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산업은행지부가 산업은행 부산 이전 반대 투쟁을 벌인지 3일로 1천일이 됐다. 윤석열 정부 시작 29일 만에 시작한 투쟁은, 12·3 내란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현준 금융노조 산업은행지부 위원장(44·사진)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권에서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움직임은 현재 진형형이고, 예상되는 조기대선에서도 정당을 가리지 않고 산업은행 부산 이전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올해 초부터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부산 상공회의소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국민동의청원을 추진하고 있고 현재 4만8천519명이 동의했다. 5만명을 모으면 국회 소관위원회로 회부돼 국회 논의가 시작된다. 야권 잠룡으로 꼽히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그간 투쟁의 소회와 향후 과제를 들었다. 김 위원장은 “1천일의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목소리만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막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1천일 투쟁, 노동자가 목소리 내면
불합리 막을 수 있다는 것 깨달아”
- 투쟁 1천일이다. 장기화 투쟁의 의미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계속해서 저지하고 있다는 의미가 있겠다. 2023년 1월 현 집행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현실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노조가 계속 반대 목소리를 내며 이전을 막아 왔다.
돌이켜보면 패배감을 없애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부당한 부산 이전을 막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부에서 온 회장은 취임 즉시 이전을 추진했고, 반대 목소리를 낼 줄 알았던 부행장들은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다는 좌절감이 번졌다.
그런데 우리가 막아 왔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힘을 내면 막을 수 있겠다는 걸 느끼고 있다. 지금은 투쟁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 오시기도 하고, 집행부가 없어도 집회가 돌아갈 만큼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주고 있다.”
- 노조가 국민 동의를 얻어 부산 이전을 막아 왔다고 보는가.
“국민 동의는 절반 정도 얻었다고 본다. 사실 쉽지 않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부당함은 산업은행과 금융산업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민들과의 접점이 없는 정책금융기관이지 않나.
그래서 쉬운 설명을 고민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시 발생하는 국가적 손해액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산업은행 부산 이전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연구를 한국재무학회에 맡겼다. 15조원의 국가적 손실이 일어날 것이라는 결과값을 받았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책자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피켓 시위도 하고, 경제 유튜버와 협업도 했다.”
2023년 한국재무학회 연구에 따르면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면 향후 10년간 손실액이 7조원을 넘는다. 국가경제에는 15조원의 손해를 입힌다. 수익 감소 요인으로 △동남권에 절대적으로 적은 거래처 △기존 고객의 거래 중단 △신규 형성되는 딜에서 배제 △인력 이탈로 금융 전문성 약화 등이 꼽혔다.
산업은행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지역 전반에 돈을 돌게 한다. 서울 여의도에 집적된 금융기관에 채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투자가 필요한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에 쓴다. 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기업 인수합병(M&A) 금융 등 투자은행(IB) 역할도 수행하며 수익을 내는데, 이 경우 시중은행 및 외국계 금융사들과 경쟁해야 한다. 산업은행 수익은 정부 배당금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은행 수익금 감소는 곧 국가 손실로 이어진다.
- 국회와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잦았다. 국회와 움직임을 함께한 것도 유효했다고 보나.
“그렇다. 국회를 상대로 목소리를 냈던 게 효과가 있었다. 여러 토론회에 참석해 우리의 역할이 무엇이고, 부산 이전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리며 연대를 다져 왔다. 국회의원, 특히 정무위원회에 속한 의원들은 산업은행이 본인들 소관이기 때문에 이해가 깊다. 또 잘못된 발언이나 행위를 하게 되면 본인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 동감을 많이 한다. 물론 압박도 병행했다. 직원들과 뭉쳐서 정당 가입 운동을 벌였고, 4천명이 정당에 가입해 정치 안으로 들어갔다.”
“차기 대선, 산업은행 역할 알릴 것”
- 정치적 목소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는데, 그렇다면 차기 대선에는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는가.
“각 대선캠프와 대화할 생각이다. 그들이 고민하는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에 산업은행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리는 게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산업은행 역할을 이해하면서, 부산 이전의 부당성도 알릴 수 있다고 본다. 산업은행 이전이 부당하다고 해 왔던 정당에는 생각이 바뀌지 않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당은 생각을 바꾸라고 요구할 거다. 2년간 의원들과의 네트워크, 연대를 다져 왔다. 뭘 더 한다기보다는 쌓아 온 것들이 발현될 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 지부는 내부 출신 회장을 배출하겠다고 했다. 구체적 로드맵이 있는가.
“앞선 답변과 비슷하다.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회장은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의 전리품처럼 취급됐다. 산업은행에 대한 이해 없이 행정부의 목적 성취만 고민하는 사람들이 왔다. 그러다 보니 부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본다. 은행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정부 정책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내부 출신 회장이 임명돼야 한다.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내부 출신 사람이 앉았다. 우리는 부행장 중 은행을 위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들만 아니면 회장의 요건이 됐다고 보고 있다.”
“산업은행, 정치금융 아닌 정책금융기관”
- 지방이전 이슈에 직면한 금융기관들과 공동대응을 예고했다. 타 기관들과 소통 중인가.
“현재 지방이전이 이슈가 되고 있는 농협과 긴밀하게 연대하고 있다. 성명서도 함께 발표했고, 지방이전 반대 투쟁 방법도 공유했다. 각종 공공기관들에서 투쟁 방법 강의 문의도 많이 오고 있다. 우선은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과 상황을 공유하며 이슈가 터지면 그때 연대해 나가려 한다.”
- 산업은행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노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산업은행은 한국 산업과 함께 성장했다. 중화학공업이 클 때 굴뚝산업을 지원하면서 커 왔다. 지금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녹색·탈원전 등 산업에 대한 투자로,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정치금융이 아닌 정책금융기관이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지역으로 이전해 쪼그라드는 게 아니라, 정책금융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통해 한 번 더 도약해야 하는 시기다. 노조는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산업은행을 벗어나게 하겠다. 산업은행이 본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