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른바 ‘태아산재법’이 시행됐지만 엄마가 아닌 아빠 노동자는 보상 대상에서 빠져 있는 데다 과거 피해자의 산재신청 기간을 지나치게 짧게 제한해 사각지대가 넓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반올림 등 38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는 ‘자녀산재’ 피해자에 대한 불승인 처분을 철회하고 국회 법 개정 논의를 기다려야 한다”며 “국회는 빠른 시일 내 자녀산재법을 신속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91조의12에 따르면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유해인자 취급이나 노출로 인해 ‘출산한 자녀’에게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그 자녀가 사망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본다. 2020년 4월 대법원이 제주의료원 간호사 자녀들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면서 산재보험법이 개정됐다. 그런데 남성은 ‘임신 중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아빠의 유해인자 노출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부칙에서 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법 시행일 이전에 출생한 자녀에게도 적용되도록 했지만 ‘법 시행일 전에 청구한 경우’처럼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공단에서 자녀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한목소리로 법 개정을 촉구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등에서 LED공정을 맡았던 여성 노동자 유아무개씨는 2022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유씨 자녀는 자폐성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유씨는 지난달 11일 ‘자녀산재’를 신청했지만 이달 12일 공단에서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유씨는 “(신청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공단에서 불승인됐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아무런 조사도 없이 과거 피해자는 산재신청을 제한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투병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막막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LCD사업부에서 일한 남성 노동자 정아무개씨도 자녀가 앓고 있는 차지증후군에 대해 요양급여를 신청했다가 공단에서 업무관련성을 인정받았는데도 입법 미비로 불승인 처리됐다. 정씨는 “산재보험은 일하다 아프게 된 사람들을 보호하는 보험이라고 알고 있다”며 “제 아이 또한 제가 일하다가 아프게 태어났는데 왜 산재보험이 아버지의 아이만 외면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22대 국회에는 ‘아빠 태아산재’를 인정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3건 발의돼 있다. 이 중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의 경우 이 법 시행일 전에 출생한 자녀도 ‘법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에 청구를 한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