으로 연금을 받아야 하는데, 세계에서 최고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 인구 구조상 후세대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부담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백가쟁명식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공적연금강화행동 사무실에서 정용건 연금행동 공동집행위원장(61·사진)을 만나 청년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연금개혁안을 물었다. 정 위원장은 기금에만 너무 매달려서는 안 되지만, 기금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은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봤다. 정부와 기업이라는 주체들이 논의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에 지금의 논쟁이 일어났다고 진단하며, 사회적 대화를 거쳐 이들의 책임을 더해가는 방향으로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집행위원장은 2012년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을 조직했고, 2015년 연금행동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연금 전문가다. 29년간 신한증권에서 일한 금융전문가이기도 하며, 신한증권 노조위원장과 전국증권산업노조 초대위원장, 사무금융연맹(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지냈다.

“기금에 재정 투입 반대 안 해”
“규모, 운용 방식, 사용처는 합의해야”

- 청년세대에서 ‘낸 만큼 받는 방식’으로 국민연금을 변화시켜 달라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구연금과 신연금 분리안, 스웨덴의 명목확정기여식(NDC)안 등이 거론된다.
“사회적 갈등만 확산시키는 주장이다. 결국 정부 재정이 투입되더라도 청년세대는 적정한 연금을 받지 못한다. KDI가 2024년에 신연금 도입을 가정해 드는 재정을 계산했더니 609조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이전 세대들 수익은 보장하고, 청년들은 낸 돈만 받는다면 갈등이 가라앉나.

게다가 그만한 규모의 돈은 현 제도 유지를 위해 투입하면서 갈 수 있다. 규모가 커지면 운용수익률도 늘어난다. 자연히 기금 고갈 시기는 늦춰진다. 국민연금은 설치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수익률이 6.82%다. 정부의 기금 고갈 가정은 운용수익률 4.5%를 가정했다. 기금 고갈은 계산보다 늦어질 거다. 사회적 합의도 그 사이 계속 있을 거다. 기금 고갈은 과장된 공포다.”

- 현 기금을 지키자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크게 나눈다면 정부·여당안인 자동조정장치 도입안과 야당안인 기금국고투입안이다.
“자동조정장치 도입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연금행동은 지난해 추계를 통해 국민연금에 정부가 주장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할 경우, 1980년생과 1992년생의 총연금액은 기존 연금 수급액 대비 약 80% 떨어진다고 발표했다. 가장 악영향을 받는 건 가입 기간이 긴 청년들이다. 연금이 자동적으로 삭감될 거다.

기금에 재정을 투입하자는 안은 반대하지 않는다. 사회적 논의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안이다. 다만 이 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합의해야 할 지점이 몇 가지 있다. 유지할 기금 규모, 기금 운용 방식, 정부 재정으로 들어온 돈의 사용처다.

기금 규모가 커질수록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 혼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고려해야 한다. 수익성 때문에 해외 주식 투자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국민 세금으로 국내가 아닌 해외 투자를 하는 게 맞는지도 고려할 지점이다. 연금행동은 국민연금 기금에 들어간 돈을 저소득 청년들, 저소득 가입자들 지원으로 써야 한다고 본다.”

자동조정장치는 연급 수급규모와 수급연령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방안이다. 정부는 2036년에 도입하면 기금 고갈 시점이 2088년까지 미뤄진다고 계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도입했다. 도입할 경우 수급액은 현행보다 줄어든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은 17%가량, 연금행동은 20%가량 줄어든다고 계산했다.

기금에 재정을 투자하자는 안은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나온다. 김남이 민주당 의원은 국민연금에 2036년부터 국내총생산(GDP)의 1.25%에 해당하는 국고를 투입하면 기금이 고갈되지 않는다며 기금에 국고를 투입하자고 제안했다. 같은당 장철민 의원은 2070년까지 기금 1천조원 유지를 목표로 매년 재정을 투입하는 안을 내놨다.

