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가 서울 중구 기업은행 앞에서 천막을 편 지 지난 28일로 100일이다. 지부는 시중은행 대비 70% 수준인 기업은행 노동자의 임금을 현실화하고,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발생한 총 800억원의 체불임금을 해소하라고 기업은행에 요구하고 있다.
지부 천막농성에는 사실상 모든 공공기관 노동계의 요구가 투영돼 있다. 지부 요구가 327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바라는 노사 자율교섭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기획재정부의 예산운용지침에 따라 인건비 총액이 결정되는 총인건비제를 적용받는다. 총인건비 안에서 임금·복지 수준이 결정돼 노사 자율로 교섭할 수 없는 구조다. 기업은행은 기타공공기관으로 총인건비제를 적용받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1월10일 취임과 동시에 천막농성을 이끌어 오고 있는 류장희 위원장(44·사진)을 지난 27일 오후 지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류 위원장은 “천막농성은 조합원의 뜻이었다”며 “문제의식이 같은 공공기관끼리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함께 연대하자”고 강조했다.
“공정치 못한 임금체계, 조합원들 싸우길 원해”
“같은 문제의식 가진 공공기관들, 함께 싸우자”
- 총인건비제 폐지는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도 주장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하는 지부가 천막농성까지 하게 된 이유는.
“조합원들이 원해서다. 임금체계가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내부 불만이 엄청나다. 지난해 위원장 선거는 공정한 임금체계를 이뤄내기 위해 사측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선거였다고 생각한다. 제가 선택됐다. 투쟁을 잇는 건 조합원들의 요구를 받아안는 당연한 결정이다.
천막농성은 조합원의 의지와 간절함의 표현이다. ‘공공기관 노동자 투쟁 선두에 섰다’는 표현은 사실 좀 부담스럽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공공기관들이 함께 용기를 갖고 공론화에 나서며 연대를 확장하면 좋겠다.”
- 기업은행과 기재부는 지난 26일 주주총회에서 정부에 5천억원 배당을 결정했다. 지부의 반대를 외면했다.
“농성은 부담을 쌓아 두는 의미다. 정부와 회사의 의사결정이 노동자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부담이다. 노조활동은 바위를 낙숫물로 두드리는 활동과 비슷하다. 부담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진다.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담이 커지면, 다른 결정을 낳는다.
우리의 농성이 구조에 대한 물음표를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여러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가진다. 조금이지만 관심을 갖는 시민들도 있다. 천막농성장 앞이 버스 정류장이다. 기업은행이 임금체불을 하냐고 물어보고, 설명을 드리면 ‘야근하면 당연히 돈을 줘야지’ 하며 공감한다.”
- 일각에서는 정치적 이슈에만 몰두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달 출범한 ‘IBK바른노조’가 그런 비판을 했다.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근본적 해결책에 몰두하는 것이다. 우리의 임금 문제를 포함해 공공기관 노동자의 삶은 정치와 분리되기 어렵다. 우리의 문제는 자율교섭을 하지 못한다는 거다. 기재부의 총인건비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총인건비제 적용을 받는 이유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상 공공기관에 속해 있어서다. 근본적·구조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정치와 맞닿아야 한다.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방법이 있고, 비판이 있다면 성찰하고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무조건적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는 거절한다. 우리를 나아갈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총인건비제 폐지 공약화가 목표, 노사 자율교섭이 원칙”
-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이 예상된다. 정권을 잡은 정당은 공공기관을 편하게 다루기 위해 지금과 같은 구조를 원할 수 있다.
“양대 노총 공대위와 논의해 우리의 요구를 모든 대선후보가 공약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문서로, 활자로 약속해서 모든 정당이 약속을 외면할 수 없게 하려 한다. 이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총인건비제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문제의식을 갖고 살펴보겠다는 답을 들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에게도 말했고, 그는 총인건비제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유물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후보에도 똑같이 묻겠다. 다루지 않으면 안 될 이슈로 띄우겠다. 정치적 격변기, 반전의 시간이다. 계속 움직이겠다.”
- 총인건비 폐지 이후 구체적 대안이 있나.
“일개 지부 차원에서 구체적 대안까지 내놓긴 어렵다. 다만 원칙은 분명하다. 노사 자율교섭. 기재부가 총인건비제를 갖고 전체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식의 한계는 깨져야 한다. 공공기관마다 상황이 모두 다르고, 이를 가장 잘 아는 건 회사와 노조다. 총인건비 도입 이유도 ‘기관 특성에 맞는 유연한 경영’이었다. 기존과 비슷한 방식은 공공기관 전체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올 것이다.”
“공공기관이면서도 상장된 기업은행
노동자들 노력한 만큼 대우 못 받아”
- 지난 1월10일 취임과 동시에 천막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100일이 넘어가는 농성에 조합원들이 지치지는 않았나.
“아니다. 조합원들은 오히려 활력이 돈다. 집행부만 하는 투쟁이 아니라 조합원이 함께하는 투쟁이 됐다. 매주 수요일 본점 로비에서 집회도 연다. 이미 17차다. 나오는 조합원수는 줄지 않았다. 이는 저 스스로를 바꾸기도 했다. 조합원들의 메시지를 매번 되새긴다. 더 열심히 움직여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사용자쪽도 찾아온다. 상당히 많이 왔다. 다만 해결책을 들고 오진 못했다. 기재부에 문제를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적극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 기업은행은 어떻게 변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노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책은행이지만, 동시에 시장에 상장된 은행이기도 하다. 공공성이 분명하지만 시장 변화에도 유연하게 따라가며 수익을 내는 은행이 기업은행이다. 노동자들은 그 점에서 자부심이 상당하다. 그런데 기업은행은 급여와 인사체계 등에서만큼은 경직돼 있다.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낸 결과는 취하면서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는 그만큼 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은행과 직접 대면하고, 교섭하고, 공론화해 조합원들이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하겠다. 노동자들도 바라보는 은행으로 만들겠다.”
-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조합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은행도 국가도 혼란한 시기다. 우리는 그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 만들어 가는 조직이다. 취임 후 쉼없이 뛰었다.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뛸 거다. 그 과정에서 여러 비판도,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새겨듣겠다. 매번 성찰하고 나아가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