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춘천캠프의 택배노동자 A씨는 올해 초 대리점으로부터 수수료를 건당 80원 삭감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노동자는 월 7천500개의 배송물량을 소화하고 있다. 같은 물량 기준 월 60만원 임금이 감소한 셈이다. 대전캠프 다른 택배노동자의 올해 수수료는 무려 200원이 삭감되기도 했다.
연초부터 쿠팡 대리점이 택배기사가 받는 건당 수수료를 삭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LS가 대리점에 지급하는 수수료 단가를 인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쿠팡 택배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을 다루는 사회적 대화기구 출범을 앞두고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표준계약서는 ‘사전합의’ 현실은 반대
택배노조는 16일 오전 CLS 본사가 위치한 서울 강남구 HJ타워 앞에서 택배노동자 수수료 삭감 규탄 집회를 열고 쿠팡 택배노동자 159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수수료가 5% 이상 삭감된 경우는 78%(124명)에 달했다. 이 중 10~15% 삭감자는 42%(53명)이었다. 반면 수수료가 동결되거나 인상된 사례는 3.8%(6명)에 불과했다.
노조는 “쿠팡은 매년 수수료를 삭감하면서 물량이 늘면 수입이 보전될 것이라고 말한다”며 “그 말은 수입을 맞추려면 더 많이 배송하란 뜻이고, 또다시 택배노동자들의 과로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토교통부(국토부)가 만든 ‘영업점-택배기사 위·수탁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대리점은 택배기사의 수수료 지급기준을 변경할 수 있다. 단 계약기간 만료 60일 이전 서면 통지가 없다면 같은 조건으로 묵시적 갱신된다. 또 계약기간 중 택배기사의 수수료 지급기준이 불리하게 변경될 경우는 사전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설문조사에서 표준계약서를 무시한 일방적인 수수료 삭감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노조는 “대부분의 택배노동자들이 올해 수수료 삭감 통보를 지난해 12월 말에 받았다”며 “해당 노동자들은 묵시적 갱신을 요구하면서 계약기간 중 수수료 삭감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대리점은 원청 CLS에서 수수료를 지급받아 일정 비용 차감 후 택배기사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CLS가 대리점 수수료를 삭감하면 대리점이 택배기사에게 전가하는 구조다. 대리점들은 수수료 책정 근거가 되는 원청의 수수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
노조는 “택배노동자가 수수료 삭감을 거부하면 원청이 단가를 내렸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며 “우리는 원청과 대리점 간 수수료 삭감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표준계약서를 근거로 기존 수수료 지급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쿠팡, 택배 사회적 합의 동참해야”
준수 약속한 ‘사업자-영업점 표준계약서’도 위반 논란
쿠팡 대리점들이 표준계약서를 어긴 수수료 삭감 통보에 나서자 사회적 대화기구 출범 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적 대화기구는 더불어민주당과 쿠팡, 노동자단체, 소상공인 등 이해관계자들이 쿠팡 택배노동자와 쿠팡이츠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올해 초에 출범할 예정이다.
노조는 “쿠팡은 택배노동자들의 수수료 삭감을 즉각 중단하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택배노동자 과로사방지를 위한 사회적합의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CLS와 대리점 간 위수탁계약서의 ‘수수료’ 관련 조항이 표준계약서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의 ‘택배사업자-영업점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가 있는 양측 간 합의로 대리점에게 지급되는 수수료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노조에 따르면 CLS와 대리점 간 위수탁계약서에는 대리점 수수료 변경 조건이 ‘사전 협의’로 명시돼 있다. 지난해 12월 CLS는 대리점과의 위수탁계약서는 국토교통부 표준계약서를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노조관계자는 “CLS의 대리점 수수료 삭감 요건이 표준계약서에서 ‘정당한 이유’에서 ‘사전 협의’로 완화되면 대리점이 이를 협상권리도 없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며 “CLS는 약속대로 표준계약서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