“개인이 책임지긴 어려운 노후,
저출생 책임 있는 국가에 목소리 내자”

- 이 논쟁의 한편에는 조용한 청년들이 있다. 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개인이 직접 투자해 수익률을 연금보다 높이 가져가겠다는 이들이다.
“이해한다. 국민연금 운용에 있어서 선택권이 넓지 않아서 그렇다. 국민연금은 안정형으로 운용한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확보를 위해 채권 투자 비중을 40% 수준으로 유지한다. 개인이 투자 성향을 선택해 포트폴리오를 바꿀 수 있게 할 필요는 있다.

다만 개인이 알아서 노후를 대비하는 게 가능할까. 나만 해도 증권사를 다니던 시절 주식에서 돈을 꽤 벌었을 때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회사를 다녔다. 퇴직금은 연금으로 운용하지 못하고 일시불로 썼다.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개인연금 가입률은 10년 가입 유지율이 50%밖에 안 된다. 국민연금 의존도는 점점 올라가서 2022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64%가 노후준비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이야기했다.”

- 청년들은 지금의 기성세대를 믿지 못한다. 연금개혁에서 여야는 국가가 어떤 경우에도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지급 명문 조항’을 국민연금법에 넣었지만,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는 불가능할 것이고 현재 세대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걱정을 왜 하는지는 이해한다. 다만 현재 청년들의 부모 세대들이 연금을 받게 되고 직접 연금을 경험하게 되면 좀 다를 것이라 예상한다. 망했다는 그리스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에게 연금을 주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청년들이 국가를 향해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저출생은 청년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다. 사용자에 떠넘길 문제도 아니다. 국가가 책임질 문제다. 국가가 상당 부분 역할을 하고, 기업이 높은 성과를 낸다면 좀 더 보험료를 부담하는 방식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경제 주체인 개인·기업·국가의 역할 분배를 이야기해야 할 시기다. 재정 당국은 강력하게 반대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요구를 더 거세게 해야 하고, 국가가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국회 연금개혁특위에 당사자들 참여해야”
“플랫폼 사용자 책무 요구할 것”

- 연금개혁 과정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데, 어떤 방식으로 받아안아야 하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된 상황이다. 그 안에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여성·노동자·사용자·시민사회단체·전문가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고, 의제가 설정되면 절차를 밟아 공론화하고, 합의하면 특위 차원에서 합의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합의를 통과시키고, 그 성과를 갖고 힘을 더 받아서 다른 합의를 받아 내 통과시켜 나가야 한다.”

- 연금행동은 어떤 주장을 펼칠 것인가.
“사용자 책무를 강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사용자는 노무제공자들이 제공하는 노무를 이용해 이익을 낸다. 그 이익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국민연금 사각지대다.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은 건별로 떼고 있다. 국민연금은 그렇지 않다. 지역가입자로 분류된다. 세밀한 논의들이 이어져야 하겠지만, 사용자들이 국민연금을 부담하지 않고 있는 문제를 강하게 밀고 나갈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는 국민연금 지역가입자로 분류된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국민연금을 절반씩 부담하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지역가입자는 홀로 국민연금을 납부해야 한다. 보험료 인상 부담이 직장가입자에 비해 커 가입 장벽이 높다. 지난해 8월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가 1천53명의 플랫폼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연금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비율은 52.9%에 불과했다. 어리고 저소득층일수록 가입하지 않았다. 플랫폼 노동자는 절반 이상이 청년이다.

- 조기대선에서 의제화를 위해 준비하는 게 있나.
“정책 요구안을 만들어 제정당들에게 정책 협약을 요청하고, 응하는 정당들과 정책 합의를 하려 한다. 연금의 큰 그림을 노동·시민·사회단체하고 정당들이 함께 그리려 한다. TF에서 요구안을 만드는 중이다. 5월 초에 정책협의를 진행하고, 중순 중에는 완료할 거다.”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양대 노총에게 요청한다. 연금에 대한 책임과 연대 의식이 중요한 시기다. 특수고용·플랫폼·비정규 노동자들이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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