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이달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1년 연장했다. 갑작스러운 돌봄 공백 발생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인데, 정책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연장을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맞벌이 가정의 돌봄비용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본래 취지가 퇴색됐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시범사업 이용가구가 ‘강남 3구’에 집중된 데다 고소득자 중심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4일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추진방향 및 향후계획’을 의결했다. 현재 일하고 있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의 근로계약 기간을 12개월 연장하고, 지난해 8월 7개월짜리 E-9 비자로 입국한 이들의 비자 기간도 29개월 늘렸다.

이용가구 월소득 1천200만원 이상 42.9%
10가구 중 4가구 ‘강남 3구’ 거주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용가정 112가구 가운데 부부 합산 월평균 소득이 ‘900만원 이상~1천200만원 이하’가 30.4%로 가장 많았다. ‘1천800만원 이상’이 23.2%로 뒤를 이었다. 1천800만원 이상을 포함해 1천200만원 이상은 42.9%나 됐다. 반면에 ‘600만원 미만’은 8.9%에 불과했다.

이용가정 거주지역도 ‘강남 3구’에 집중됐다. 전체 이용가정의 41.1%가 강남·서초·송파에 산다고 답했다. 강남구가 19.64%로 가장 많았고, 서초(13.39%)·성동(11.61%)·송파(8.04%) 순으로 나타났다.

시범사업은 맞벌이 부부의 돌봄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추진됐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강남에 사는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서비스 이용가구 73.2%이 ‘월 소득 900만원 이상’이고 10가구 중 4가구 꼴로 ‘강남 3구’에 산다는 점에서 ‘강남 특혜 서비스’”라고 꼬집었다.

만족도 높아 연장한다지만
이용가격·노동환경 ‘변수’

노동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취업활동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면서 이용가정과 외국인 가사관리사 모두 시범사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노동부 설문조사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98명 중 ‘한국에서 가사관리사로서 계속 일하고 싶다’는 항목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경우는 54.1%로 절반 이상이었다. 이용가정도 ‘서비스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는 항목에 39%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고, 45%는 ‘그런 편이다’고 답했다.

그런데 시범사업 연장으로 이용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진 만큼 이용가정의 만족도가 계속 높은 편으로 유지될지 미지수다. 현재 시간당 1만3천940원인 이용가격은 퇴직금과 업체 운영비 등이 반영되면서 3월부터 1만6천800원으로 20.5% 오른다. 평균 이용시간이 주 20.2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4주 이용가격은 23만1천원 정도 인상된다.

이용가정 3가구 중 1가구(32.1%)는 설문조사에서 ‘서비스 이용비용이 적정하다’는 항목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활용할 의사가 있는 상한액도 ‘현재와 동일(당시 1만3천700원)’이 71%로 가장 많았다. ‘1만5천원’이라고 답한 가구는 16%였고, ‘1만4천원’은 10%에 그쳤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들도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지와 별개로 노동환경과 관련한 세부 항목에서는 ‘불만족’ 의견이 적지 않았다. 임금과 직결되는 노동시간과 관련해 가사관리사 31%가 ‘근무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대부분 주 40시간 이상 일하지만 ‘30시간 이상~40시간 미만’ 일한다는 가사관리사도 14.3%나 됐다. 만족도 조사에서도 항목별로 보면 휴게시간·장소와 관련해 15.3%가 ‘불만족’한다고 답했고, 출퇴근 여건에 대해 26.5%가 ‘불만족’했다. 가사관리사들은 지난해 9월 열린 간담회에서 여러 가정에서 일을 하면서 이동이 잦은 데다 휴게 시간·공간 부족으로 지하철역에서 끼니를 때운다고 증언한 바 있다.

노동부 “내국인 가사관리사 처우개선할 것”
노동계 “가사근로자법 효과 미흡, 돌봄노동 저임금화”

내국인 가사관리사 처우개선은 뒷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노동부는 시범사업 연장을 발표하며 “돌봄인력 공급이 확대될 수 있도록 내국인 가사관리사 처우개선을 위한 정책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특히 가사관리사의 자격증, 경력, 훈련 이력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최영미 위원장은 “경력이나 훈련 이력을 관리할 필요는 있지만 근본 대책은 아니다”며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 시행 이후 인증기관이 고용한 가사노동자는 약 2천명으로 전체 가사노동자에 비해서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객이 갑자기 이용을 취소해 일을 못하게 되는) ‘노쇼’에 따른 피해가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점, 이동시간이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점, 교통비 등을 노동자가 부담해야 하는 점 같은 문제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범사업을 포함한 돌봄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이주노동자 도입으로 돌봄노동의 저임금화를 위해 시작한 이번 시범사업은 실패한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저출생·초고령화 사회에서 공공돌봄을 강화하고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국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기존의 가사노동을 공공성 강화와 처우개선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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