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와 쟁점
피고인 C회사(이하 피고인 회사)는 건설사로, 발주기관과 서울 은평구에서 시행된 건설공사(이하 이 사건 공사)에 관해 2020년 12월18일 공사대금을 약 39억원으로 하는 공사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22년 6월께 공사금액을 약 47억원으로 증액하는 수정계약을 체결했다. 그 이후에 발주기관 담당자는 2022년 8월5일 공사금액을 약 51억원으로 증액하는 내용의 수정계약서를 작성해 전산시스템에 등록한 후 서명을 요청했는데, 피고인 회사가 2022년 11월21일 위 수정계약서에 전자서명을 했다.
피고인 A는 피고인 회사의 대표이사이고, 피고인 B는 이 사건 공사의 현장소장이자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이다. 피고인 회사 소속 노동자는 2022년 11월17일 오전 8시께 이 사건 공사현장에서 오수관로 매설을 위한 굴착저면에서 오수관로 설치 작업을 하던 중 굴착면이 붕괴하는 바람에 매몰돼 같은 날 오후 4시8분께 두개골 함몰 골절 등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 쟁점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지 여부다. 중대재해처벌법 부칙 제1조에 이 법은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되지만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인 공사에는 법 적용이 유예되고, 2024년 1월27일부터 비로소 적용된다. 따라서 2022년 11월21일에 공사금액을 50억원 이상으로 증액하는 수정계약서에 전자서명이 이뤄졌으므로, 그 이전인 11월17일에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이 법이 적용될지가 쟁점이 됐다.
2. 쟁점에 관한 판결 요지
법원은 다음의 이유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① 공사증액 등 계약내용의 수정이 이뤄지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시공사인 피고인 회사에서 변경 공사에 따른 설계변경 내역서 및 설계도면 등을 제출하면, 감독기관이 설계변경을 심의한 후 발주기관의 재무관에게 수정계약을 의뢰한다. 그러면 발주기관의 재무관은 의뢰받은 문서를 토대로 수정계약서를 작성해 전산시스템에 등록한 시공사인 피고인 회사에 전자서명을 요청하게 된다. 여기에 피고인 회사의 전자서명을 받아 재무관이 최종적으로 전자서명을 한다. 따라서 발주기관의 재무관이 수정계약서에 대한 전자서명을 요청하는 시점에, 수정계약 내용의 주된 부분에 관한 당사자들의 의사의 합치가 있다고 보인다.
② 이 사건 공사의 현장소장이던 피고인 B가 작성한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사용내역서를 보면, 2022년 7월31일까지는 공사금액이 약 47억원으로 기재돼 위 금액을 기준으로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산정됐으나, 2022년 8월1일부터는 공사금액이 약 51억원으로 기재돼 위 금액을 기준으로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산정됐다. 따라서 양 당사자가 수정계약서에 전자서명을 한 시기와 관계없이 피고인 회사와 발주기관 사이에는 2022년 8월25일 이전에 이미 공사금액을 약 51억원으로 증액하기로 하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봄이 타당하다.
3. 쟁점에 관한 해설
이 사건 공사 계약은 당사자의 합의만으로 계약이 성립하는 낙성계약이다. 이 계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계약은 낙성계약이다. 여기에서 합의 의사는 반드시 서면으로 확인될 필요는 없고, 한 쪽의 청약이 있고 다른 쪽의 승낙만 있다면 계약은 성립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이 ‘청약’ 개념인데, 청약이란 그에 응하는 승낙만 있으면 곧 계약이 성립하는 구체적, 확정적 의사표시이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59 판결).
이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피고인 회사가 설계변경 내역서 및 설계 도면을 첨부해 증액을 요청했다. 이는 기존 계약의 수정을 요청하는 취지로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의사가 담겨 있으므로 ‘청약’이라고 해석된다. 다음으로 발주기관은 청약 내용이 타당한지 심의를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피고인 회사에 2022년 8월5일 전자서명을 요청했는데, 이는 청약에 관한 응답으로 ‘승낙’이다. 전자서명의 요청 이전에 청약과 승낙이 있었고, 이 계약은 의사합치만으로 성립하는 낙성계약이므로 승낙이 있은 시점인 2022년 8월5일 계약은 성립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의심의 여지없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것이다.
4. 이 사건의 결론
참고로 법원은 피고인 A에 대해는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 제1호 위반을 들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피고인 B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피고인 회사에 대해는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을 구체적으로 보면,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반기 1회 이상 평가·관리해야 할 의무 위반(시행령 제4조 제5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사항에 대해 종사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마련하고, 그 절차에 따라 의견을 들어 재해 예방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해 이행하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 위반(시행령 제4조 제7호)을 들었다.
5. 나가며: 비교 판결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2024. 10. 16. 선고 2023고단226 판결)
피고인 회사는 2020년 12월17일께 한국수자원공사와 약 42억원에 시공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2021년 1월6일 착공에 들어갔다. 피고인 회사 소속 노동자는 2022년 7월4일 사망했다(사고 경위는 생략). 검찰은 위 공사가 약 42억원으로 체결됐고 관급 자재대가 약 10억원으로 확인됐으므로 이를 합산해 50억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용노동부의 FAQ에서는 도급인이 제공하는 재료의 가액(시공사가 직접 시공하는 경우)도 합산한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법원은 ‘관급자재’란 발주처가 직접 구매해 상대방에게 공급하는 자재이므로, 시공사의 수입으로 잡히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법원은 영세사업자에게 충분한 준비기간을 주기 위해서 유예기간을 둔 것이 입법부의 의사라고 보고, 그렇다면 당사자 간의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법 적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동의하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 부칙 제1조 제1항 단서에는 유예대상으로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이라고 정하고 있다. 입법취지를 보면, 공사에 드는 금액의 규모에 따라서 유예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리고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 노동부에서 자료를 배포한 바도 있다. 그렇다면 공사금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발주처가 직접 공급하는 자재비가 배제된다고 볼 근거가 오히려 없다. 다만, 공사금액과 관련된 부칙조항은 2024년 1월27일부터는 효력이 없어졌으므로 더 이상은 큰 의미가 없다.

