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역·소독 업무를 18년간 하다 뇌가 쪼그라드는 다계통 위축증에 걸린 이학문씨가 2022년 8월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던 중에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8년 넘게 방역소독업체에서 일한 노동자 이학문씨의 다계통 위축증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씨가 1997년 5월부터 방역작업을 하면서 클로로피리포스 등 유기인계와 피레스로이드계 등을 포함한 다양한 성분의 살충제에 18년10개월간 노출됐다”며 “살충제 장기간 노출과 다계통 위축증 간 관련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18일 밝혔다. <매일노동뉴스 2022년 8월30일자 “[방역노동자 이학문씨 이야기] 방역일 18년, 나의 뇌는 쪼그라들었다” 기사 참조>

뇌 쪼그라드는 다계통 위축증

다계통 위축증은 신경성 희귀질환으로 몸의 균형을 잡는 기능을 하는 소뇌의 위축으로 잘 걷지 못하고 말이 어눌어지는 증상을 동반한다.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파킨슨병은 10만인년당 발생률(10만명을 1년간 관찰했을 때 발병률)이 8~18명으로 살충제 노출과의 인과성이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다계통 위축증은 인구 10만인년당 발생률이 0.6~07명에 불과하고 관련 산재사례도 드물다.

이씨는 1997년 5월 방역업체에 입사해 2016년 4월까지 아파트와 박물관, 공장 등에서 소독과 방역(살충·살균·구서제 사용) 업무를 했다. 방역복은 지급되지 않았으며 안전장비는 마스크와 장갑이 전부였다. 회사는 이씨가 사용한 살충·살균·구서제 성분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아파트 수목소독 작업을 할 때는 1천리터 약품통에 연결한 동력 분무기로 2시간가량 살충제를 분사했는데 작업이 끝나면 온몸이 약품에 젖기도 했다. 이 때 사용한 약품에는 2021년부터 독성 위험으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클로로피리포스도 포함됐다.

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은 역학조사를 통해 이씨와 방역업체 담당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클로로피리포스 누적 노출량을 추정했다. 그 결과 이씨의 누적 노출량은 18년10개월간 최대 2.27밀리그램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클로로피리포스 사용 허가 당시 노출 기준량은 0.1밀리그램으로 이씨는 23배 가까이 초과 노출된 셈이다.

다량의 살충제 장기간 노출, 업무관련성 배제할 수 없어

직업환경연구원은 역학조사 회신서에서 “이는 클로로피리포스의 공기 중 노출만을 추정한 것으로 이학문씨가 방역복 등을 착용하지 않고 작업한 사실을 고려하면 유기인계와 피레스로이드계 등 다양한 성분의 살충제에 상당기간 높은 수준으로 노출됐을 것”이라고 봤다. 연구원은 “현재 연구로는 살충제 노출과 다계통 위축증 간 관련성을 명확히 결론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살충제 노출로 위험도가 증가한 파킨슨병과 다계통 위축증 간 병태생리와 위험 요인이 유사한 점을 종합해 고려했을 때 이씨의 다계통 위축증의 업무관련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연주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사람과 산재)는 “역학조사에서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인정받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절차가 생략됐지만 산재 신청 후 2년 6개월 만에 나온 결과”라며 “재해자의 업력과 노출된 유해위험요인이 명확한 점을 고려했을 때, 조사 기간만 단축됐다면 재해자가 더 빨리, 더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노무사는 “이학문씨 사건을 계기로 공공의 위생을 지키는 방역노동자의 산재 보상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2022년 3월 산재신청 후 2년여 만에 보상을 받게 된 이씨는 “독한 살충제를 18년 넘게 사용한 결과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돼 빚으로 겨우 연명했다”며 “앞으로는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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