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반도체특별법에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적용 제외를 빼고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국민의힘이 국정협의체 4자 회담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며 법안 논의를 거부했다.
여야는 4자 회담에서 반도체산업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뿐 아니라 국민의힘이 강하게 요구해 왔던 이른바 ‘에너지 3법’을 협의할 계획이었다. 12·3 내란사태로 얼어붙은 경제에 개입하기 위한 추경(추가경정예산)도 화두였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통과를 요구했던 법안들마저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상한제 문제를 핑계 삼아 논의를 미룬 국민의힘의 입법 의지가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야당 “우리는 준비됐다, 협의체 임하라”
여당 “해외 반도체기업은 잠도 안 자고 일해”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시급한 추경 편성과 민생입법 처리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고, (국정협의체에서 논의할) 준비가 돼 있는데 국민의힘이 여러 조건을 붙이며 응하지 않고 있다”며 “협의체에 성실히 임해 주시고 여당 의원, 여당 지도부답게 처신해 주시길 강력히 요청하고 경고드린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야는 4일 국정협의체 실무협의를 열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참석하는 회담을 다음주 초에 진행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4자 회담은 12·3 내란사태 이후 여야정 대표가 처음 모이는 자리로, 정쟁으로 멈춰 있던 입법과 추경 논의를 다시 시작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불투명해졌다. 국민의힘은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한 민주당이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에 대한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제외에 신중한 입장을 내비치자 국회의장실에 회담 연기를 요청했다.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제외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의제도 논의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풀이된다.
급하다던 ‘미래 먹거리 4법’ 처리가 야당 압박용으로 쓰이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이날도 민주당을 향해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에게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을 제외하는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경제 성장의 열쇠라고 주장했다.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획일적 52시간 근로를 유연하게 손보는 것을 막아 세운 것도 민주당”이라며 “실리콘밸리와 중국 기업들이 잠도 안 자고 일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주 52시간에 묶여 있는데 (민주당 집권플랜본부가 최근 제시한 국가성장정책인) 삼성전자(급 빅테크 기업) 6개를 어떻게 만드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반도체산업 주 52시간제 연석회의
이재명 10일 ‘회복과 성장’ 교섭단체 연설
민주당은 일단 계획한 일정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책위는 다음주 중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자당 의원들과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주제로 연석회의를 열 계획이다. 날짜는 협의 중이다.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의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제외가 반도체특별법에 담길지 여부는 이 대표의 의중이 주요하다. 이 대표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회복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나선다. 민주당은 이날 언론 공지에서 “이 대표는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위해 신성장 동력 창출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AI와 바이오, K컬쳐를 비롯한 컨텐츠산업 등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육성 정책을 강조할 것”이라고 알렸다. 연설 내용으로 조기대선을 위한 ‘우클릭’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