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이주민의 날인 18일 오후 이주인권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모든 이주민의 노동권과 주거권, 건강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22년 고용허가제로 한국 농촌에서 일하기 위해 입국한 캄보디아 국적의 A씨는 지난달 경기도의 한 농장에서 쫓겨났다. 숙소 개선을 요구한 A씨와 동료들을 농장주가 쫓아낸 것이다. A씨는 농장 옆에 위치한 가건물에서 동료들과 살고 있었다. 간밤 폭설이 내리며 건물을 덮던 비닐하우스 지붕이 주저앉았고 건물 안으로 물이 샜다. 전기와 난방은 작동하지 않아 추위에 떨며 밤을 꼬박 보냈다. 새로운 숙소를 마련해 달라는 노동자들 요구에 농장주는 “이게 왜 내 잘못이냐. 하느님 잘못이지. 눈이 많이 내린 걸 왜 나한테 따지냐”며 윽박질렀다. 계속된 요구에 농장주는 A씨와 동료들을 내몰았고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A씨는 한 달 가까이 구직 중이다. A씨는 열악한 숙소를 찍은 영상을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올리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외국인 노동자인 내가 겪는 삶인데, 이런 사장을 만난 것이 정말 힘들다. 힘든 줄 알지만 미래를 위해 한국에 왔다.”

유엔(UN)이 정한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아 이주인권단체들이 정부에 모든 이주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2020년 12월20일 한파경보가 내려진 날 난방도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30)씨의 4주기가 가까웠지만 이주민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주노조·지구인의 정류장·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 130여개 이주단체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모든 이주민의 노동권·주거권·건강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은 12월18일 세계이주민의 날과 20일 속헹씨 4주기를 맞아 열렸다.

단체들은 이주노동자·유학생·난민·동포·미등록 이주아동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모든 이주민의 권리 보장을 요구했다.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이주여성은 젠더 기반 폭력 위험성에 쉽게 노출된다”며 “이주여성 성폭력 상담 건수는 날로 늘어가지만 이주여성상담소는 전국에 9곳에 불과해 지원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진혜 이주민센터 친구 법률인권센터장은 “현행법상 외국인 아동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이 순간에도 외국인 아동은 출생 직후 등록될 권리를 침해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며 “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를 상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12·3 내란사태 이후 새로운 사회를 이야기하는 지금 이주민의 권리가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정규 변호사(민변 이주노동팀장)는 “헌법정지 상태는 이주민에게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이라며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사고로, 병으로 죽어나가는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헌법정지 상태”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