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이인아, 김동주 사람과안전영상제작소 PD

“지…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어요.”

이학문(53)씨가 음절 하나하나를 힘겹게 발음하면서 간신히 한 문장을 만들어 말을 마쳤다.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저는 일…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아… 그런데 지금도 이명현상이 나서 내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울… 울려요.”

이학문씨는 뇌가 쪼그라드는 다계통 위축증을 앓고 있다. 몸의 중심을 잡는 소뇌가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걷는 것은 물론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어렵다. 근육과 장기들도 말을 듣지 않는다. 식도와 위장, 괄약근까지 조절하지 못해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1996년 건강한 몸으로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외환위기로 모두가 어려웠던 1997년 방역회사에 취직했다. 이후 18년간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던’ 그는 자꾸 술 취한 사람처럼 넘어지고, 말이 어눌해지면서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왜 그의 뇌를 쪼그라들게 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14일 노무법인 ‘사람과산재’와 함께 ‘방역노동자’ 이학문씨 이야기를 들었다. 이학문씨는 사람과산재의 도움을 받아 산업재해요양을 신청한 상태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18년간 방제업체 근무
“소독약에 어떤 성분 있는지 전혀 몰라”

“회사 세 곳을 거쳐서 지금의 ㄱ방제 전신인 ㅈ용역이라는 곳에 입사했어요. 사실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도 잘 몰랐어요. 사장과 면담을 할 때 운전을 할 줄 아니 직원들을 태워서 다니면 되겠다고 하더군요.”

ㅈ용역은 10명 미만 사업장으로 건물청소와 물탱크청소, 소독, 방역 사업을 한다. 이씨는 그곳에서 아파트나 박물관, 공공기관 등을 돌며 해충을 잡고 소독약을 뿌리는 일을 했다.

“지금은 재개발돼 사라진 서울 반포 한신15차 아파트에서 일할 때였어요. 울창한 나무에 해충약을 뿌리는데 그만 호스가 터져 버린 거예요. 온몸에 약품을 뒤집어썼죠. 그래도 일은 마쳐야 하니까 세수만 하고 계속 약을 뿌렸어요.”

이씨는 2016년 4월까지 18년간 근무했는데 자신이 사용한 약품이 어떤 성분인지, 약품을 어떻게 다뤄야 안전한지 듣거나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처음에 어떤 식으로 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대부분 알아서 눈치껏 해야 했어요. 약품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은 없고요. 농약 같은 걸 넣어요. 우윳빛깔처럼 색깔이 진하기도 하고, 어떤 건 뚜껑만 열어도 냄새가 역해서 코를 틀어막았어요.”

그가 기억하는 것은 약품의 색깔과 냄새가 전부다. 이학문씨는 보통 오전 7시에 회사로 출근해 소독·방역에 사용할 약품을 희석한 뒤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출장을 나가 해 질 무렵까지 소독과 방역(살충·살균·구서제 사용) 업무를 했다. 대기업이나 큰 공공기관은 하루에 한 곳 정도였지만 아파트나 소규모 사업장은 하루 열 곳을 돌기도 했다.

“오래된 아파트에 가면 나무가 5층 높이만큼 커요. 그럴 땐 약을 밑에서 위로 살포하게 되는데 온몸이 약품으로 샤워를 해요. 마스크나 모자를 써도 마찬가지죠.”

약을 많이 친 날엔 하늘이 노랗고 머리가 핑 돌았다. 다리가 뒤틀리거나 어지러울 때도 있었다. 운전하면서 어지러워 사고가 날 뻔도 했다.

“정신이 몽롱해질 때도 조금 쉬면 괜찮아지더라고요. 저는 계속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참았죠.”

그가 사용한 화학물질 성분을 현재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그가 일기장과 달력에 꼼꼼하게 적어 놓은 작업일지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 영상=이인아, 김동주 사람과안전영상제작소 PD

이학문씨의 산재요양신청을 대리하고 있는 신주영 공인노무사(사람과산재)는 노출된 유해화학물질로 브롬화메틸, 메타미도포스, 클로로피리포스를 꼽았다. 메타미도포스와 클로로피리포스는 발달신경독성과 유전독성 등 인체 유해성 때문에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직권으로 농약 등록을 취소한 고독성의 유해물질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일어난 이후 살균·살충제 같은 살생물질의 성분표시를 강화하고 안전기준을 높였다. 하지만 이학문씨가 근무했던 1997~2016년 사이에는 살균·살충제 성분에 대한 관리가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보다 지독한 일은 밀폐된 공간에서 연막소독을 하는 일이다.

“아파트 지하실이나 박물관 수장고, 공장 창고 같은 데서 연막소독기에 희석한 약품과 경유를 넣고 돌아요.”

경유에 살충제 입자를 녹여 모기 같은 해충에 접착되도록 살포하는 연막소독은 짧은 시간에 최대 효과를 볼 수 있어 종종 사용된다.

“박물관 수장고를 작업할 때는 고객들이 싫어하니까 연기가 세지 않도록 테이프로 문과 창문을 막고 밀폐한 공간에서 약을 쳤어요. 신발이 녹더라고요. 그 약품이 정말 독해서 이름을 분명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나요. 사용이 금지된 약품도 썼어요. 60킬로그램 포대자루가 녹아 버릴 정도로 지독했는데….”

밀폐공간 연막소독은 벌이가 좋아서 사업주가 선호했다. 반나절에 400만~500만원의 수입이 생겼다. 이씨는 연막소독을 할 때는 신경이 더 곤두섰다.

“경유를 쓰니까 화재가 날 수 있거든요. 불이라도 나면 전부 배상해 줘야 하니까, 신경을 정말 많이 썼어요.”

수천 마리 바퀴벌레 죽이지만
보호장구는 면장갑·마스크 ‘전부’

정화조와 물탱크 청소는 더 끔찍했다.

“정화조는 상상도 못할 거예요. 30~40년 된 곳은 바퀴벌레가 몇천 마리가 있어요. 물탱크 청소할 때는 맨손이나 면장갑을 낀 상태에서 약품을 바르고 닦아 냈고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은 살충제나 살균제를 사용할 때 보호장갑이나 보안경, 장화, 유기가스용 방독마스크, 방진마스크 또는 송기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이 모든 일을 하면서 보호구를 지급받은 적이 없다. 고작 면마스크나 면장갑 정도만 착용한 채 일했다.

살생물질은 호흡기 외에 피부로도 흡수될 수 있다. 때문에 보호복을 입고 방제작업을 한 후 목욕을 하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기본이다. 이씨는 온몸에 약품을 뒤집어쓴 날도 퇴근해서야 몸을 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쉬지 않고 일을 한 덕택에 다른 이들은 안전해졌다. 해충을 죽이려 쓰는 독한 살생성분은 이씨의 몸도 서서히 망가뜨렸다. 모두를 안전하게 한 방역·방충 작업은 이씨에게는 ‘독’이 됐다.

2016년 들어 이씨는 차에 내릴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온몸에 상처를 입거나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넘어지는 일들이 많아졌다. 술 취한 사람처럼 말이 어눌해지고 멍한 느낌이 들어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의 뇌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해 어느 날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는 이씨를 경찰이 출동해 집까지 데려다준 적도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소변이 흘러 피부에 발진을 달고 산다.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돼 18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제가 썼던 약품에 중독돼 있었던 것 같아요. 일하다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너무 빨리 서두르다 그런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다리에 힘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도저히 일할 수 없는 몸이 됐을 때 퇴사”

방역회사를 그만두고 이씨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경비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이미 망가져 버린 몸은 경비초소까지 걷는 일마저 버겁게 했다.

“왜 안 걷냐고, 경비원이 왜 앉아만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이제 다른 이의 부축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다. 그가 의지하는 지팡이는 갑자기 기울어지면 경고음이 울린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할 때를 대비한 것이다.

“일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마음은 편하지 않아요. 회사 상무이사에게 묻고 싶어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켰는지. 대항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알고 싶어요. 왜 내가 아픈지, 무엇 때문에 내 몸이 이렇게 됐는지.”

그는 지난 3월 근로복지공단 서초지사에 산재신청을 했다. 공단은 이씨의 사건을 역학조사기관에 의뢰했다고 밝혔다. 이씨의 뇌는 시시각각 기능을 잃고 있지만 올해 안에 산재 여부가 결정될지 현재는 알 수 없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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